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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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4.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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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들

김동휘군에게,
'책 어떻게읽을 것인가?' 라는 주제로 자네에게 글을 써달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받았다. 이 주제는, 아이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와 같은 거대하고 근원적인 물음과 다를 바 없어 몹시 난감할 뿐 아니라 내 능력으로 자네에게 도움이 되는 지혜를 전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구나. 그럼에도 내가 경험한 책읽기 여정을 밝히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지금까지 내 삶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에 자네에게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인문학을 제대로 공부한 사람도 아니고 이 분야에 어느 정도 잠재력은 고사하고 평범한 재능조차 갖지 못했다. 다만 웬만큼 책 읽기를 좋아했고 많이 읽기보다는 골라서 읽은 편이었다. 그러니까 초등학교 4학년 시절부터 교과서가 아닌 책에 관심을 가졌다고 기억한다. 지금 생각나는 것은 주로 마크 트웨인의 '학클베리 핀의 모험', '톰 소여의 모험' 그리고 '보물섬', '갈리버 여행기' 같은 모험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을 주로 읽었다. 또한 디즈니 만화영화류의 감상적인 동물 동화 종류에도 관심을 가졌다. 그 중에서 '시이튼의 동물기' 첫 장에 나오는 '황야의 늑대 로보'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지금도 가끔 술자리에서 안주 거리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후 디즈니에서 만든 영화까지 봐서 어릴 때 책 읽은 기억에서 가장 또렷이 남아 있다. 때문에 자연과 동물을 탐사하고 관찰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기자를 하고자 하는 희망을 가졌지만 꿈으로 끝나버렸다. 이 무렵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큰 형 덕분에 베토벤의 교향곡 '전원'을 접할 수 있었다. 그 아름다운 선율에 나는 매료되었으며 이때부터 음악을 즐기며 책을 읽는 습관이 베어 내 삶의 소중한 한 부분이 되었기에 나는 책과 더불어 음악에 영원히 감사한다.

나는 중학입시에 실패하여 지금 생각하면 필요 없는 콤플렉스에 많이 시달렸고, 또 이 시기가 우리 가족이 참으로 시끄러웠고 부끄러웠던 다툼으로 지샜던 내 삶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였다. 이런 저런 탓에 나는 오직 공부만 하기로 마음먹었고,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자 책에 빠져들어서 지금과 달리 매우 내성적이 되었고 친구를 사귀지도 않았다. 때문에 쇼펜하우어류의 철학에 관심을 가졌다. 물론 내용을 체계적으로 이해 못했지만 염세적인 몇몇 구절은 외우기까지 했다. 이 무렵 영화 '닥터 지바고'를 보았고 광대한 시베리아 설원에서 벌어진 웅혼한 사랑 이야기를 보며 사춘기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런 종류의 고전 문학에 흥미를 느꼈다. 아름다운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가슴 조려 보면서 음악에 대한 동경을 가졌다.
이때부터 중국 무협영화들이 수입되어 크게 유행하였고 더불어 중국무협소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책은 영양가가 전혀 없었지만 말초적인 재미가 있어 쉽게 빨리 읽는, 다시 말해 책장을 대각선으로 긁어 내리 읽는 속독법을 터득하였으니, 이런 유치함에도 한 가지쯤 미덕이 있다는 것이 세상살이에 있는 법이란다. 또 한가지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시리즈, '괴도 루팡', 알렌 포우의 탐정소설을 밤 세워 읽고 또 읽은 것은 매우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누구나처럼 삼국지는 두 번 이상 읽었으며 십팔사략, 초한지 같은 중국 역사소설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도 바로 이때였다.

