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 한미 FTA, 무원칙·비상식으로 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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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한미 FTA, 무원칙·비상식으로 일관
  • 전양호
  • 승인 2007.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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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25일 한미 FTA 협정문이 드디어 공개되었다.

지난 4월 2일 협상이 타결된 이후 협정문 전문을 공개하라는 국민들의 강력한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정부가 협정서명을 불과 1달 정도 남겨둔 지금에서야, 그것도 각 페이지마다2007.5.25일 공개분이라는 애매한 꼬리표를 단 협정문을 공개한 것이다.

이미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협정문 곳곳에는 국민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곳곳에 숨어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정부에서 잘한 협상이라고 그렇게 자화자찬해왔던 의약품 협상만 보더라도 철저하게 다국적 거대 자본의 이윤만을 보장하는 이번 협정의 본질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애초에 정부는 의약품 협상의 최대 성과로 미국 측이 요구했던 의약품의 A7 최저가 보장 거부를 들었다. 하지만 협정문에는 경쟁적 시장도출 가격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고, 이는 A7 평균가 또는 미국의 시장가격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측은 선택사항이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향후 충분히 논란이 될 소지가 다분하며 미국의 요구대로 이 조항이 관철될 경우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약제비적정화방안이 무력화되어 국민의 의료비 부담이 더욱 가중될 것이다.

또한 의약품 의료기기위원회의 설치를 의무화하므로써 향후 새로운 보건의료정책을 시행할 때 국내의 법과 제도가 아닌 미국의 압력에 의해 좌지우지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의약품 의료기기위원회의 산하에는 작업반(working group)을 두고 상시적인 협상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러한 위원회 구조는 거의 모든 분야의 협정문에도 포함되어 있어 심각한 정책주권의 손상이 우려되고 있다.

이러한 비상식적이고 편파적인 협정문이 나오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현재의 한·미관계와 정부의 협상력의 부재, 한미 FTA를 바라보는 정부의 근본적인 태도에 있다.

정부가 강조한 것처럼 미국은 세계최강대국이며 NAFTA 등의 대규모 자유무역협정의 경험이 있는 협상의 대가이다.

그에 비해 우리정부는 몇몇 통상 관료들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아무런 준비 없이 협상을 시작하였고 미국의 TPA 일정과 임기말 참여정부의 조급증에 쫓겨 협상을 진행하였다.

또한 과거와는 달라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한국과 미국은 경제, 군사적으로 일정정도 종속적인관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애초에 균형적이지 않은 관계에서 출발한, 결과물이 뻔히 보이는 시작해서는 안 될 협상이었다.

그 동안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국민들은 협상 과정을 지켜보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내주고 미국에 질질 끌려다니는 실익이 없는 협상임을 여러번 지적해왔다.

또한 개성공단 문제와 의약품 협상 결과에서도 드러났듯이 협정문 하나하나에도 애매하고 포괄적인 문구가 들어가 있고 이로 인해 한국과 미국의 입장차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적극적인 토론과 여론 수렴 과정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협정문에 대한 아전인수격의 해석과 근거가 박약한 장밋빛 전망만을 반복하며 협상의 실패를 덮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최근 미국은 민주당과 부시 대통령이 합의한 신통상정책을 빌미로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며칠전만 해도 정부는 미국측의 정식 제안도 없었고 재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오늘 김종훈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재협상이 아닌 추가협상은 가능하다’는 어이없는 말장난으로 재협상의 가능성을 인정하였다.

사실 일부 문안은 수정될 수 있다는 문구와 5월 25일 공개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협정문은 미국의 요구가 있다면 언제든 협정문을 수정할 수 있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이미 보여주고 있었다.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의 정부의 무원칙과 무능력. 국민에 대한 일방주의와 비밀주의. 그리고 시도때도 없는 말 바꾸기...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

지금 정부가 할일은 재협상도 아니며, 미국에 대한 굴욕적인 협상 체결도 아니다.

이제라도 정부는 이번 협정문의 허·실을 국민들에게 낱낱이 밝히고, 적극적이고도 공개된 토론을 통해 향후 한·미 FTA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 또한 그러한 토론에 앞서 미국도 다국적 자본도 아닌 우리나라의 선량한 민중들을 위해 협상을 폐기할 수도 있다는 도전적이고 상식적인 의지를 표명해야 할 것이다.

전양호(건치 사업국원, 민트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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