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 - 진지한 삶, 당당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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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 진지한 삶, 당당한 삶
  • 송필경
  • 승인 2022.10.31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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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1.
아버지는 친구인 교련 선생이 조선일보만 본다고 늘상 흉 봤다. 생각이 그렇게 다른 사람하고 늘 싸우면서 어울렸다. “그래도 사람은 갸가 젤 낫아야”

예전에 광주 교도소에 아버지와 같은 사상범으로 복역한 동지가 있었다. 떠르르한 지주의 아들이라 사식이 늘 풍성했다. 사식을 벤소에 숨겨놓고 돼지처럼 저 혼자 먹었다고, 진짜배기 혁명가가 아니라고 아버지는 두고두고 흉봤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한 감방에 있는디 갸들은 지 혼자 묵들 않애야. 사식 넣어주는 사람 한나 읈는 가난뱅이들헌티 다 노놔주드라. 한 명도 빠짐없이 글드랑게. 종교가 사상보담 한질 윈갑서야”

아버지는 그들(여호와의 증인)을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전쟁 반대허제, 십일조 없제, 나쁠 것이 하나도 읎다. 전쟁 반대한다고 군대도 안 가고 감옥살이를 자청하는 놈들이어야. 거개는 목사도 읎다더라. 긍게 돈 뺏기고 신세 망치는 일은 읎을 것이다.”

아버지는 사상과 사람을 다르게 보았다.

2
“저리 경우 바르고 똑똑한 양반이 왜 하필 뽈갱이가 되었을꼬”
“하기사 그 시절에 똑똑흐다 싶으면 죄 뽈갱이였응게”

3
젊은 세대가 민족의 통일을 지상 최대의 과제라 생각하지 않는 데 아버지는 분개했다.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게 현실인 걸 어쩌겠어요. 있는 현실을 아니라고 우길 셈이신가요? 사회주의자께서”
딸의 항변이었다.

4.
(빨치산에게) 스스로 곳간을 열어 먹을 것을 주던 주민들이 어느 순간부터 숨겼다.
“지한테 득이 안 된다 싶으면 가차 없이 등을 돌리는 것이 민중이여. 민중이 등을 돌린 헥맹은 폴세 틀려묵은 것이제.”

5
“질께 뻔한 전쟁이었소. 우리야 기왕지사 나선 몸이제만 그짝은 사상도 읎고 신념도 읎는디 멀라고 뻔히 질 싸움에 끼울 것이요.”

아버지가 빨치산 유격대로 활동했을 때 마을에 식량 구하러 내려갔다. 있음직한 집안에서도 없다길래 집을 샅샅이 뒤졌다. 안방 병풍을 걷어내니 다락방이 나왔다. 다락방을 열자 스무살 남짓한 젊은 청년이 바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순경복을 입고 있었다. 내일 당장 순경을 그만 둔다면 살려주겠다 했다. 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는 못 본 체하고 그 집을 나섰다.

실제 그 청년은 다음날 순경을 그만 두었다. 어느 날 청년은 생명의 은인인 아버지를 찾아왔다. 자기도 유격대에 끼워달라고. 그러자 아버지는 단호하게 돌려보냈다. 왜 그랬는냐고 묻자 위와 같이 말했다.

(사진제공= 송필경)
(사진제공= 송필경)

6
오랜만에 우리 소설을 읽었다. 읽기는 쉬웠지만 생각거리는 많았다. 아버지는 스스로, 그리고 빨치산 동지였던 아내에게도 생활의 기준을 ‘사회주의자’로 삼았다.

생각 있는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진퇴양난(딜레마)은 현실과 신념의 문제다. 현실이 바뀌었으면 신념도 바뀌어야 하는가? 빨치산 저항은 아버지는 질께 뻔한 싸움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자신은 자신이 꿈꾸었던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을 살면서도 신념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니 감옥에서 오래 살았다. 가난하게 살았다.

7
다음은 역사의 아버지 사마천을 주인공으로 하는 천퉁성(陳桐生)의 소설 『역사의 혼 사마천』(김은희·이주노 옮김 이끌리오 2003)에 나오는 이야기다.

굴원(屈原)은 중국 전국시대 초나라 대시인이었다. 사마천은 굴원의 시에서 분노와 슬픔, 애절함을 느꼈다.

굴원은 세상사에서 쫓겨나 시를 읊조리며 떠돌다가 강물에 몸을 던졌다. 사마천은 100년 전 굴원이 몸을 던진 그곳에 갔다. 자신의 처지와 비슷했던 굴원을 찾으니 갖가지 생각이 아지랑이처럼 피워오르며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굴대부시여, 그대는 초나라를 위해 온 몸을 다 바쳤건만, 초나라는 그대를 받아들이지 않았소. 세상 사람들은 그대를 비웃었고, 그대는 그대를 이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음을 한탄하였지. 하지만, 아니오! 굴대부, 나만은 당신을 이해할 수 있소. 그대는 내 마음 속에 흰 구름보다도 더 순결하고 태양보다도 더 곱고 아름답습니다!”

8
작가의 아버지는 일제 말기와 해방공간에서 사회주의 혁명가로 살았고, 그 뒤 40여 년간을 빨갱이란 낙인찍힌 삶을 남한에서 이어왔다.

현대 남한에서 변절은 밥 먹듯 한 일상사이고, 다반사였다. 혼탁한 변절의 세상에서 ‘사회주의자’란 자긍심으로 버텼다면, 그 분은 흰 구름처럼 순결했고 태양처럼 곱고 아름다운 분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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