1971년, 어찌하여 아버지와 운명적 인연을 맺게된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경고는 이 나라 최고의 명문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특출한 친구들이 많았고 이런 동기들과 공부를 하다보니 교과를 허겁지겁 따라만 가기도 매우 벅찼다. 따라서 책읽기는 교과서와 참고서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세계사 참고서를 독파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고 그것으로 만족하기까지 했다. 어떤 때는 세계사 시험을 반에서 가장 잘 보았던 때도 있었다. 물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여기에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지. 이렇게 말하는 나는 문과 체질에 적합해야 하는 데 실제 내 공부 성향은 이과에 맞았다. 수학, 물리 같은 것은 반 평균보다 조금 나은 편이었고 영어, 국어는 반 평균보다 훨씬 아래였다. 어떤 이는 내가 어느 정도 논리적이라고 하는데 실제 그렇다면 수학과 물리를 매우 좋아한 덕분일께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논리를 통한 토론문화가 지극히 뒤떨어져 있다고 우려하는 데 이것은 동양 사회의 취약점이기도 한 수학적 논증이 삶에서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 본다. 문과를 지향하는 학생의 일반적인 취향이 수학을 못해서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데 수학을 소홀히 하면서 인문학에 입문한다는 것은 나는 잘못이라 생각한다. 플라톤이 세운 인류 최초의 대학 '아카데메이아'의 입구에는 이런 표어가 쓰여 있었다고 한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여기에 들어오지 말라." 이 말이 뜻하는 바를 앞으로 자네는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지금 서양 문명이 무지막지한 힘을 갖게 된 것이 바로 헬레니즘 즉 희랍의 이런 이성적 사유에 토대를 단단히 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이 명제가 갖는 괴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라는 것을 새겨야 한다. 동양 사회에서 아직도 주역이니 황제 내경이니 풍수니 하며 현란하고 막연한 신비에 빠져 있는 사람이 많은 데 그 보다는 '삼각형의 두 변은 한 변보다 길다'라는 명명백백한 진리를 먼저 그리고 확실히 배워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어떤 시기보다 싱싱해야할 고교 시절을 입시에 필요한 지식만 암기로 머리에 꾹꾹 채웠다는 것은 언제 생각해보아도 억울하다고 느끼고 이러한 한심한 짓거리가 자네 세대 그 다음 세대까지 죽 이어갈 것을 생각하니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1975년, 재수를 한 뒤 어째 '두루뭉실 재수 좋게' 치과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전자공학 계통에 관심이 있었지만 당시 내 실력으로 무리였다. 내가 두루뭉실 재수 좋았다고 말하는 뜻은 내 적성에 썩 맞지 않았지만 대학 졸업하고 나서 내가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손쉽게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기득권이라는 것은 나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보다 경제적 여유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이런 여유 때문에 나는 사회활동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니 이 점에서 재수가 썩 좋았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치과라는 학문은 우리나라에서 정립되는 중이어서 대충 공부해도 슬쩍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때처럼 엉거주춤 공부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학문이 빡빡해졌다. 더욱이 당시에는 억압적인 정치체제라는 사회적 조건 때문에 대학생의 현실참여는 정당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니 데모는 끊이지 않았고 툭하면 휴교였다. 시간이 많아 술 마시고 담배 먹는 대학 생활의 방탕을 만끽하고 미팅에 쭐레쭐레 돌아다니면서 철없이 예과를 보냈다. 그러다가 덜컥 낙제를 하였다. 사실대로 말하면 집에 내려가야 하는 데 그렇게 하지 않고 하숙비를 받아 하숙방에 틀어박힌 나날을 지냈다. 부끄럽기도 해서 친구들을 자주 만나지 않았다. 부모님을 속인 1년 간의 하숙 생활에서 책읽기에 오로지 몰두하였다. 아마 그때 읽은 책에서 지금까지 내가 지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인문학적 베이스를 형성하는 엄마의 젖 같은 결정적인 영양분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는 책제목과 저자들은 이런 것들이다. '적과 흑', '죄와 벌', '쇼펜아우어', '소크라테스 변명', '전쟁과 평화', '데카메론', '역사 연구', '논어', '맹자', '사기', '장자', '제자백가' '그리스 신화' '모파상' '체홉' '카뮈' '막스 베버'... 주로 이런 고전류의 책을 의무적으로 다시 말해 내가 어떤 주관적 의도를 갖고 읽은 것이 아니라 서점에 들러 나에게 낯익은 제목의 책을 그냥 골라잡아 읽은 것이었다. 이들 책에서 당시에는 별다른 어떤 감명을 받지는 않았다. 그저 시간을 친구삼아 읽기만 한 것이었다. '순수이성비판', '일리야드' , '파우스트', '신곡' 같은 것을 몇 번이나 읽어보려고 책장을 넘겼지만 결국은 몇 쪽만 끌쩍거리다가 덮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이런 마스터피스(대작)에 대한 지식은 독서평론 같은 쉬운 해설서에서 간접적이고 단편적으로 주워 모은 것들이라고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구나. 자네는 인류의 마스터피스를 주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 바란다.
당시 내가 가장 감명한 책은 대만사람 임어당이 쓴 '생활의 발견'이었다. 다양한 주제를 화려한 문체로 재미있게 늘어놓은 데서 많은 교양적 지식을 얻었고 그때 누구를 만나면 이런 파편적 지식을 자랑스레 마구 떠들었다. 요즈음 다시 보니 옛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구나.

박정희 대통령의 강압정치는 날이 갈수록 도를 더하자 대학에서는 이른바 '의식화 서적' 즉 사회구조의 모순을 밝혀내어 사회를 바로 잡고자 하는 이념 서적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마르크스 계통의 경제와 역사에 관한 서적이 대학가를 휩쓸었고 특히 리영희 교수가 당시 중공이라 부른 중국의 현실과 베트남전쟁의 진실을 밝힌 '전환시대의 논리'는 모든 대학생의 필독서가 되었다. 나는 지금도 이 책이 가지는 역사성과 리영희 선생이 보여준 엄밀한 저널리스트 정신이야말로 우리 시대 책 가운데 가장 모범이라 확신하고 있다.

