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특이점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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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특이점이 온다』
  • 이동준
  • 승인 2024.03.07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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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의 책이야기- 두 번째

미래학자인 레이 커즈와일은 과학기술을 통해 인간 본연의 조건마저 뛰어넘을 미래를 내다본다. 바로 그 초월의 시점이 ‘특이점’이다.

천문학에서 빌려온 이 단어는 이미 이 책의 저자인 커즈와일 외에도 여러 미래학자들이 쓰고 있는 용어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가속적으로 발전하던 과학이 폭발적 성장의 단계로 도약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문명을 낳는 시점’이다.

커즈와일의 주장은 첫째, 특이점이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둘째, 그 시점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처럼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이다. 

첫 번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GNR(유전공학, 나노기술, 로봇공학 및 인공지능) 혁명이다. 저자는 GNR 혁명이 단계적으로 펼쳐지다 보면 인류의 문명이 생물학을 넘어서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고 한다.

유전공학을 통해 생물학의 원리를 파악하고 나노기술을 통해 그 원리들을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게 되면 이미 인간은 물질적으로 신적 존재나 다름 없게 된다. 여기에 쐐기를 박는 것이 바로 강력한 인공지능이다.

튜링 테스트(영국의 논리학자 앨런 튜링이 1950년에 제안한 테스트. 기계의 지능을 판별하는 기준으로 인간과의 대화를 제안한 것)를 통과해 인간의 지적 수준(특히 패턴 인식능력과 언어능력)에 맞먹는 인공지능이 등장하면, 그래서 인간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이 존재하게 된다면, 문명은 생물학적 인간들의 손아귀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이른바 ‘기술가속의 법칙’이다. 저자는 트랜지스터의 집적용량이 약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을 토대로, 그 기하급수적 성장법칙이 정보기술 전반에 적용된다는 여러 근거를 든다.

나아가 미래에는 전 산업분야가 본질적으로 정보기술이 될 것이므로 인류의 모든 기술이 가속적으로 발전할 것이라 주장한다. 기하급수적 성장의 속성은 사람을 놀래키는 데 있다. 100년은 족히 걸릴 것 같던 일들이 1년 만에 벌어지는 것이, 충분히 발달한 기술의 속성이므로 우리 생각보다 특이점은 훨씬 더 임박해 있다는 결론이다. 

그렇다면 특이점은 얼마나 특이할 것인가? 수학에서 특이점은 사실상 무한이다. 모든 한계를 뛰어넘은 값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특이점은 무한의 속성과는 다르다. 분명한 것은 너무나 뛰어난 수준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우리는 뇌를 역분석함으로써 인간지능 알고리즘을 기계적으로 구현할 수도 있다. 그 지능은 자신을 스스로 개선해 나갈 것이다. 그 개선을 반복함으로써 급속히 성장해 나갈 것이다. 

그렇다면 한계는 있는가? 있다. 우주는 초당 1090회의 연산을 가능케 하는 용량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홀로그램 우주이론에서는 10120이라고 한다). 어쨌든 유한한 수이다.

1090cps는 지구의 모든 인간의 뇌용량을 합친 것보다 1060배 더 강력하다. 1킬로그램의 ‘차가운’ 컴퓨터라도 최대 1042cps의 연산을 할 수 있는데 현재 모든 인간들의 뇌를 합친 것보다 1016배 강력한 것이다. 

그렇게 큰 수준의 지능이란 어떤 것을 의미할까? 미래의 지능은 다른 우주로 퍼져 나갈 가능성도 상상할 수 있다. 만약 그 상상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의 미래지능은 다른 우주들을 창조하고 식민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상 유한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수학에서의 특이점과 완전히는 같지 않지만 매우 가까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물리학에서의 특이점은 이론적으로 밀도가 무한이며 크기가 없는 점, 즉 중력이 무한인 지점을 가리킨다. 블랙홀 내부의 이론적 특이점 주변, 즉 사건의 지평선안에 있는 입자나 에너지는 지평밖으로 탈출하지 못한다. 빛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사건의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게 어렵다.

역사적 특이점도 마찬가지다. 1016에서 1019cps 정도의 능력을 가진 현재의 우리가 어떻게 1060cps로 예상이 되는 오는 2099년의 문명의 생각과 행동을 예측할 수 있을까? 하지만 블랙홀의 속성에 관한 결론을 개념적 사고로 끌어낼 수 있듯이 우리 역시 역사적 특이점이 갖는 의미들에 대해 숙고하려고 노력해 볼 수 있다. 

진화는 점점 질서가 높은 패턴을 창조해가는 과정이다. 세상의 역사도 근본적으로 패턴의 진화로 설명할 수 있다. 진화는 우회적으로 작용한다. 즉 각 단계나 시기마다 이전 시기의 정보처리 방법을 철저히 활용해 다음 시기를 창조한다.

저자는 진화(생물학적 진화와 기술학적 진화 모두)를 여섯 시기로 개념화했다. 특이점은 제5기에 시작될 것이고 제6기에 지구를 벗어나 우주까지 확대될 것이다.

