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기획예산처 보건의료체계 바꿀 자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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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부·기획예산처 보건의료체계 바꿀 자격 없다
  • 전민용 논설위원
  • 승인 2004.09.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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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서비스는 공공재다.

재경부가 9월 10일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병원에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며 "외국병원의 설립주체를 외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투자기업도 설립할 수 있도록 확대”하는 내용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법률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획예산처는 한술 더 떠 앞으로 지난 15일 "노인요양·보건의료 분야 등을 민자사업 대상으로 포함해 일반기업들도 투자할 수 있도록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개정안을 마련, 입법 예고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많은 시민단체와 의료계가 경제자유구역 내의 외국병원에 대한 영리법인 허용이 결국 국내 병원에 대한 영리법인 허용의 계기가 될 수 있으므로 반대한다고 한 주장이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아 사실로 증명된 셈이다.

외국인이 10%만 투자하면 되는 외국인투자기업은 사실상 국내기업과 별로 다를 바도 없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근본을 바꾸게 될 이런 중요한 사안들이 국민의 보건을 책임지고 있는 보건복지부 등에서 결정되지 않고 경제 논리로 무장된 재경부나 기획예산처에서 마련되고 있다는 사실부터 국민 건강권에 대한 현 정부의 기본 인식이 어떠한 지 알 수 있다.

또한 복지부의 무책임과 무능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의료서비스는 생명공학이나 의료기기 등의 산업과는 전혀 다르다.

의료서비스는 사회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제공돼야 할 국민의 권리이지, 이윤을 목적으로 투자하는 산업이 되어서는 않된다. 이 때문에 전세계적으로도 의료서비스 부문은 산업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으며 의료서비스 개방이 아예 논제에서 제외되고 있는 상황이다.

병의원을 투자와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영리법인 허용은 그렇지 않아도 전사회의 황금만능주의의 영향으로 점차 상업화되어가는 국내 의료계에 노골적으로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라"고 재촉하며 법적 근거를 마련해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병의원이 환자로부터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산업자본의 논리로 무장했을 때 건강권은 기본권이 아니라 또 하나의 빈부격차의 상징이 되고 말 것이며 공보험을 위축시킬 민간보험의 도입을 더 재촉하게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가입해 있는 치과 보험의 수준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를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재경부의 몇가지 근거논리들은 그동안의 조사와 공론화 과정에서 기초적인 사실 관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졸속적인 정책임이 이미 입증되었다. 국민의 건강을 걱정하는 대부분의 시민단체와 보건의료계 역시 재경부와 예산처의 이번 입법예고를 반대하고 있다.

정부는 도대체 어느나라 누구의 정부인가?

병의원에 투자해서도 땅이나 주식 투자처럼 떼돈을 벌어 보자고 생각하는 소수의 투자자들을 위한 정부인가?

정부는 당장 이번 입법예고안을 철회하고, 현존하는 공공의료기관들에 대한 제대로 된 관리 감독과 공공의료 확충 공약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OECD 국가들의 평균에 턱없이 모자라는 의료보장율 45%, 공공의료기관 비율 8% 라는 부끄러운 수치를 하루 빨리 개선해 가길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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