그러던 중 내가 그야말로 최초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감명을 느낀 책이 '드레퓌스'였다. 한 프랑스의 유태인이 국가전체주의란 여론에 희생당할 때 사건의 진실을 꿰뚫은 프랑스 대문호 에밀 졸라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인간으로써 존엄성을 가져야 한다고 확신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권력을 왜곡하는 프랑스 정부와 인종주의에 사로잡힌 프랑스 대중에 대항하여 펼치는 장엄한 용기에 무지무지하게라는 말로도 채울 수 없는 깊은 감명 받았다. "나는 궁극적 승리에 조금이라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나는 더욱 강력한 신념으로 거듭 말합니다. 진실이 행군하고 있고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 없음을!" 99%의 대중이 믿는 것이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떠한 탄압에도 심지어 목숨을 걸고라도 굴하지 않겠다는 에밀 졸라의 사자후를 지금까지도 내 인생의 모토로 삼고 있다. 이 책을 두 번이나 읽고 난 후 나는 비로소 나의 눈으로 책을 읽어내는 안목을 가지게 되었고 나의 목소리로 책을 평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의 '돈오(단박에 깨달음)' 였다. 대부분 무거운 주제의 책을 읽으면 나름대로 평가하기 보다 해설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제 해설과 다른 방향에서 또는 미처 해설이 밝혀내지 못한 포인트를 끄집어내는 힘을 문득 가지게 된 것이다. 수영을 오랫동안 배우면서 터득한 것인데, 처음 몇 달 동안 아무리 발버둥치거나 허우적거려도 물만 먹다가 어느 날 순간적으로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호흡이 고르게되는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돈오란 불연속적 '튐'인데 실제 일상적인 꾸준함이 없이 이루어 낼 수는 없다. 자네도 무슨 일에서든지 꾸준히 집중하면 '돈오'의 느낌을 가질 것이다.

내 나름의 안목을 가지고 책을 고를 수 있으니 앞서보다 책을 선택하여 읽는 재미가 더해졌다. 월 듀란트의 '철학 이야기'에서 형이상학의 딱딱함과 고집스러움을 비켜 갈 수 있었고, 플라톤과 칸트가 도저히 다가갈 수 없는 먼 이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으며, 특히 계몽시대 철학가 볼테르가 자기 시대에 던진 익살과 풍자의 진면목을 즐겁게 바라볼 수 있어서 나에게는 최고의 철학 서적이 되었다. 네루가 감옥에서 어린 딸 간디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묶어 편찬한 '세계사 편력'은 어쩌면 그렇게 쉬운 말로 어떻게 지식과 교양을 그처럼 풍부하게 전할 수 있는가 라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나에게는 최고의 역사서가 되었다. 정치에서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적어도 지와할랄 네루 정도의 공력을 쌓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때는 생각했는데, 찬찬히 살펴보니 네루에 버금갈만한 정치지도자를 찾으려면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전 인류역사에서 정작 몇 사람이 손가락에 꼽힐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일어났다.

나는 당시 학생 운동에 어떤 계기로 직접 참여하였고 그때부터 사회과학 서적을 꼼꼼히 읽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시대가 절박하다보니 예술, 문학 이런 것보다 철학과 역사에 대해 관심을 대부분 쏟았다. 이를테면 편식을 한 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스스로 생각해도 논리를 좋아하다 보니 토론하면 분위기를 뻣뻣하게 만들고, 대화에서 유머나 재치같은 윤활유를 치기보다 엄숙주의에 빠지기가 십상이었다. 자네 아버지가 지닌 유머나 재치는 나에게 언제나 부러운 재능이었다. 시적인 상상력, 진솔한 문학적인 수사, 아이러니 심지어 딜레마까지 인생의 맛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조미료라고 지금은 느끼고 있다.

나는 졸업을 코앞에 두고 결혼을 했고 바로 보건소에 의무 근무를 했다. 그리고 개업하자 돈벌이에 바빠 사회적 의식에 관심이 점점 옅어졌고 책 읽기도 가벼운 에세이나 소설 같은 것을 그것도 거저 눈길 한번 휙 돌리는 식이었다. 벽초 홍명희 선생의 명저 '임꺽정'도 읽다말고, 그러다가 심심하면 셰익스피어의 천의무봉을 되새김하는 정도였다. 이렇다할 만한 책읽기는 없었다.

