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병원 설립과 운영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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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병원 설립과 운영에 대한 단상
  • 원용철
  • 승인 2023.03.1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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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원용철 논설위원
지난 9일 국회 소통관에서 개최된 ‘공공병원 확충‧강화 촉구 합동 기자회견’ 장면.
지난 9일 국회 소통관에서 개최된 ‘공공병원 확충‧강화 촉구 합동 기자회견’ 장면.

현재 공공병원이 심각한 위기상황이라는 말이 여기저기에서 들리고 있다. 성남의료원을 시작으로 많은 지방의료원들을 재정적자 등을 이유로 민간에 위탁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그동안 의료원 설립이 추진돼온 울산과 광주는 KDI의 예비타당성 재검토 과정에서 B/C값이 현저히 낮다는 이유로 설립 자체가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또한 대구는 민선 7기 권영진 시장이 추진해온 제2 대구의료원 설립이 민선 8기 홍준표 시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재정적자 등을 이유로 전면 백지화되고 말았다.

우리는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는데 공공병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서 여실히 확인했다. 그래서 코로나19가 한참 확산될 때는 모두가 공공의료 확충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공공병원 확충을 위한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 결과 대전과 부산, 서부 경남 등은 그동안 지지부진해온 지방의료원 설립이 예비타당성검토 자체가 면제되면서 현재 추진 중에 있다.

사실 의료의 공공성 문제에 대해서는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어느 누구도 전면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의료 자체가 공익적 성격을 지닌 공공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공이든 민간이든 할 것 없이 의료는 공공재이기에 당연히 공공성을 띠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우리나라의 병상수와 병원은 OECD 회원국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넘쳐나는데, 그리고 전 국민의료보장체계인 건강보험이 작동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은 집단감염병 상황에서는 의료전달체계가 아주 기형적이며 의료가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쪽으로 작동하기보다는 시장의 논리에 의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현재 전국적으로 소아과전문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들 한다. 또한 필수의료분야 전문의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한다. 의사 수가 전반적으로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기에 필수의료든 소아과든 의사 수가 부족할 수는 있다. 그런데 필수의료분야나 소아과가 겪고 있는 의사부족 문제와 전체 의사 수의 부족은 성격을 전혀 달리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건강보험의 수가체계에 문제가 있으니 수가체계를 조정하면 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필수의료와 소아과의 의사부족 현상은 한 마디로 말하면 의료가 민간중심 전달체계와 시장논리에 의해 왜곡돼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의사가 부족하면 의대 정원을 늘려 의사를 키워내면 된다. 그런데 현재의 구조 속에서는 아무리 의대 정원을 늘린다 해도 필수의료 의사부족 현상이나 중소도시의 의사부족 현상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근원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난 정부에서 논의되다가 의사단체의 반대로 무산된 지역의사제도와 같은 공공에서 의사를 양성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이렇듯 의료가 공공재라면 의사를 양성하는 과정부터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의료가 시장의 논리가 아닌 공공성을 담보해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병원 설립과 운영에 있어 무엇이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까? 다른 지역도 대동소이하겠지만 대전의 경우를 살펴보면 먼저 설립에 있어서는 우선 병상 수의 문제다.

대전은 다른 지역보다 병상 수가 많은 지역이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보건복지부에서도 병상 수 관심 지역으로 신규 병원설립에는 대단히 소극적이었다. 그러니 대전의료원 설립은 당연히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데 문제는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공공병원의 부재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병상은 넘쳐나는데 정작 코로나19 팬데믹 과정에서 확진 환자가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 타 지역인 천안과 청주 등의 공공병원으로, 그것도 한 가족이 흩어져서 치료받아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진 것이다.

평상시에는 건강보험체계가 어느 정도 작동할지 모르지만 최근 들어 거의 5년 단위로 지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집단감염병과 같은 비상사태에서는 민간의료체계가 거의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공공병원의 설립은 병상 수와는 별개로 의료의 공공성을 담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필수요건인 것이다.

