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야기… 제주백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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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야기… 제주백서향
  • 유은경
  • 승인 2023.01.30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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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이야기- 아흔 번째

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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쌓인 눈 위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감도는 숲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빗방울에 섞인 채로 이방인을 감싸고도는 정체모를 향기에 머리가 어찔어찔했다. 내가 살고 있는 땅에서 꽤나 멀리 떠나왔음이 실감난다.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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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자왈, 그 깊은 속으로 들어갈수록 향은 짙어졌다 옅어졌다를 반복하는데 정체는 쉬이 드러나지 않는다. 눈의 무게와 비의 부대낌으로 나른해진 꽃잎들이 제 체취에 겨워 두꺼운 잎에 몸을 누이고 있어서다.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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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이 천리를 간다하여 ‘천리향’으로도 불리는 서향 중에서 흰빛을 머금은 귀한 ‘백서향’이다. 중국이 자생지인 홍자색 서향과 거제와 남해안 일부, 그리고 제주에서 만날 수 있는 백서향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제주에 있는 백서향은 특이한 지형인 곶자왈에서만 살고 있다.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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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의 모양이 조금 다르고 꽃받침통에 털이 없어 특별나게 ‘제주백서향’이라 부른다. 백서향의 고귀함이 문제일까?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든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거듭 강조하지만 야생의 꽃과 나무는 태어난 곳을 떠나면 살아가기 어렵다.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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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피어 제주의 봄을 알리는 꽃이라는데 눈 쌓인 엄동설한에도 이리 많이 피었으니 제철에는 얼마나 황홀할런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가지 끝에 십자모양의 여러 송이들이 모여 피는 백서향은 활짝 필 때까지 한 달 이상 걸린다니 볼 수 있는 시간이 길어 더욱 매력있다. 계절보다 먼저 다가오는 꽃향기다발의 잔치가 무척 기대된다.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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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그 향기가 맑다고 하고 어떤 이는 달콤하다고 하나 컴컴한 숲속에서 향기만을 따라 꽃을 찾아낸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알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맡아 보는 거 같기도 하나, 그저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아찔한 향기라고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작은 가슴에 더는 눌러담을 수 없는 그리움이 마침내 터져나오는 듯 안타까움이 배어 있는 몽롱한 내음이다.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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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뒤 두 해 연속 햇살 그득한 그 숲에서 활짝 핀 제주백서향을 다시 만났다.

(사진제공= 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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