아마 자네가 태어난 해인가? 1987년 이른바 6·10항쟁을 계기로 다시 사회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때 우연히 접한 책이 요즈음 학자로써 보다 엔터테이너로 더 유명한 도올 김용옥의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이었다. 도올이 보여주는 자기가 주장하는 철학과 동떨어진 행동 양식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있지만 나는 그 책에서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도올을 두고 극단적인 칭찬과 비난으로 나뉘는데, 나는 도올이 가진 객관적인 방대한 지식만은 한 치의 에누리 없이 칭찬해 주고 싶다. 우리나라가 서양은 물론 일본에 비해서도 근대적인 지적 능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열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추격의 새로운 토대를 쌓기 위해서는 도올과 같은 지식 축적량이 많은 사람을 어떤 의미에서라도 존중하는 풍토가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글에 보여준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종횡무진한 지식 나열은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자산이다. 나는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나름대로의 충격을 받고 논어와 장자 같은 동양학과 불교와 불학에 대한 관심을 새로이 가지게 되었다. 특히 불교 또는 불학의 심오함을 제대로 느끼는 것은 갠지스강 모래알을 세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읽은 책 가운데 소로우가 쓴 '월든'이라는 책이 있다. 부제가 '숲 속의 생활'인데, 1830년대 하버드 대학을 나온 엘리트가 월든이라는 시골 호숫가 숲 속에서 제 손으로 통나무집을 짓고 자급자족 농사일을 하면서 숙고한 점을 적은 책인데 '드레퓌스' 이후 또다시 주체적 감동을 느꼈다. 애숭이 나라인 미국에서 그것도 기껏 30살 젊은이가 보여준 사고의 폭은 실로 감탄할 지경이었다. 철도가 갓 부설하고 있던 시기인 이때에 기계문명의 폐해를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보다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속삭이는 외침은 인간 예지의 아름다움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인도의 '우파니샤드', '바가바다 기타', 중국의 '논어' 심지어 '맹자'의 격언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쓸모 없는 노년기에 미심쩍은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 인생의 황금시절을 돈버는 일로 보내는 사람'들을 질타하고 있다. 기계문명을 예리하게 비판한 측량기사가 보여준 사유의 폭은 그 당시 공자 맹자 말씀만 우주의 전부인양 굳게 믿고 있었던 조선의 고리타분한 유생과 차라리 비교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미국을 일천한 역사와 천박한 문화를 가진 나라라 흔히 비하해야만 속이 시원해지는 사람들은 데이비드 소로우를 바로 안다면 그런 말이 대단히 실례가 되는 무지막지한 발상이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것이다. 소로우 전에는 에머슨이 있었고 또다시 거슬러 올라가면 유럽 문명으로 무장한 엘리트들을 줄줄이 발견할 것이다. 더욱이 소로우는 조국이 멕시코를 침공하자 그 유명한 '시민의 불복종의 의무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하여 미국의 야만성을 통박하였다. 이 책의 첫 구절인 "내 가슴에 다음과 같을 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다스리지 않는 정부일수록 좋은 정부이다." 라고 한 것은 후세 정치학도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소로우의 직계 제자가 바로 간디인 것이다. 간디의 비폭력을 통한 불복종운동의 뿌리는 소로우다.

아마 네가 태어날 무렵부터 아버지와 나는 급격하게 친해졌고 고교시절 면식이 없을 정도의 교제임에도 지금은 가장 친한 동기가 되었다. 인생에서 교우관계는 실로 예측하기 어렵구나. 지금까지도 아버지와 함께 술을 가장 자주 마시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은 나는 대체로 책을 읽는다. 아마 이런 습관을 알고 있기에 아버지가 내게 이런 부탁을 한 것이리라.

