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우리 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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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우리 베트남
  • 김기현
  • 승인 2007.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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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기 베트남 진료단 후기]- 마지막 편

 

▲ 베트남 진료단 송별회장에서
요즘, 뭐가 그리 바쁜지 정신없는 날들의 연속이다.
가족들은 물론이고, 자신조차 둘러볼 수 있는 여유도 없다.

이런 상황이 짜증날 법도 한데, 그렇지 않다. 몸도 마음도 바삐 움직여야 살아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가롭고 여유로워지면 마음이 불안하다.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런게 좋은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지만, 한번 박힌 습관은 쉽게 고쳐지질 않는다.

바쁜 일상에 파묻힌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위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아진다. 항상 주위를 요하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다. 가능하다면 일탈까지도 꿈꿀 수 있는 용기가 가끔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고속화된 현대사회 속에서 이마저 없다면 참으로 삭막하지 않을까?

웹사이트 회원가입시 닉네임을 넣으라고 하면, 난 항상 '느리게'라고 적어 넣는다.
느리게 사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인데, 정작 난 그렇지 못하다.
느리게 사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일상에서의 탈출이며 일탈이므로 권장할 만하다.

베트남 진료단의 참가는 지금껏 자신을 돌아볼 수 없었던 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인 것 같다. 일상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져 볼 수 있는 여유로움과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규격화시킨 틀에서 벗어나,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인간적이며,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게 해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했다.

휘황찬란 불빛, 수많은 사람과 넘쳐나는 오토바이들.
서울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호치민시의 밤거리도 만만치 않다.
이런 것들에 익숙해져서일까? 생소하거나 이국적인 느낌보다는 부산하고, 정신없다는 느낌정도이다.

8기 진료단이 다시 한자리에 모였다.

8일동안의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 진료를 비롯한 우리의 많은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뿌듯함, 그리고 그동안 정들었던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섭섭함과 슬픔이 뒤범벅되어 묘한 기분이 드는 자리이다.

▲ 송별회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나의 모습
대전에서 오신 송정록 선생님의 사회로 송별회를 시작했다. 이것 저것 워낙 능력이 뛰어난 분(팔방미인)이라 예상은 했지만, 슬픔과 아쉬움이 넘쳐 자칫 감정적으로 흐를 수 있는 자리임에도 오버함이 없이 담백하게 이끌어 나간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별은 꼭 이별만은 아니기에 너무 슬퍼할 일도, 가슴아파 할 일도 아니다. 섭섭한 마음과 그것을 달랠 수 있는 술 한잔이면 족하지 않은가?

애써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나의 얼굴 표정, 눈빛이 그게 아니나 보다. 영동에서 오신 오효원 선생님(1주일내내 꼬박꼬박 챙겨주신 너무나 좋은 시골아저씨 같은 분이다)이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신다. 섭섭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그냥 몸이 좀 안 좋다고 둘러대고 말았다.

이전 진료단 통역을 했던 이들까지 많은 수가 그 자리에서 그렇게 어우려져 술 한잔에 섭섭함을 달래고 있었다. 터지는 수많은 플래쉬 섬광 속에도 섭섭함을 함께 날려보내면서...

8일동안의 베트남의 기억은 전쟁으로 비롯된 아픔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즐거운 기억들이 훨씬 많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들을 끄집어내면 낼수록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하고, 잊지 못하게 될 멋진공연, 탄선 집에서의 베트남 민속악기 공연. 함호계곡 식당에서의 특이한 만찬과 광란의 밤. 베트남 남부에 오면 누구나 가본다는 구찌터널, 시내관광. 다양한 요리의 진수를 보여준,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는 베트남 음식들. 그리고 송별회에서 박철수 선생님이 보여준 멋진 프로포즈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 중에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은 이번 진료단에 참여한 이들의 모습이다. 그들의 모습은 열정적이었으며, 인간적이었다.
그러했으므로 진정으로 아름다웠다.
세상 그 누구보다도, 어떤 모습보다도, 어떤 행동보다도 아름다운,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주일이었다.

정효경 베트남평화의료연대 대표께서 말씀하신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일주일 될 것이란 말. 그것은 함께 한 그들을 보면서 느꼈던 그녀의 심정이었일 것이라 확신한다.
그들을 보면서 느꼈던 행복함, 즐거움은 아마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 이별을 아쉬워 하며 눈물 흘리는 우리 진료단
삶이 고단하고 지칠 때,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것은 물질적 풍요도, 계속된 휴식도 아니다.
인간으로부터 느끼는 아름다움과 행복감이다.(물론 그 반대도 성립하지만) 이것은 진리이다.
아이를 가진 부모는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이 고단하고 지칠 때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면, 그래서 행복해지고 싶다면 베트남으로 가시라. 혼자 가시지 말고,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가시라. 당신은 지금까지의 생애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꿈같은 날들을 보내게 되시리라.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다시 '떤 썬 녓' 공항.
원간, 그녀가 조기종 선생님과 포옹하며 괜히 운다. 우리는 애써 웃음지고 있는데...
그가 그녀를 다독거린다.
애써 웃음지는 우리와 우는 그녀, 똑같다. 우는 것도 아니고, 웃는 것도 아니다.
우는 그녀를 뒤로 하고 애써 웃음지으며 우리는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꿈을 꾼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을. 그것도 일주일씩이나.

김기현(건치 광전지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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