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개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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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개근하기
  • 양정강
  • 승인 2022.11.1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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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양정강 논설위원

멘토(mentor)란 풍부한 경험과 지식으로 지도나 조언을 하며 도움을 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103세를 구가하며 지면을 장식하고 강연도 하는 연세대학교 김형석 명예교수를 언감생심 흉내낸다며 얼마 전 ‘80년을 살아보니’라고 글을 몇 줄 쓴 일이 있다. 오늘은 건강관리로 수영을 즐긴다는 김 교수의 이야기를 떠올려 다른 것은 몰라도 수영만큼은 내가 더 오래전부터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를 하련다.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김 교수의 수영 입문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60세를 앞두고 그는 운동이 필수라고 느끼기 시작해 등산이나 테니스보다는 시간의 구속을 비교적 받지 않는 수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4년 전엔 주 4회 수영을 하기도 했는데, 조금 더하고 싶을 때 그만두는 것이 오래도록 즐겁게 운동을 계속할 수 있던 비결이라고 했다. 

필자는 40대 중반부터 수영장을 찾았다. 지금은 수영장이 문을 닫는 요일을 제외하고는 주 6일을 개근하다시피 한다. 

수영은 일찍이 1950년대 초반 부산 피난 시절 송도로 가는 길목 바닷가 바위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뜨기 시작한 것이 첫 경험이었다. 이어 중학생 때 송도에서 체육 시간에 배를 띄우고 수십 명이 줄지어 헤엄친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고등학생 때는 여름방학에 친구 몇 명이 안양 풀장 옆에 텐트를 치고 하루 자면서 다음 날 아침 4명이 4천 미터를 도전하기로 하고 수영장에 뛰어들었는데, 세 명의 친구가 모두 포기한 후 2천 5백 미터를 기록한 적이 있다. 어느 날은 그때의 기록을 깨려고 오십 미터를 더했는데, 90분을 수영한 것이 나이 칠십 언저리 즈음이었다. 

아침 출근 시간이 정해진 시절에는 이른 시간에 수영장에 가는 것이 여유롭지 않았지만 66세 정년퇴직 후부터는 틈나는 대로 수영장을 찾는다. 자유형과 평영을 교대로 하는데, 벽시계에서 시작을 확인하고 30분을 쉬지 않고 한 후 10~20분을 물속 걷기를 한다. 

그런데 최근 몇 개월은 40분 동안 수영을 해봤다. 나보다 다섯 살 나이가 아래고, 체격이 탄탄한 70대 중반이 항상 쉬지 않고 40분 동안 힘차게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 번 따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인사를 나누며 지내는 유도선수 출신의 한 사람이 수영을 얼마나 하느냐 묻기에 이러 저러해서 40분 한다고 이야기했더니, 내 나이를 셈하고 얼굴 모습이 아니라는 듯 ‘에이’하는 것이 욕심내지 말라는 표정이길래 도로 30분으로 바꾸었다. 

또 하루는 내자가 창밖에서 내 수영하는 모습을 보고 모양새가 별로라고 했다. 하긴 한 번도 정식 강습을 받은 일이 없으니 당연하겠지만.

안전요원에게 부탁해서 수영 모습을 한번 찍어보니 내가 보기에는 그리 흉하진 않다. 나보다 서투른 이들이 제법 있어서 그간 독학으로 수영을 해온 나는 누가 옆에서 내 나이를 묻기만을 기다린다. 만 82살이라 답하려고. 

젊게 살려고 하면 몸도 젊어진단다. 신체가 아무리 좋아도 마음이 편한 것만 못하다고도 한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헤엄을 치면서 우선 살면서 상처를 준, 만날 수 없는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내게 상처를 준 몇 이름을 들어 미움 없애기를 한다. 

지금 출근하는 일터를 이끄는 이들의 안녕을 빌고, 아내를 비롯한 친족의 평안을 기원한다. 가깝게 지낸 이들 가운데 건강이 좋지 않은 이름을 떠올리며 평안을 되찾기를 빈다. 그리고 이제부터 해야 할 일에 대한 구상이나 계획을 떠올리기도 한다.

건강을 위해 운동이 필요하듯이 건강은 일을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수명 연장이 빠르게 진행되는 시대에 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면서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스스로 묻는다. 

새벽 배달 신문 둘을 본다. 손안에 들어오는 모든 유인물은 제목이라도 꼭 보는데 여기저기에 참 부러운 삶을 사는 이들이 많음을 알수록 ‘좀 더 열심히 살 걸’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또 너무 순탄히 살아낸 것에 엄청 감사하는 한편으로 미안함을 느낀다. 그이들처럼 세상에 훌륭한 기운을 전하지 못한 까닭인가? 

그래도 이웃과 주변에 크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냈고 비할 바 되지 않는 착한 일도 가끔 해 온 것을 작은 위안으로 삼는다. 환갑에 개원을 접고, 바로 교회에서 외국인 근로자 진료를 시작해 사업을 정리할 때까지 열여덟 해를 했다.

6년간 공직 후 3년의 백수 기간도 글쓰기 등을 하며 분주하게 보냈다. 15년째 직접 주관하는 모임을 비롯해 이름을 걸쳐 놓은 10여 개의 모임에 열심히 참석한다.

최근에는 국군장병들에게 2만 여부를 보낸다는 잡지에 치과 이야기를 12차례 쓰고 있고, 13년째 출근하는 일터에는 고교친구들이 놀이터처럼 여럿 찾아와 진료를 받고 점심 후 차까지 나눈다. 토요일마다 대공원에 모여 함께 걷고, 점심도 하는 10여 명과도 어울린다.

순탄하고 평안한 나날을 보내는 이즈음이 고맙기만 하다.

 

양정강(사람사랑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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