내가 읽은 모든 책을 자네에게 일일이 소개할 또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제 내 인생에 세 번째로 충격과 감동을 안겨준 책을 소개해야겠구나. 그것은 뜻밖에도 그리고 어떤 의미로든 나에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20세기 일본의 천재학자 마루야마 마사오가 쓴 '일본정치사상사연구'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일본을 막무가내로 대하려하고, 이런 삐뚤어진 감정에는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중국문명을 전해주었다는 과거 역사에 대한 자만심과 근세사에서 이런 '왜구'에게 국가적 치욕을 당한 콤플렉스가 복합적으로 얽혀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의 전통적 학문에 대한 정보는 거의 무지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일본은 1860년대까지 우리보다 더한 쇄국 정책을 고집하였으나 곧 서양의 문명을 받아들이자 반세기도 채 안되어 그들을 따라 잡는 괴력을 보여줬다. 러시아를 격파한 후 한반도를 집어 삼켰고 이를 발판으로 자기 나라 수십 배되는 중국 대륙을 마음껏 유린했다. 더욱이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세계대전을 일을 킨 능력을 과시했다. 서양이 수세기에 걸쳐 이룩한 물질적 파워를 일본은 단숨에 이룩한 것이었다. 이 물질적 파워를 갖출 수 있는 인문학적 능력을 간과하고서 일본을 이해한다는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진 독후감보다 더 피상적일 수 있다. 일본 내에 분명 '근대적 자아' 다시 말해 서양의 물질적 문명을 받아들일 인문학적 토대가 이전에 벌써 마련되어 있다는 것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부분을 자네가 잘 이해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지만 예를 들어 이렇게 생각해보자. 말과 활과 칼로써 싸우는 전투는 사실 문명의 토대가 없어도 힘만 센 놈이 이길 수 있다. 몽고가 그랬고 여진, 거란 같은 나라들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군함을 만들고 총을 만들기 위해서는 단순히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고 밑바탕이 되는 세밀한 과학 교육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일본 역시 개항하기 전에는 지독한 유교 국가였으며 유교 국가의 이념은 오직 옛 성현의 말씀만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처럼 양반이 수학공부하고 화학 실험한다는 것은 당시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근대적으로 개화하기 위해서는 양반 엘리트들이 이런 실용적인 교육이 공자왈 맹자왈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점을 인식하여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제도의 바탕을 이루는 이론이 뜯어 고쳐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방식의 운동을 실학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자네는 잘 알겠지. 우리나라의 실학의 거장은 정약용이라 한다면 일본에서 그에 비견되는 인물이 오규이 소라이라는 학자이다. 오규이 소라이의 이론은 다가올 서구 문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근대적 자아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우리의 정약용의 개혁은 이런 철학적 개념으로까지 발전하지 못하고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오규이 소라이가 봉건적 유교 관념에서 탈피하여 근대적 자아를 어떤 근거로 펼쳤는가를 밝힌 것이 바로 마루야마가 쓴 이 책이다. 그는 여기에서 헤겔의 학문적 방법을 차용하여 일본의 근대화를 닦은 소라이의 이론 틀을 세밀하게 분석한 것이다. 아마 자네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이지만, 어쨌든 논리의 치밀성과 엄밀함 그리고 독어와 영어와 같은 외국어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성실성으로 엮어낸 이 책은 20세기 동양에서 나온 책 가운데 세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1940년에 이 책을 쓴 마루야마의 나이가 불과 동경대 법과 대학원 조교였던 26세에 썼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천재라고 자부하는 서울법대 출신들이 오직 사법시험에만 매달려 몇 십년간 변변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하지 못한 점에 대해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처절히 반성해야 될 부분이다.
승전한 미국이 자만심에 가득한 채 일본을 마구 깔볼 때 마루야마의 책을 발견하고 일본의 파워를 재고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내가 여기에 마루야마를 길게 소개하는 것은, 우리가 퇴계나 읍조리며 제 자리 걸음하는 동안 근대 일본의 인문학 수준은 일본과 우리 사이 경제 수준의 격차만큼이나 또는 그 이상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예증하여 여기에 우리 천재들의 심각한 자성을 촉구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밖에 다양하지는 않지만 여러 책을 섭렵하였고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신선한 자극을 받아 문화와 관련된 책들도 읽었다. 특히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젠슨의 '회화의 역사'도 책읽기 과정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명저들이었다. 명저란 교양을 풍부하게 할 뿐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데 다양하고 따뜻한 시각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드레퓌스', '월든', '일본정치사상사연구' 이 세 책에서 내가 얻은 영감을 자네에게 공유하라고 권유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렇더라도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설사 이 책들을 자네가 읽어도 내 느낌과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리라. 칸트가 이런 말을 했지. 나는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철학하는 것(철학적 사유)을 가르친다고. 책에서 읽은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고 나의 책 읽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함인데 자네가 이해하게끔 설명이 잘됐는지 혹시 삼천포로 빠진 것이 아닌지 사뭇 궁금하다. 대충 나는 이렇게 책을 읽었다.

다시 우리의 숙제인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 designtimesp=3329>와 같은 의미인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designtimesp=3330>로 발걸음을 옮겨 보자. 살아가는 모습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그 방법이 다르다고 해서 삶에서 질의 차이가 있다고 볼 수는 결코 없다. 마찬가지로 책읽기 방법이나 책 선택에 있어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고 감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의 삶이 다 옳은 것이고 출판된 모든 책은 다 좋다고 보는 것은 난센스다. 모든 사물을 객관화시킬 수 없다고 해서 모두 주관적 해석만 판치게 해서서는 또한 안 되는 것이다. 책이란 작품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객관적 칭찬이나 비난을 논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지만 집필의 의도와 그 메시지에 관한 격조는 따지지 않은 수 없다. 그 격의 높낮이가 확연히 드러나는 하나의 예를 들겠다.

