“대한민국만 아파도 쉴 권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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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만 아파도 쉴 권리 없어”
  • 이인문 기자
  • 승인 2022.09.2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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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세넷 등, 국회에서 토론회 개최… 법정 유급병가 및 상병수당 제도화 촉구
건세넷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아프면 쉴 권리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건세넷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20일 국회에서 ‘아프면 쉴 권리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왜 아파도 쉴 수 없나요?”

건강세상네트워크(이하 건세넷)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20일 국회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남인순·서영석·이수진·이용빈·정춘숙·강은미·심상정 국회의원과 함께 ‘아프면 쉴 권리 제도화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건세넷 나백주 공동대표가 좌장을 맡아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시민건강연구소 최홍조 연구원(건양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은 ‘아프면 쉴 권리, 현장의 요구와 정책의 간극’을 주제로 한 발제를 통해 “이론과 개념적 수준에서 보편적 사회보호 혹은 최근 국제노동기구의 사회건강보호의 관점에서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 연구원은 한국의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문제점으로 ▲최소·최저 보장 ▲노동조건이 더 좋은 집단부터 보호 ▲서비스는 부족하고 그나마 대부분 민간시장에 맡겨짐 ▲소득재분배 기능 상실 등을 들고 지난 7월부터 시행된 상병수당 시범사업도 이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피력했다.

그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통해 정부는 보편적 건강보장의 수단으로서 상병수당을 정의내리고 있지만 이는 질병으로 인한 건강상실에 대해 직접비용만 충당해주는 것으로써 소득상실 등의 간접비용까지 포괄하는 보편적 사회보호의 관점은 결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최홍조 연구원
최홍조 연구원

특히 최 연구원은 정부의 상병수당 시범사업은 ▲가구원 질병/돌봄으로 인한 쉼: 아동수당 및 유급 육아휴직 ▲질병으로 인한 해고와 실업: 고용보험 ▲산업재해와 일반 상병의 관계: 산재보험 ▲일하지만 노동자라 불리지 못하는 65세 이상: 기초연금 ▲장애인의 노동과 질병: 장애인연금 등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을 중재하는 정책과의 연결이 부재하다면서 “정책결정 과정에서 민주적 참여와 거버넌스가 배제되면서 전문가 및 관료 중심의 시범사업이 진행되면서 아프면 더 위험한 사람은 보호하기 어려운 제도로 설계되고 말았다”고도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현재의 시범사업으로는 보편적 사회보호의 3가지 차원 중 보장하는 서비스 범위는 제한적으로 평가 가능하지만 포함하는 인구집단의 범위, 간접비용 및 소득상실 보존 등은 평가가 불가하다”며 “더 아프지만 쉬지 못하는 사람, 고용상태 및 노동조건에 따른 상병수당 신청과 지원의 불평등 문제 등 건강형평성의 관점도 평가할 수가 없다”고 지적하면서 “보편적 사회보호가 아닌 일부의 소득손실을 보전해줄 뿐인 현지의 상병수당 시범사업을 사회건강보호의 관점에서 기존의 사회보장제도와의 연계를 고려해 재설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이하 공공운수노조) 김흥수 사회공공성위원장은 ‘상병수당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 주요 현황과 쟁점’을 주제로 한 발제를 통해 법정 유급병가제도와 건강보험내 상병급여제도 도입을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전 세계 184개 조사대상 국가 중 법정 유급병가 또는 상병급여제도가 없는 국가는 한국 포함 11개국이었고 OECD 36개 국가 중 상병급여제도가 없는 국가는 한국·미국·스위스·이스라엘 등 4개국, 이중 법정 유급병가제도까지 없는 국가는 한구과 미국이 유일한데 미국은 최근 주 정부별로 유급휴가 법제화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며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독일과 아일랜드, 포르투갈, 싱가폴, 캐나다 등에서는 자영업자에게도 상병급여를 확대 적용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상병급여 강화 조치를 확대해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상병수당제도의 운영방식과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대다수 국가들이 사회보험방식을 선호하고 있는데 주로 일정 기준소득 이하의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에 집중하는 조세방식보다는 사회적 위험에 대한 분산과 연대라는 측면에서 사회보험 방식이 더 적합하다”면서 “보험(기여)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재정 분담이 필수적이며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국민연금 등 제도 간 연계와 협업체계 구축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김흥수 위원장
김흥수 위원장

