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경은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자랐다. 아버지에게 받은 DNA덕분에 자연스레 산을 찾게 되었고 산이 품고 있는 꽃이 눈에 들어왔다. 꽃, 그 자체보다 꽃들이 살고 있는 곳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로 바라보는 세상은 지극히 겸손하다. 더 낮고 작고 자연스런 시선을 찾고 있다. 앞으로 매달 2회 우리나라 산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꽃 이야기들을 본지에 풀어낼 계획이다.
- 편집자 주

이름으로 그 모습과 습성, 그리고 사는 곳까지 짐작할 수 있는 꽃이다. ‘꼬리풀’은 끝이 뾰족한 꽃이겠구나 상상할 수 있고 ‘전주’는 지명이니 발견된 곳이거나 사는 곳이려니 짐작이 간다. ‘물’은 습한 곳, 물가를 좋아해 붙은 것이리라.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멸종위기 2급의 보호받는 몸이다. 올해도 9월 제주에서 만났다.

보통의 꼬리풀이 끝으로 갈수록 뾰족해지면서 비스듬한데 ‘전주물꼬리풀’은 끝까지 같은 굵기로 곧게 서 있다. 오히려 끝이 뭉뚝한 느낌이 든다.

꽃빛이 점잖은 분홍이어서인지 커다란 무리를 지어 있어도 들뜨지 않고 아주 차분한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밝지만 점잖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식물학자가 전주에서 처음 발견했고 1969년 이름이 지어졌지만 정작 전주에서는 사라져버렸다. 그 후 제주에서 발견됐고 증식을 거쳐 전주로 옮겨 심어졌다. 칠보산, 칠보치마가 겹쳐진다.

작은 웅덩이를 둘러싸듯 피어 있는 모습에 반했다. 날이 밝지 않아 흐릿했지만 제주의 중심인 멀리 한라산이 보이는 곳에 묵직하게 자리잡았다.

이번 제주나들이에선 언제 만날 수 있을까 고대하던 큰 형격인 물꼬리풀도 만났다. 원조라지만 크기도 겸손하고 빛깔도 한껏 풀이 죽었다. 전주물꼬리풀과 다르게 한해살이다. 아무리봐도 맏이의 위엄은 찾아보기 힘들다. 원조보다 짝퉁이 화려하다는 믿고 싶지 않은 진실이 다시 한 번 증명됐다.

하늘이 파란 날, 햇볕을 가득 품고 환하게 춤추고 있는 전주물꼬리풀을 보고 싶다. 그때는 카메라를 방해하는 바람이 밉지 않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