『태평양전쟁 당시 전투에 지면 항복하지 않고 집단 자살을 한다든지, 자살 비행대로 함대에 돌진하는 일본인의 행동을 미국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1944년 미국 국무부는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1887∼1948)에게 이런 독특한 가치관에 대한 연구를 위촉하였다. 그녀는 1946년 각고의 노력 끝에 『국화와 칼』이라는 일본 문화의 틀을 탐구한 책을 내놓았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일본을 이해하는 최고의 길잡이로 꼽힌다. 일본인의 행동양식을 주관적 또는 피상적인 ‘나의 잣대’로 바라본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잣대’ 다시 말해 일본의 역사에서 생성된 문화양식을 찾아내어 일본인의 행동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세기에 태어난 인류학이란 학문에서 이 책은 고전으로 대접받고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 놀라운 것은 그녀가 일본에 한번도 가보지 않고서 성찰만으로 이 역저를 펴냈다는 것이다.

수년 전 우리나라 언론인 전여옥씨가 일본 특파원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냈다. 전여옥씨는 2년 반을 일본에서 살면서‘한국식 잣대’로 일본을 느낀 후 일본이 별것 아니라고 비아냥거리며 단정하였다. 일본 콤플렉스를 해소하는 듯한 책제목부터 논란이 일었고 어쨌든 일본을 얕잡아 보고 싶은 국민 정서와 코드가 맞아 얄팍한 내용임에도 이 책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그녀는 지금도 여러 언론에 칼럼을 쓰면서 '나만의 잣대’로 비아냥대는 습관을 여전히 갖고 있다. 고전 반열인 『국화와 칼』에 비해 성찰이 턱없이 부족한 이『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주간지 수준으로 폄하하는 것은 전여옥씨에게는 억울할지 몰라도 실제‘잣대를 선택하는’격조의 차이는 누가 봐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처럼 단박에 드러나는 차이를 느낄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글이 나타내고자 하는 정확한 진의를 과연 제대로 전달할 수 그리고 전달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런 예를 하나 들겠다. '장자'라는 책에서 천도 13편에 나오는 '성인의 찌꺼기'라는 비유이다.

『제나라 환공이 자신의 대저택 마루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그 마루아래 정원마당에는 수레바퀴를 만드는 목수가 때마침 수레바퀴를 깎아 새로 껴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 목수는 자기가 만지작거리고 있던 망치와 끌을 내려놓더니 뜨락의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가 마루 앞에 우뚝서서 감히 환공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감히 묻겠습니다. 공께서 읽고 계신 것은 무슨 말을 적어놓은 것입니까?"
"이것은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이란 사람들은 살아계십니까?"
"물론 성인들은 돌아가신 지 오래다."
"그렇다면, 당신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들의 똥찌꺼기일 뿐입니다."
"과인이 책을 읽는데 일개 목수가 이 책에 대하여 왈가왈부 한다는 것이 어찌 있을 수 있는 일이냐? 만약 네가 너의 말에 대하여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한다면 너는 살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을 것이다."
"제가 사리를 깨닫는 것이래야 겨우 제 작은 체험의 소견으로 말할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수레를 깎는다하는 것은 그 비결이 바퀴살이나 외륜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축과 끼어 맞춰지는 핵심은 내륜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륜은 너무 많이 깎으면 헐거워서 단단치 못하고 덜거덩거리게 되고, 또 너무 좁게 깎으면 빡빡해서 축이 들어가지도 않고 바퀴가 굴러가지도 않습니다. 헐겁지도 않고 빡빡하지도 않게 깎아야만 하는데 그 기술은 오로지 손에 붙을 뿐이며 그 손의 움직임이 나의 마음과 저절로 상응케 되는 것이래서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바퀴깍는 비결이란 손과 마음사이에 존재하는 것이며 말에 있지 않습니다. 제가 늙어가면서 이 기술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 제 자식에게 그것을 전수하려고 아무리 말로 표현해 보았지만 표현이 될 수가 없었고, 제 자식도 또 신으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일흔이 되도록 이 짓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고 늙어도 결국 바퀴를 깎다죽을 수밖에 없는 팔자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옛 성인도 정말 전하고 싶었던 것은 전하지 못하고, 전하고자 했던 것과 더불어 무덤으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께서 읽고 계신 옛 성현의 말이란 것은 결국 옛 성현의 똥찌꺼기일 뿐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주앙쯔(장자)는 말한다.