진화의 여섯 시기.
진화의 여섯 시기.

특이점의 모습은 다양하다. 특이점은 기하급수적 증가에서 거의 수직에 가깝게 치솟는 단계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서는 기울기가 너무 급격해서 기술이 무한대의 속도로 발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이점을 향한 카운트다운
특이점을 향한 카운트다운

그렇다면 기술의 발전속도가 무한히 증가할 수 있을까? 속도가 너무 빨라져 인간이 값을 인식할 수조차 없는 때가 오지 않을까? 기술로 강화되지 않은 인간의 경우에는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인간들보다 1,000배의 지능을 가진 인간이라면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은 훨씬 더 지능적인 기술을 만들어 낼 것이다. 기술과 융합돼 지금보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영리할 것이다.
 
인간지능의 전통적인 장점으로는 패턴인식 능력을 꼽을 수 있다. 뇌의 고도병렬 처리와 자기조직화는 섬세하고 고정된 속성을 지닌 패턴들을 인식하기에 이상적인 구조이다.

인간은 통찰을 활용하고 경험에서 얻은 지식들을 이용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한다. 현실에 대한 정신모델을 만들고 이 모델의 모습을 변경해 가면서 머릿속에서 ‘만약 ~라면’같은 실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지능의 전통적인 장점으로는 수십억 개의 사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즉시 불러내는 능력을 꼽을 수 있다. 또 일단 습득한 기술을 정확하고 빠른 속도로 지치지 않고 반복해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는 언어를 통해 매우 느리게 진행되는 인간의 지식공유 과정에 비해 대단히 빠른 속도로 자기들끼리 지식을 공유할 수 있다. 비생물학적 지능은 다른 기계로부터, 그리고 결국에는 인간들로부터 기술과 지식을 그냥 다운로드 해버리면 될 것이다. 

기계는 자원, 지능, 메모리를 공유할 수도 있다. 몇 백만 개의 컴퓨터가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고 다시 나눠질 수도 있다. 기계지능은 설계와 구조의 제약에서 해방되는 동시에, 즉 개재뉴런 연결의 느린 교환속도나 고정된 두개골의 크기와 같은 생물학적 한계에 제한되지 않고 일관된 성능을 자랑할 것이다. 

비생물학적 지능이 인간과 기계의 전통적인 장점들을 결합하고 나면 우리 문명의 비생물학적인 부분은 이중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기계의 가격 대 성능비, 속도, 용량의 덕을 지속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기술이 더 빠른 속도와 더 큰 용량으로 인간처럼 기술을 설계하고 조작할 수 있게 되면 기계들은 자신의 설계(소스코드)에 접근해 그것을 변형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현재 생명공학을 통해 비슷한 작업을 하고 있긴 하지만(생물학에 기반해 유전정보와 기타 정보처리 과정을 변경하고 있다) 미래에 기계가 자신의 프로그램을 스스로 수정하게 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더 느리고 제한적인 작업이다.

기계지능이 자신의 설계를 반복적으로 개선하는 주기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사실 패러다임 전환의 지속적인 가속공식을 통해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기술이 꾸준히 가속되다 보면 인간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질 것이므로 결국은 그같은 지속적 가속이 불가능하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생물학적 지능에서 비생물학적 지능으로 넘어간다면 이 추세를 유지할 수 있다.

나노기술을 이용해 나노봇을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노봇은 분자규모로 설계된 로봇으로 크기가 미크론(100만분의 1미터) 단위이며 ‘호흡세포’(기계로 만든 적혈구)같은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나노봇은 인간의 노화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을 비롯, 몸속에서 많은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유전공학과 같은 생명공학을 통해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감정을 이해하고 적절히 대응하는 능력 또한 인간지능의 한 종류인데 미래의 기계지능은 이것도 이해하고 학습하게 될 것이다. 인간의 감정적 반응 중 일부는 제한적이고 허약한 생물학적 몸이라는 틀 속에서 지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대책이다. 미래의 기계지능도 ‘몸’을 가지고 세계와 상호작용을 할 것이다.

나노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이런 몸은 생물학적인 인간의 몸보다 훨씬 우수하고 내구성이 높을 것이다. 따라서 미래 기계지능의 ‘감정적’ 반응 중에서 일부는 그들의 막강한 물리적 ‘역량’을 제대로 반영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를 취할 것이다. 

신경계 내의 가상현실이 해상도와 신뢰도 면에서 실제 세계와 다를 바가 없게 되면 우리의 경험은 점차 가상환경으로 옮겨갈 것이다. 가상현실에서 우리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사실상 다른 사람이, 당신이 선택한 몸과는 다른 몸을 당신을 위해 추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반대 경우도 가능하다. 

