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정책칼럼] 역설과 희망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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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책칼럼] 역설과 희망의 정치학
  • 신영전
  • 승인 2007.09.10 15:3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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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체르니쉐프스키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소설을 쓴 것은 1862년 수용소에서였다. 그의 소설은 이후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이 질문을 던진 이는 그만이 아니다.

아픈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 특별히 홉스가 말한 '인간의 인간에 대한 늑대'(homo homini lupus)로 살기보다 크로포트킨의 '서로 돕는 만물적 존재'로 살기 원했던 많은 이들이 같은 질문을 던졌고, 역사의 진보를 만들어 온 이들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마치 '정언명령'인양 실천했던 이들이었다.

여전히 세상은 아프다.

아프가니스탄 인질사태, 비정규직법과 관련한 이랜드 사태, 북핵문제, FTA협상, 그리고 코 앞으로 다가 온 대통령 선거 등으로 나라 안팎이 온통 어수선하다.

보건의료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자유특구 내 외국병원허용, 유인알선과 영리성 부대사업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 채권발행을 통한 투기성 자본의 육성, 그리고 FTA의 강행 등은 건강과 보건의료서비스를 국민의 보편적 권리라고 주장했던 이들에게는 마치 쓰나미 같은 재앙이 밀려오고 있는 느낌이다.

이른바 87년 체제의 진보진영은 정치영역의 민주화를 진일보시켰으나, 새로운 사회에 대한 전망과 국민적 동력을 이끌어 내지 못한 채, 지구화한 대자본과 수구 세력에 급속히 포섭당하고 있는 양상이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아픔은 이러한 상황과 깊이 연결돼 있다. 이것은 보건의료부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선 나는 2007년 한반도, 그리고 보건의료영역을 '거대 위기의 시공간'이라 명명한다. 이 세기의 모순이 '여기'만큼 응축된 곳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공간과 시간을 '위기'라 명명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위기의 본질을 늘 먼저 규정하는 것은 위기의식의 부재, 전망과 전의의 부재다. 그러하기에 이 위기를 '보건의료부문'의 위기로 국한하더라도, 이 위기의 시대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위기의 선포'이다.

작금의 상황이 국민들을 얼마나 더 힘들게 할 것인지, 건강과 의료이용의 불평등을 얼마나 심화시키고, 우리 몸과 영혼 모두를 얼마나 상품화시키고 그 존재 자체를 유린할 것인지, 특별히 사회적 약자들을 얼마나 더 힘들게 할 것인지….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또한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쉽고 명확한 언어도 또박 또박 설명해야 한다.

둘째는 구체적인 전망의 개발과 제시이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은 점을 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개혁가는 '정치적 실현가능성'을 재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 고민한다.

그러기에 전망은 그 자체가 우리의 '행동강령'이 돼야 한다. 나는 작금 우리 사회 보건의료부문의 전망과 목표는 미국식 의료체계를 '거부하고' 유럽식 의료체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위기의 시기에 중요한 것은 희망의 단초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희망의 근원을 제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새벽을 열고자 하는 이들의 막중한 임무이다.

많은 진보세력들이 암울함 전망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모순의 현실 속에 있다.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별을 볼 수 있듯, 우리는 낮보다 밤에 더 멀리 볼 수 있다. 싸움을 중단하지 않는 한, 다시 말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중단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패배는 없다.

이것이 바로 '역설의 정치학'이자 '희망의 정치학' 이다.

신영전(건강정책포럼 공동대표, 한양 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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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네버 2007-09-12 18:01:53
진짜 마음이 뻥 뚫리는 시원한 글이다. 대안이 없다면 이런 글 쓰기가 쉽지 않을텐데...
암울한 보건의료현실을 제대로 그려낸 것 같다. 신영전 교수 말 처럼 세상은 여전이 아프다. 그리고 보건의료인들도 아프다. 이렇게 너와 내가, 정치와 사회가 아플 때는 별 수 없다. 실현 가능한 대안을 움켜지고 "견디어 내는" 수 밖에 없다.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자본의 논리를 피하지 말고, 온 몸으로 두들겨 맞으면서도 "버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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