세상사람들이 도를 얻기 위해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책이다. 그런데 책이란 것은 말을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말이란 귀하게 여겨지는 데가 있다. 말이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 뜻 때문이다. 뜻이란 반드시 지시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뜻이 지시하고자 하는 것은 말로써 전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세상사람들은 말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에 책을 소중하게 전하고 있다. 허나 세상이 제아무리 그것을 귀하게 여겨도 그것은 귀하기 여길 바가 되지 못한다. 세상사람들의 귀함이란 결코 귀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앙쯔의 경고는 관념적이고 이론만을 위한 이론 또는 학문만을 위한 학문을 하는 자세에 날카로운 핵펀치를 날린 것이다. 주앙쯔의 생각이 너무도 글과 말의 근원과 본질을 잘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과 말을 정확하게 표현하더라도 바퀴를 깎는 것 하나를 내 자식에게 평생 가르칠 수가 없었으니, 모든 글과 말의 표현은 결국 그 글과 말이 나타내고자 하는 세계의 핵심을 나타낼 수가 없고 따라서 모든 글과 말은 그것이 제아무리 성현의 말씀이라 할 지라도 결국 성현이 나타내고자 것이 아닌 그 찌꺼기일 수밖에 없다는 수레바퀴장인의 소박한 언급은 환공의 기세를 누르고도 남을 진리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글을 부인하는 주앙쯔 역시 글로써 자신의 뜻을 남긴 이 패러독스의 깊은 뜻을 자네가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잘 곱씹어 보기를 바란다.

쇼펜하우어가 책읽기에 대한 잠언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종이 위에 쓰여진 사상은 일반적으로 모래 위에 남겨진 발자취 이상의 것이 아니다. 보행자가 걸어간 길은 보이지만 그가 길가는 도중에 무엇을 보았는가를 알려면 우리는 자신의 눈을 사용해야 한다.』

만약 쇼펜하우어가 주앙쯔를 미리 알고 이 말을 했다면 세련된 표절이라 보겠지만 독창적이라면 언어 또는 글을 부정하는 이 두 사람의 견해에서 우리는 보편적인 그 무엇을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이해 자체가 인간이란 보편적 인식구조에 뿌리박고 있다면,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흰둥이나 검둥이나 누렁둥이를 막론하고 인간이 이해를 하는 방식에는 그 내재적 유사성(instinsic similarity)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유사성에 근거하여 그 무엇에 대해 판단한 것을 우리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universal value of human being)라 부른다.

한편 인간이 만물의 영장 즉 영(혼)의 장(우두머리)가 된 것은 경험한 것을 지식으로 변환시켜 축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 때문이다. 지금의 고양이는 수만 년 전의 동물적 행태를 그대로 반복하지만 인간은 시행착오를 지식으로 정리하여 다음 세대에 물러주고 다음 세대는 교육을 통해 그 경험을 물려받는다. "누군가 지나가다가 가시에 찔려 피를 흘리면 그것만으로 가는 길을 멈출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다음에 가시에 찔리지 않을 교훈으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축적된 경험에서 많은 교훈을 얻고 배우려고 노력하라." 이러한 지식을 갖기 위해 유학의 고전 '대학'에서는 이렇게 일렀다.

『국가를 훌륭하게 정비하고자 하면 먼저 가문을 단속하라.
가문을 단속하고자 하면 그들은 먼저 인격을 갈고 닦아라.
인격을 갈고 닦고자 하면 먼저 마음을 바로 잡아라.
마음을 바로 잡고자 하면 먼저 생각을 진실하게 가지려고 노력하라.
생각을 진실하게 가지고자 하면 먼저 지식을 깊이 연구하라.』

이 말씀 또한 만고불변의 진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지식을 깊이 연구하는 가장 근원적이고 일차적인 것이 바로 책읽기인 것이다.

