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 형을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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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영 형을 떠나보내며…
  • 이창호
  • 승인 2023.11.20 16:5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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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인천건치 이창호 회원

형과 나는 공통된 사건이랄까, 시기는 다르나 사병 영장을 받아들고 비슷한 고민을 했기 때문에 특별히 긴밀한 유대감이 있다. 

형은 5.18로 수배됐고 본과 3학년 때 제적을 당해 사병으로 병역을 마쳤다. 술자리에서 나에게 가끔은 보안사의 관찰 대상으로 경험한 특별했던 몇 명의 강제징집 동기들과의 군생활을 말하기도 했다. 무영형은 군의문사로 대표되는 ’녹화사업‘의 초기 대상자였고, 나는 후기 ’녹화사업‘ 대상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나는 사병영장을 거부해 길고도 지리한 재판을 했지만 싸움에서 졌다. 당시는 의학계열 학생들이 시위에서 체포돼 훈방 경험만 있어도 군의관이나 보건소로 가는 진로를 막고 사병으로 내보내던 시절이었다. 엄격한 기준이나 형평성 이딴 것은 바람에 뒹구는 먼지만도 못한 대접을 받던 시절이라 국민 대다수가 당연하게 여겼으나 나의 행정소송 이후에는 의료계에 그런 문제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는 작은 위안이 있다. 행정소송에 진 나는 영장 집행을 피해 집에 머물지 못하며 떠돌았고 어머님은 뇌출혈과 뇌종양으로 수술을 거듭해 병원비용을 감당키 어려워 주변에서 돈을 융통해 돌려막으며 어두운 터널을 지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영 형이 전화를 해서 노동운동을 하던 후배가 사무실을 내는데 내 이름으로 얼마를 보냈다는 말을 전했다. 형편이 안된다는 것을 잘 알지만 너의 이름값을 떨어트리고 싶지 않았다는 말과 함께.  몇 해 지나 우연히 만난 후배는 나에게 그때 고마웠다는 인사를 했고, 나는 어렴풋한 기억에 엉거주춤한 태도로 감사의 인사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나는 무영 형에게 전화로 돈을 보내겠다고 계좌번호를 알려달라니까 형은 계좌로는 돈을 받지 않겠다고 떼를 썼다. 

가끔 무영형은 그렇게 황당한 사람이었다. 결국 나는 무영형에게 돈을 갚는 전달식을 열었고, 인천건치 회원들은 동네 참치집에 모여 형과 자리했다. 시간이 지났던 만큼 갚을 돈에는 참치 한 마리가 이자로 붙어 있었다. 그날 형은 먼 길을 달려와서 밝게 웃었고, 내가 전한 봉투를 당당하게 주머니에 넣는 얄미운 행동을 하면서 앞머리의 톤이 올라간 어투로 ’코~오~맙다‘라는 말을 건넸다.

형의 몸에 자라던 암이 기승을 부려 앞날을 조금은 예감할 수 있던 어느 날 인천에 오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형은 꿈베이커리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카페에 앉아 기부금이라며 봉투를 내밀었다. 아직 형의 병이 공식화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형을 가까이서 보살피던 광전지부 김규탁 회원의 동향보고 덕택에 나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었다. 하룻밤을 같이 보냈으면서도 형은 형의 몸상태를 말하지 않았고, 나는 알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며 복잡한 심사를 누르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지금 나는 꿈베이커리 카페에 앉아 창밖 월미산을 내다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산을 무던히도 좋아했던 형은 인천지부 회원과도 지리산 산행을 두어 번 같이 했다. 형의 산행 속도는 너무나 빨랐고 항상 저만치 앞에 가서 한참을 기다리곤 했다. 결국은 하산지점에서 같이 만날텐데도 늘 앞서갔다. 

 형, 산만 앞장서면 됐지 왜 바삐도 그리 먼저 갔소?

이왕 먼저 가셨으니 불국토 수미산 답사 부탁합니다. 화엄사 쪽에서 법계사 쪽으로 내려오던 지리산 종주산행처럼 일주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수미산 동쪽 지국천 방향에서 수미산 정산을 올라 서쪽 광목천 쪽으로 내려오는 동서를 가로지르는 길의 일주문 말입니다. 오래 기다리시면 동서를 오간 영호남 틀니사업을 기념해 제봉형도 족발을 싸들고 모일 예정입니다. 

무영 형은 하루에 지리산 종주를 왕복으로 하셨던 분이니 동서를 가로지르고 바로 산행대장님 따라서 남쪽 증장천 길을 시작으로 남북통일을 기념하는 남북코스로 이어갑시다. 한걸음에 수미산을 동서남북으로 가로지른다고 두 번이야 죽겠습니까? 수미산 산행을 위해 모이는 열차표 시간은 각자 다르니 그리 알고 계세요. 만약 형이 우리가 빨리 보고 싶다면 평화통일을 빨리 이루게 해주세요! 형이 세계평화를 앞당기면 삶의 여한도 없고 할 일도 없어질테니 그때는 편안한 마음으로 열차를 타겠습니다. 

그리워도 아직 일이 남아있는 한 빨리는 못 가겠다, 미안하지만 차분히 기다려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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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용 2023-11-20 19:52:47
김무영 형님은
80년 5월 조선대 치대 본과 다니시다가
김대중 내란 음모 관련자로 수배 투옥 강제 징집되셔서,
12년만에 대학 졸업하시고
청년 치과의사회 활동을 시작으로
광전건치와 건치의 산 역사이셨고 ,
조선대학교를 민주적 대학으로 만드는데도 큰 역할하셨고,
광주 전남 애국 시민 사회단체 활동에서도
대단한 헌신과 모범을 보여주신 인물이셨습니다!

후배들에게
차분하고 알기쉽고 논리정연하게
세상사의 흐름을 알려주셨고,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말없이 티나지않게
많은 사람들과 단체에
물질적 마음적 도움을 많이 주셨습니다

후배들에게도 존중의 마음으로
크게 나무라는 일도 없으셨고,
늘 건강한 치아를 드러내시며
환하게 웃어주시던 큰 형님이셨습니다.

늘 따듯한 햇볕과 시원한 그늘,
편안한 그루터기 같던 무영형을
바람속에서 햇볕속에서
늘 오래도록 기억하고 간직하겠습니다.

영원한 건치 청년
김무영 형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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