아울러 김 위원장은 급여 수준과 관련해서도 “재원이 보험방식이고 대상의 포괄성을 고려한다면 보편적 건강보장을 위해서는 선별형(기초보장형)보다는 기여비례형이 바람직하다”며 “다만 사회연대원리를 고려해 저소득층에 대한 급여 하한 설정으로 최소한의 급여 적절성을 보장하고 고소득층에 대한 급여 상한 설정으로 가입자 간 상병급여의 격차를 좁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최근 ILO는 상병급여와 유급병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급여 수준의 적절성, 대상 범위의 보편성을 중심으로 재정의 지속성과 분담, 이를 위한 사회적 대화의 필요성과 함께 특히 파트타임, 임시직 노동자나 자영업자를 포함해 플랫폼 노동 등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면서 “일부에서 막대한 비용부담을 거론하며 제도 도입에 부정적 여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취약계층일수록 이러한 위험에 더 크게 노출돼 있는 만큼 사회적 위험에 공동으로 대응하기 위한 제도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끝으로 김 위원장은 법정 유급병가제도와 관련 “현재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단체협약을 통해 시행 중인 법정 유급병가제도를 중소·영세사업장으로 확대해 법정제도화하고 이를 상병급여와 유기적으로 연계해야 한다”며 “상병급여의 핵심 목적이 아플 때 적시에 효과적으로 치료받고 회복하는 것이므로 행정적 측면에서 체게적 관리 등을 고려할 때 이미 법적 근거도 확보하고 있는 건강보험에서 상급급여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한다. 유럽의 선진국들도 대부분 그렇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진 패널토의에서 민주노총 이정훈 정책국장은 상병수당 및 유급병가제도를 모든 경제활동인구에 의무적으로 적용하고 운영방식 및 재원마련은 보편적인 사회보험방식으로, 수급 요건은 상병의 범위를 제한하지 않고 근로활동이 불가할 시 모두 적용할 것 등을 주장했다.

(왼쪽부터) 한국노총 김윤정 선임차장, 민주노총 이정훈 정책국장, 건세넷 나백주 공동대표, 보건복지부 이준미 상병수당제도팀장, 고용노동부 이지영 임금근로시간정책과장.
(왼쪽부터) 한국노총 김윤정 선임차장, 민주노총 이정훈 정책국장, 건세넷 나백주 공동대표, 보건복지부 이준미 상병수당제도팀장, 고용노동부 이지영 임금근로시간정책과장.

한국노총 김윤정 선임차장은 “정부의 시범사업 지역이 6곳에 한정돼 있고 낮은 수준의 일당 설정으로 시범사업의 목적과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시범사업에 대한 전면적인 재설계와 함께 전 국민을 위한 유급병가제도에 대한 실직적인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을 촉구했다.

국가인권위원회 김재석 사회인권과장도 “아프면 쉴 권리보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고용형태나 사업장 규모 등에 관계없이 모든 임금근로자가 일자리 상실에 대한 걱정없이 아플 때 쉬고 복귀할 수 있는 휴가·휴직의 권리를 명확히 하는 것”이라며 “사회권규약, ILO협약 등 국제기준이 권고하는 것처럼 업무외 상병으로 일을 쉬게 되는 경우 소득을 지원하는 사회보험급여, 즉 모든 취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병 상병수당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날 토론회는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시민건강연구소, 전국불안정노동철페연대,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등이 함께 개최했으며 간병시민연대와 노회찬재단이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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