자, 그럼 지식을 구하고 성찰해서 얻은 참다운 지혜와 그렇지 아니 한 경우를 보자. 이 차이를 그 유명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유명한 불교 격언에서 살펴보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산은 물이고 물은 산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옛 어느 선승의 네 구절은 간단하다면 아주 간단하고 깊이 생각하면 불교의 인식론 전체를 섭렵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이 의식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 의식은 자기가 스스로 깨달아서 얻은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있었던 관습과 타성으로 틀 지워진 것이었으며, 그때 보인 산과 물은 보이는 모습 그대로의 산과 물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떤 문제에 부딪혀야 마음 속에서 스스로의 인식을 갖게 되고 그러한 생각에 '길이 잘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닥쳤을 때에 이미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인간의 비극은 시작되고 인간의 탐구는 시작한다. 이러한 탐구를 하는 동안 인간은 문제상황에 계속 부닥치게 되고 그러면 인간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 맨다. 동양의 문화에는 이러한 곤혹을 해결시켜 줄 절대적 종교인 하나님이 없었기에 산이 물이 되어 버리고 물이 산이 되어 버리는 혼돈을 해탈·초월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그러한 해탈·초월 그 자체를 해탈·초월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산이 물이고 물이 산인 그 웅혼한 무차별의 경지에서 결국은 산은 산이고 물을 물인 현실로 되돌아와야만 했던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인간 인식의 비극적인 어려움이자 위대함이 있는 것이다.
쉽게 결론을 말하자면 첫 구절의 '산은 산, 물은 물'이란 것은 '어린애이다(childish;유치하다)'이란 뜻이고 넷째 구절 '산은 산, 물은 물'이란 구절은 '어린애답다(childlike;맑고 순진하다)'란 뜻이다.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상식은 다소 유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치열한 사고를 거쳐도 결국은 우리의 삶이 상식에서 상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체험적으로 전달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과정을 거친 앎은 유치한 것이 아니라 순진(밝고 맑음) 그 자체란 뜻이다. 통찰력이 깊은 사람일수록 쉬운 말을 잘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베트남의 호치민이라는 인물이 이러한 범주의 가장 모범적인 사람으로 나는 확언한다. 호치민은 어릴 때부터 나라를 빼앗긴 조국의 고통에 눈을 떴다. 그러나 호는 압제자 프랑스에 맹목적으로 적대감을 가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테러나 폭동과 같은 폭력저항운동을 하기 보다 조국을 억압하는 프랑스가 어떤 힘을 가졌고 그 정체가 과연 무엇인가를 먼저 알려고 했다. 그래서 스스로 프랑스어를 깨치고 파스칼, 몽테뉴, 루소, 볼테르 이런 기라성 같은 프랑스 지식인의 책을 중학교 나이 때부터 숙독을 했다. 그가 나중에는 공산혁명가로 인류역사에 길이 남을 명성을 얻지만 다른 공산혁명가와 달리 유연한 모습을 발휘하여 조국을 제국주의 전쟁에서 찬란한 승리하게 할 수 있었던 내면의 파워는 바로 어릴 때부터 책읽기를 통하여 풍부한 교양을 쌓은 것이 원동력이었다. 그는 평생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며 공자 맹자를 비롯한 동양의 고전은 물론 플라톤 칸트에서 마르크스까지 서양 고전에까지 정통했으며 더 놀라운 것은 노년에 밀림과 동굴에서 게릴라 전투를 하면서도 우리나라 불후의 명저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베개삼아 읽었다는 사실이다. 또한 한시를 짓는 능력이 뛰어나 유네스코가 선정한 세계 문학가의 반열에 올라 있다. 인간의 내공은 강철도 쉽게 녹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내가 너무 장황했는가? 이것이 대체로 책읽기에 대한 나의 견해이다. 어쨌든 인터넷 시대에서 불어나는 정보량과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모두 소화하기는 어렵겠지. 흔히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대체 어떤 책이 좋은 책인지 몰라 당혹해지기 쉽다. 그러기에 어떻게 슬기롭게 책을 선택하느냐가 매우 중요하지만, 가치 있는 것의 성취에 이르는 길이 매양 그렇듯이 책읽기에도 왕도가 없다고 말해야겠다.
우리는 얼굴 생김새가 서로 다르다. 그리고 음식 맛을 서로 달리 느낀다. 책읽기 필요성이 서로 다를 것임은 새삼스럽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거나 읽어도 마찬가지라는 견해에는 동의 할 수 없구나. 더구나 젊을수록 그러한 견해는 더욱 위험하다. 왜냐하면 앞서도 말했지만 삶에는 격조가 있는 법이란다. 바둑에도 급수가 있는데 하물며 학문적 능력에도 어찌 격조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로 세로 19줄이 교차하는 지점 어디에 바둑돌을 놓아도 상관없지만 진정 그 묘미를 알기 위해서는 정석이라는 근본을 일찍부터 그리고 제대로 깨우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책읽기에도 정석교본이 있지 않을까 의구심을 가져야 하고,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가 교과서에서 소개하는 고전이 될 것이다. 누군가 고전이란 누구나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책장에 그대로 꽂혀 있는 책이라고 지적했지만, 고전에서 가슴에 촉촉이 스며드는 향기를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깨친 사람이라 할 것이다. 정석만 잘 안다고 바둑의 최고수가 될 수 없음과 같이 책읽기에도 그러하지만 말이다...

이제 결론을 내려야겠구나. 궁극적 대답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책이 무엇이냐가 된다. 이리 돌고 저리 돌아도 역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것이다.

책읽기는 충실한, 대화는 재치있는, 글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우리 동휘군은 충실하고 재치있고 정확한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또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하룻밤을 쓰고
하룻밤을 퇴고하다.
2003년 6월 22일

ps;나의 절친한 친구가 고등학교 2학년인 자기 아들에게 책 읽기에 관한 글을 써달라고 해서 쓴 글입니다. 너무 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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