두 번째로는 재정문제를 들 수 있다. 재정문제는 공공병원 운영과정에서 불거지기도 한다. 병원설립에는 상당히 많은 재원이 소요된다. 그렇다보니 그렇게 많은 세금을 일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병원을 설립하는 데 쓰기보다는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의 병원비를 지원해주는 쪽이 더 효과적이지 않느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공공병원은 가난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평소에는 의료급여 환자나 서민들이 더 많이 이용할지 모르지만 재난이나 집단감염병과같은 국가적 위기상황에서는 국가의 정책적 기능을 감당하는 손발이 돼주는 것이 공공병원이다. 그러기에 공공병원 설립은 단순히 재정효율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 수호를 위한 필수경비로 봐야 하는 것이다.

300병상 규모의 공공병원을 설립하는 데 드는 비용은 고속도로 약 8km 건설비용(1,500억~2,500억 원)과 비슷한 규모라고 한다. 그렇다면 고속도로 8km를 늘리는 것과 공공병원을 설립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국민을 위한 정책일까? 그러기에 아무리 많은 재정이 소요되더라도 헌법에 명시돼 있는 국가가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당연한 비용으로 여겨져야 하지 않을까?

공공병원 운영에 있어서는 가장 큰 쟁점이 재정적자와 의료진 확보 문제일 것이다. 먼저 재정문제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민간의료에서는 수익이 나지 않는 수익이 나지 않기에 당연히 필수의료를 소극적으로 대한다. 대표적인 것이 코로나19에 대한 민간병원의 반응이었다. 대전의 모 대학병원은 코로나19 초기에 당 병원에 호흡기전문의가 없으니 코로나19 증상이 있는 경우 호흡기전문의가 있는 병원을 찾아가라는 게시문을 붙이기도 했다. 병원의 손익만 따지며 환자치료를 기피한 것일 게다.

우리는 소방서나 경찰서를 보고 재정적자를 내는 기관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당연히 필요한 기관이라고 여긴다. 마찬가지로 보건소도 재정적자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당연히 국민의 보건과 건강을 위한 기관으로 여긴다. 그런데 유독 지방의료원과 같은 공공병원에만 왜 재정적자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공공병원이 공공의료를 수행하면서 생겨나는 재정적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경비가 아닐까?

마찬가지로 공공병원의 의사수급 문제도 앞에서 언급했듯이 전체 의사 수의 부족과 공공병원의 열악한 근무환경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지 공공병원이기 때문에 의사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재정적자와 의사수급 문제를 들어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직영이 아닌 민간위탁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군산의료원이다. 군산의료원은 전라북도가 15년간 원광대학병원에 위탁운영하다가 다시 직영으로 전환된 지방의료원이다. 그런데 적자해소를 위해 위탁된 군산의료원은 도리어 매년 더 큰 누적적자를 내는 병원이 됐고 부채도 매우 큰 폭으로 늘어났으며 의사부족 현상이나 의료서비스 질 저하 등은 전혀 개선되지 않아 시민들의 불만은 더욱 심해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다시 직영으로 전환되면서 재정은 흑자로 돌아서고 시민들의 만족도가 위탁 당시보다 훨씬 더 높아졌다. 결과적으로 재정적자 해소와 우수한 의료진 확보를 명분으로 공공병원을 민간에 위탁하겠다는 것은 공공병원 운영을 회피하는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경상대학교 정백근 교수는 공공성을 주체, 과정, 결과의 세 가지 구성요소를 통해 설명한다. 먼저 주체가 개인이 아닌 공동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병원은 당연히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체여야 하는 것이지 개인이 주체가 돼서는 안 되는 것이다. 과정 또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진행돼야 한다. 그러므로 당연히 공공병원 운영에는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돼야만 한다. 공공성이란 공동체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정의와 평등, 공공복리를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전달체계는 공공성을 띠고 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진정 공공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공공의료가 획기적으로 확대돼야 한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고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적 절차가 지켜져야 한다. 그러할 때만이 의료의 공공성이 제대로 담보될 수 있을 것이다.

원용철(공공병원설립운동연대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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