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장] 대박의 꿈, 쪽박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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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대박의 꿈, 쪽박의 삶
  • 편집국
  • 승인 2003.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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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 수는 있어도 이룰 수는 없는 꿈 ~ 부자 되세요 ~


초원도 없고 양떼도 볼 수 없는 우리나라지만 경마는 세계 7위 수준이다. 한 경주당 매출 70억원, 하루 매출 800억원, 하루 입장인원 17만명, 연평균 30% 성장, 연매출 6조원(20001년). 사행오락의 대표로 알려진 경마의 외형이다. 그러나 로또 열풍과 태백지역에 속속 들어설 대형 카지노를 생각하면 이것도 우리나라 사행산업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외환위기에서 시작된 경기 침체기의 대박심리를 노려 더욱 번창하기 시작한 우리나라 사행산업의 규모는 수 십 조원을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도박중독증의 폐해는 상상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역전’을 꿈꾸는 사람들
‘로또 광풍’의 클라이막스였다고 할 수 있는 2월 둘째 주말, 로또 복권은 1등 당첨자 13명에게 각각 64억원의 대박 ‘인생역전’의 기회를 주고 막을 내렸다.

불과 10회차 만에 835억원에 달하는 사상 초유의 1등 당첨금이 내걸렸던 로또 복권은 불티나게 팔려 총 1억500여 만장을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로또 판매대행사인 국민은행에는 연일 로또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뤘고 ‘로또계’, ‘로또 공화국’이라는 신종어까지 탄생할 만큼 온 나라가 로또 복권 열풍으로 들썩였다. 

한편에서는 언론매체들이 로또복권의 열기를 우려한다는 취지의 보도를 하면서도, 역으로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시선도 있다.

흔히 미국의 골드러쉬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꾸고 서부로 몰려들었지만 결국 돈을 번 것은 곡괭이장사와 술집같이 금광꾼을 상대로 장사를 한 상인들이라고 이야기한다. 로또의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호주머니만 더 가벼워진 서민’들과 ‘일확천금을 거머쥔 정부’의 상반되는 모습뿐이다.

10회 차까지 로또 판매액 4078억원 중 정부가 각종 기금(준조세) 및 세금 명목으로 벌어들인 금액은 무려 1,532억 2천만원에 달한다. 불과 3개월 여만에 정부는 이 막대한 세금과 준조세를 앉아서 거둬들이는 ‘횡재’를 한 셈이다. 이 수치는 국세청이 한 해 세무조사로 거둬들이는(추징) 세금의 약 10%에 달하는 규모다.

로또 대박의 주인공은 명실공히 ‘정부’라고 할 수 있다. 과천시의 경우는 1989년 뚝섬에서 이전해간 경마장 덕분에 연 700억원 이상(99년 657억, 2000년 769억, 2001년 947억원)을 가만히 앉아서 벌어들인 결과 ‘전국 최고의 도시’라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경마장 덕분에 최고의 도시 된 과천
이런 대박의 꿈을 안고 정부, 각 지자체, 기업들이 뛰어들다 보니 돈놓고 돈먹기 식의 사행산업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 당장 나름대로의 역사가 있는 경마가 있고 이를 본떠 시작한 경륜, 경정 등이 수많은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다. 음성적으로 실시되는 투견도박은 불법이지만 민속전통을 이어받은 청도 소싸움이 합법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그 뒤에는 말싸움, 닭싸움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 물론 돈이 걸리지 않는다면 이런 ‘아름다운’ 민속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특혜논란에 휘말렸던 스포츠토토처럼 ‘건전한’이라는 명분을 앞에 내세운 사행오락은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지경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폐광촌 활성화를 내세운 태백 내국인 카지노가 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병적 도박에 이르는 개인의 파멸이 있다. (병적 도박은 충동장애의 일종으로 본능적인 욕구가 충만하거나 욕구에 대해 자아의 억제 기능이 약해지면서 긴장이 고저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도박을 택한 것이다. 이들은 분명한 행동 동기가 없고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도 행동을 반복하고 스스로 조절 능력이 없는 경우이다.)