수확가속의 법칙은 비생물학적 지능이 우리 주변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 전부에 인간-기계지능을 가득 채울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말하자면 연산에 대한 물리학에 기반을 둔 채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패턴을 연산에 최적인 형태로 구축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한계에 다가갈수록 우리 문명의 지능은 더 먼 우주의 나머지 부분으로 퍼지면서 지속적으로 능력을 확장할 것이다. 이 확장속도는 정보의 최대 이동속도에 빠르게 근접할 것이다. 

『특이점이 온다』
『특이점이 온다』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완벽히 동의하지 않더라도 과학기술에 정통한 학자들은 그 시기만 다를 뿐 특이점은 분명히 도래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한 미래상은 일견 너무나 놀랍고 두려울 정도라서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논리와 근거가 매우 치밀함에 또한 감탄하게 된다. 나 역시 특이점을 기다리는 특이점 주의자가 되었다. 이 특이점이 분명 내 생전에 올 것이라고 믿는다. 여러 대비책이 필요하다. 

특이점이 오는 것은 절대 막을 수 없고 또한 되돌릴 수도 없다. 과학과 기술을 되돌리는 문명이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니 대책을 세우는 것이 최선이다.

빌 조이 같은 사람이나 존 설 같은 유명한 학자가 나와서 비생물학적 지능이 완전히 인간의 지능과 같아질 수 없다. 융합할 수 없다는 주장도 하긴 한다. 하지만 저자에 의해 논파당한다.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또한 커즈와일이 자신의 입장에서 쓴 저서라 그런지는 몰라도 저자가 완승했다고 생각한다. 

멜서스주의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기하급수적 성장은 언젠가 벽에 부딪치기 마련이다. 저자는 멜서스주의자들의 주장을 맞다고 인정한다. 무어의 법칙도 한계가 보이고(얼마 전에 깨졌다고 한다) 패러다임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패러다임이 한계를 보이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가역적 논리 게이트같은 신기술의 도입으로 일 비트의 정보를 연산하거나 통신하는데 필요한 물질과 에너지의 양은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또한 책에서 소개한 커다란 변혁들이 모두 벌어지고 나서도 한참 후에나 한계에 다다를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구의 물질과 에너지를 쓰고, 또한 더 머나먼 우주의 자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저명한 철학자인 버클리 캘리포니아 대학의 존 설은 '중국어 방 유추'라는 가상실험을 제시했다. 프로그래밍 된 컴퓨터는 중국어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형식론적이거나 구문론적으로 중국어를 구사하는 것이고 인간의 마음은 정신적이거나 의미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는 내용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마음을 모방하려는 시도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설의 주장은 뇌를 모방하는 비생물학적 지능의 핵심을 전혀 모르는, 말이 안 된다는 식의 동어반복에 불과하다. 내가 한국어를 이해하고 적절하게 대답하는 프로그램이 나의 뇌에 있다고 하자. 프로그램의 패턴 전체에 또한 수십억 단계에 나의 한국어에 대한 이해력이 담겨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의 한국어에 대한 이해력은 각각의 뉴런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신경전달물질의 강도나 시냅스의 배열, 개재뉴런이 취하는 광범위한 패턴을 통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바로 창발성(emergence)의 속성이다.

나의 뇌속에 있는 뉴런들은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정보가 분산패턴을 가진다는 사실, 창발적 속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존 설은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비생물학적 지능들도 단순한 기호처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창발적이고 자기조직적인 패러다임을 활용할 수 있다. 컴퓨터가 꼭 0과 1만 다룰 필요는 없다. 또한 완벽한 디지털 컴퓨터라 해도 얼마든지 아날로그 과정을 모방할 수 있다. 뇌처럼 고도로 카오스적이고 병렬적인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가 의식없는 존재라는 설의 주장이 인기 있는 이유는 오늘날의 컴퓨터들이 의식 없어 보이는 탓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컴퓨터들은 인간 뇌보다 훨씬 더 간단하다. 아직 인간사고의 소중한 특질들을 잘 모르는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와 인간의 간극은 매우 빠르게 줄어들고 있으며 빠른 시일 내에 오히려 전세가 역전될 것이다. 21세기 중반이 되기 전에 등장할 미래 컴퓨터들은 요즘의 컴퓨터와는 매우 다를 것이다.

생물학적 뉴런도 하나의 기계나 마찬가지다. 뇌 자체가 하나의 컴퓨터이다. 특정 뉴런들의 집합뿐만 아니라 개개 뉴런의 인과관계, 메커니즘도 충분히 규명이 되고 모방될 수 있다. 연구의 폭을 뇌 전체로 확장할 수 있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이 스스로에 대한 자만을 고쳐 왔음은 자명하다. 중요한 과학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인간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신념은 박살이 났다. 

하지만 인간은 효율적인 방법으로 세계를 다루는 능력을 가졌고 기술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진화를 계속해서 이뤄낼 수 있었다. 그로써 생물학적 진화로 시작된 가속적인 발전은 끊이지 않고 지속되었다. 그 발전은 온 우주가 인류의 손에 들어올 때까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다.

이동준(목포교도소 공중보건의. 조선대학교 치과대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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