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6월은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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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6월은 가고…
  • 조기종
  • 승인 2007.07.12 16: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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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맞아 전국 각지에서 지역마다 기념행사가 열렸다. 부산에서도 학술행사, 공연, 효순이 미선이 추모행사 등이 열려 눈부신 기억의 역사를 되새겼다.

6월의 마지막 날엔 광주에서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 님의 영결식 소식이 들려왔다. 5월 광주의 정신과 6월 항쟁의 정신이 맞닿아 있음을 상징하는 듯 했다. 핏빛 아픔을 가슴에 보듬고 천상에서 동지들과 애틋함을 나누고 있을 고인의 안식을 기원한다.

얼마전 도착한 6월 민주항쟁 자료집을 뒤적이니 그 날의 함성들이 가슴 한 켠으로 채워져 왔다.

87년 6월 부산 서면 로타리는 거대한 군중의 용틀임이 이어졌다.

치과 창문으로 가끔 매케한 최루탄 냄새가 스며들고 지나던 대학생들이 뛰어들어 태극기가 없냐고 묻기도 했다. 최루탄을 덮어쓴 환자가 들어와도 누구하나 짜증스러워 하지 않았다. 출근하고 잠시 후면 거리는 서서히 군중들로 메워졌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는 함성들이 점점 높아지고 저녁이면 온 거리는 꿈틀거리는 물결이 되었다. 슬그머니 대열의 끝자락을 붙잡고 따라다니다 자정이 되면 조용히 내려앉은 거리의 적막 속에 내일의 꿈틀거림을 예감하곤 했다.

가슴깊이 억압에 대한 분노를 미쳐 알지 못하고 감추어 놓았던 많은 이들이 열정의 투사가 되었고, 누구도 막아서지 못할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몸을 실었다.

시장 아주머니들은 빵, 우유를 날라주었고, 서로를 모르는 익명의 시민들이 손을 잡고 뛰어다녔다. 합일된 기쁨으로 행진해 나가는 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 의식으로 뭉쳐있었다. 그리고 그들 속 노동자들은 그 여세를 몰아 7, 8월 노동자 대투쟁을 일구어 냈다. 세상은 새로운 변화와 연대의 틀 속에 짜여져 가고 있었다.

20년이 지나 부산의 최영철 시인은 이렇게 썼다.

"다시 돌아다 보니 그날 피워올린 꽃이 얼마나 쉽게 지고 말았는지 알겠다. 저 아래 뿌리들이 흘린 피땀에 비해 얼마나 허망한 꽃이었는지 알겠다. 다 제 잘난 탓 인줄 알았던 꽃의 과오가 아니겠는가. 그로부터 20년, 눈물로 피워올렸던 한 떨기 꽃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해진 20년, 그 꽃을 가슴에 품지도 가꾸지도 않았던 20년을 생각한다."

항쟁의 선두에 섰고, 6·29 항복선언의 허망함을 이야기하던 이가 청와대의 수장인 참여정부. 동북아시아 시대의 중심국가임을 자처하는 나라. 대선주자들이 너나없이 3만달러 소득시대를 장담하는 나라. 이라크 레바논 파병을 하고 이지스함을 생산하는 세계 7위의 군사강국. 나날이 상종가를 기록하는 주식시장, 해외여행객 1천만을 넘어선 여유로움. 치과임플란트학술대회를 위해 전세기를 띄우는 저력의 나라.

그런데 시인은 왜 '못다핀 꽃 한송이' 타령을 늘어놓고 있는가?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 양극화는 심화되고, 코미디 정치인은 길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한미 FTA는 어떤 질곡의 굴레를 우리에게 갖다줄지 감감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거리로 내몰리고, 파업하면 '정치파업이니, 집단이기주의니' 하며 매도당하고, 재벌회장은 자식을 위한다며 주식을 농락하고 폭력배를 동원하고, 사진작가 이시우는 국가보안법으로 잡혀들어가 단식투쟁 중이고….

시장과 자본과 폭력이 활개치는 나라. 여기는 우리가 살고자하는 곳이 아니라고 시인은 절망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세워놓은 6월은 파산 당하고 있지 않는지 묻는 걸까?

6월 거리의 기억은 여전히 잠재된 여력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지 모른다. 밤새 미동도 않다가 낚시터 희부염한 여명을 뚫고 스물스물 솟아오르는 찌불처럼, 행렬은 다시 이어져 나갈 것이다.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는 요설이 힘을 받는 사회는 화해와 상생이 넘치는 공동체로 움츠린 비상을 준비하고 있을 게다.

그때 유행하던 대동그림 속 행렬처럼, 생활속속들이 민주의 기운이 충만해지고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고, 남북이 어우러져 대동춤을 출 수 있다면, 슬그머니 용틀임치는 행렬 속에 잠입해보는 꿈을 꾼다.

조기종(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조기종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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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 2007-07-13 16:03:52
아직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우리들이 많다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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