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흙, 불꽃을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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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흙, 불꽃을 사랑하는 사람
  • 편집국
  • 승인 2004.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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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현암 오순택 개인전 열어

나는 가끔 시간이 되면 처가가 있는 문경으로 도자기 가마를 보기 위해 간다. 피어오르는 불꽃에서 어딘가 모를 예술에 대한 그리운 향수를 느끼기 때문이다. 불꽃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전생에 도자기를 굽던 도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에 빠질 때도 있다.

늘 철학자 같은 삶을 추구하는 나는 올해도 9월 말 추석을 맞이하여 문경에 갔다. 그 곳에서 도예가 현암 오순택(玄岩 吳淳澤)을 만났다. 처가 근처에 살고 있는 현암은 내가 상상하는 도예가의 풍모는 아니었지만, 물과 흙, 불꽃과 함께하는 생활에, 도예가로서의 신비감과 묘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충분한 인물이었다.

그런 현암 오순택이 오는 6일에서 12일까지 인사동 덕원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고 사무실로 초대장을 보내왔다. 도자기의 고장이라 불리는 점촌(店村)에서 태어난 그는 15년 전 도예에 입문하여 오늘까지 다도구를 빚으며 고향땅을 지키며 살고 있다.

다호(茶壺), 다완(茶碗), 다반(茶盤)과 다호(茶壺)로 나누어 전시되는 이번 개인전에서는 그 동안 다도구만을 작업해온 현암의 작가적 역량과 작품성을 잘 보여주는 예술품들이 다수 출품된다. 현암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그 동안 작업해온 소품은 물론 애장품도 함께 선 보일 예정이다.

문경 도예가 2세대 작가라 할 수 있는 현암은 1세대들이 추구한 전통 찻그릇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우리 다기의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작품은 거칠고 힘이 넘치는 것에서 숨 막힐 정도로 섬세함을 보여주는 것까지 전통의 재현과 새로운 해석, 차를 즐기는 다인으로서 우리 다기에 대해 갖는 애정을 되짚어보게 한다.

이번 전시회를 위해 발간한 현암의 작품 도록은 작품 사진만 담겨 있던 기존의 도록 형식을 뛰어 넘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애호가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차별화된 신 도록이다. 그의 도록은 그의 작품 세계가 문경의 도요 역사와 무관하지 않은 점에 착안, 문경의 풍광과 도요사를 조명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의 작품 세계의 근간을 이루는 물, 흙, 불을 테마로 설정하여 차 이야기와 작품 세계, 대담을 통한 작가의 진솔한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아울러 현암의 작품에 관한 지인들의 평과 소담을 사진과 함께 담고 있다.

산 좋고 물 좋은 문경의 자연 조건과 역사를 배경으로 출발한 현암의 작품 세계는 전통 찻그릇의 재현을 뛰어넘는 작가로서의 창작욕을 구현해 나가고 있다.

자연과 함께 숨 쉬는 그의 삶 속에서 작품 하나하나는 산수를 그대로 담고 있다. 현암은 인공의 유약을 멀리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산과 들에서 캐온 흙, 집 마당에서 나는 지하수를 빌어 찻그릇을 빚고, 참나무와 소나무 장작을 태워 가마에서 구워낸다.

일찍이 불의 오묘한 기운에 빠져 사기장의 길을 택했다는 현암. 표현이란 사유의 잔상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생각이 머무는 곳을 표현하여 작품화 한다. 그런 그의 사유가 마침내 찻그릇에 도달하게 되고, 그 안에서 희열의 시종을 찾을 수 있다.

현암이 도예에 발을 들인지 15여 년 세월이 지났다. 경상도 문경읍 팔령에 현암요를 마련한 지 11년. 그는 오로지 세상의 모든 것을 스승 삼아 홀로 실패를 거듭하였고, 마침내 그만의 길을 걷는 지금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그는 높은 계단에 올라섰을지라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사랑은 사라진다’는 절박한 예술가적 경계심을 품고 있다. 어느 때이건 자신이 최고라고 자만하는 순간 나아갈 곳은 나락 밖에 없음을 늘 두려워하고 있다.

그는 자기와의 끝없는 혼돈 속에서 자기화를 꿈꾼다. 또한, 진정한 작가는 자신이 하는 일에 목숨까지 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그는 늘 자신감이 넘친다. 그의 내면에는 지극함이 있을 때만 가능해지는 바늘 끝 같은 정밀함과 장작 불꽃처럼 타오르는 열정과 역동성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다호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한 치도 더하고 뺄 수 없는 정교함을 볼 수 있다. 분청다완을 보고 있노라면 찰나지간에 폭발하는 열정이 만들어낸 추상과 역동성이 존재한다.

현암의 찻그릇은 과거나 현재에만 머물러 안주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수줍음과 편안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오늘날 차 문화의 발달이 현암의 작품을 만들어 내었고, 그는 이 시대의 도자기 역사에 한 장르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는 아마도 찻그릇을 만들 때 단순히 흙으로 다호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유기적 관계까지 그릇에 담고 있는 듯하다.

현암의 다관은 그의 피와 땀의 결정체이며 유약을 쓰지 않고도 장작가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색상을 성공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절제미와 단순미가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그의 독특한 창작의 세계는 현암의 꿈이었음을 회고하게 될 것이다.

또한 後把形(후파형-손잡이가 뒤로 되어있는)다관을 고집하며 자기 분야를 개척하여 중국 다호가 아닌 우리 다관으로 중국차를 즐길 수 있는 영역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도예 계는 그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 15년 간 흙에서 도예의 길을 찾아 한 뼘도 옆으로 떼지 않고 앞으로만 걸어가고 있는 현암 오순택. 그의 작품은 지금도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해 가고 있다.

김수종    ⓒ jinboac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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