 흔히 서민들이 즐기는 ‘고스톱’의 경우에서 보듯이 오락과 도박의 경계는 애매하고 그 정확한 규모도 예측하거나 파악하기가 어렵다. 한 정부 관계자도 “로또를 처음 도입할 당시 이월 횟수를 5회 정도로 제한할 경우 1회 당첨금이 50억 정도 안팎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불과 두 달만에 당첨금이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행산업이 세수원이 되자 세원확보가 아쉬운 지자체의 유치경쟁은 당연히 치열하고, 정부가 국민을 도박에 끌어들여 재정을 확보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따라 지자체의 사행산업 유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은데 각 도시의 경마장외 발매소 유치계획이 알려지면서 대구, 울산, 인천 등지의 시민단체들은 화상 경마, 경륜 유치철회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다.

꿀 수는 있지만 이룰 수는 없는 꿈
그러나 이런 우려의 목소리에도 국민을 상대로 한 독접사업으로 손쉽게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진 정부단체의 사행산업부추기기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로또의 경우 복권 당첨자들에게 판매액의 50%가 돌아가고 나머지 50%를 관련회사 등이 20%, 정부가 30%씩 나눠 갖게 돼있다.

게다가 당첨액 중 60%를 배당하는 1등의 경우 당첨금의 22%는 다시 세금으로 내야 한다. 따라서 로또 열풍이 불었던 2월 둘째주에만 정부는 앉아서 공익기금 명목의 6백억원과 세금 1백20여억원을 챙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돈이 오감에도 기금수령 기관에서는 마땅한 사용처나 사용계획을 세워놓고 있지 않은 상태다. 행자부는 일단 1천억원을 모은 뒤 지방자치지원금으로 사용한다는 대강의 계획만 있으며, 과기부, 노동부, 건교부, 산림청 등 다른 온라인연합복권 사업자들은 별도로 로또 수익금 운용계획을 세우지 않고, 기존예산에 함께 편성해 사용하고 있다.

비록 조성한 기금을 좋은 목적에 쓰고 정부가 사행산업으로 재원을 마련하는게 우리나라 만의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로 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우리 국민 모두에게 돌아온다는 점에서 이런 사업에는 신중과 철저한 예방조처가 필요하다. 정선 카지노의 경우처럼 사회문제가 되고서야 부랴부랴 도박중독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식으로는 재원마련 이상의 피해를 우리 사회 전체가 고스란히 떠안을 수 밖에 없다.

작년초 ‘부자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다. 어떤 설문조사에서는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여유있게 살기 위해서는 10억은 있어야 한다고 나오기도 했다. 10억이면 월 200만원을 받는 직장인이 40년 이상을 꼬박 모아야 하는 돈이다.(64억은 270년 가량!) 10억 있다고 외제차 몰고 강남의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에 입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부자는 꿈 꿀 수는 있지만 이룰 수는 없는 꿈이다.

놀이는 놀이일 뿐
사행산업의 폐해는 이루 열거할 수 없지만 서민들이 푼돈으로 즐길 수 있는 레저문화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로또를 구입하고 당첨에 대한 설렘으로 일주일이 즐겁다”는 한 회사원의 말처럼 돈 없고 시간 없는 서민들에게는 간단히 즐길 수 있는 ‘놀이’인 셈이다.

이는 너른 경마장에서 말들의 질주를 보며 환호하는 많은 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이를 준조세의 부담으로 느끼기보다는 레저로 즐길 수 있게 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마련된 공익기금의 최종 수혜자는 자신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의견이다.

지역 회생의 절박한 필요에서 도입한 정선카지노가 많은 지역민들을 파멸로 몰고 간다는 작금의 보도는 이 때문에 더욱 안타까울 수 밖에 없다.

나름대로 안정되고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도 ‘복권만 되면 일은 뭐하러 하냐!’는 소리가 나오는 사회가 건강할 수는 없다. 주말을 보내고 대박의 꿈을 날려버린채 시작하는 새로운 한 주의 삶을 깨진 쪽박처럼 비참하게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
열심히 노력해서 차근차근 꿈을 이루어갈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될 때만이 대박의 환상은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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