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오랜만에 겨울 산에 들었다가 매달려 있는 꼬투리를 보았다. 밝은 햇살 속에서 부는 겨울바람에 버스럭거리고 있었고 서글퍼 보일 정도로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당당한 모양과 환한 빛깔로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뽐내던 그 한때는 어디에 간직하고 있을까.

어여쁜 꽃, 어린 순, 뿌리는 향기로운 차로, 약재로 고루고루 쓰임이 많다. 줄기는 질겨서 묶는 끈으로 사용을 많이 했었다. 그 많은 쓰임새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들과 산, 강가 할 것 없이 칡덩굴이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옆으로 뻗어나가면서는 땅위의 작은 식물들을 숨 막히게 하고 다른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는 그 넓고 무성한 잎으로 성장을 막아버린다. 줄기가 겨울에도 대부분 죽지 않고 매년 굵어져 나무로 분류한다. 칡으로 덮여 있는 땅과 나무들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방법이 없는 걸까.

꽃차로도 많이 만든다. 주변에 흔하고 여름내 피어 있어 오래 만날 수 있으며 방법 또한 어렵지 않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

‘칡’은 꽃보다 뿌리가 먼저 생각난다. 양지바른 쪽부터 땅이 녹아갈 즈음 동네 오빠들과 아재들은 칡뿌리를 캐러 산을 오르내렸다. 어려서 따라가는 걸 포기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내게 흙투성이인 칡뿌리를 톱으로 썰고 알맞게 잘라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면 입으로 쭉 찢어 질겅질겅 씹어 물은 빨아먹고 질긴 섬유질은 '퉤'하고 뱉어냈다.

그 쌉싸름한 맛은 머리가 기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언제 떠올려도 따스하고 고향의 온기가 푸근하게 감싸고 돈다. 그런 추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추억부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