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즈
상태바
싱글즈
  • 강재선
  • 승인 2003.08.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 나이 스물 아홉, 나름대로 격정과 방황과 고통의 시기였다. 서른이 될 때까지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던 몇 가지 과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병을 앓고 난 듯한 기분으로 서른을 맞았던 기억.

몇 년 째 사귀던 애인으로부터 갑작스런 결별을 당하고, 비열한 상사 탓에 회사에서도 좌천을 당한 29살의 디자이너 나난. 남녀상열지사에 통달한 입 걸고 정 많은 동미. 착하고 자상하고 여자들의 친구로 인정받는 정준. 각방 쓰는 룸메이트로 생활하는 동미와 정준의 아파트는 나난의 피난처다.

스물 무렵, 일과 사랑 중 하나쯤은 이루리라 꿈꾸었던 나이 서른이 다가오면서, 스물 아홉 동갑내기 세 친구들은 결단의 기로에 선다. 영화 속에는 이성친구와의 우정, 사랑, 여성의 성욕, 동거, 결혼, 임신, 미혼모, 직장내 성희롱과 성차별, 자신의 일과 직장여성으로서의 미랩.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걸쳐 있는 한국 사회 여성들의 고민이 어지럽게 널려 있으나, 분위기는 가볍고 유쾌하다.

부모의 지붕을 벗어나 관계와 사회 속에서 정착할 ‘집’을 찾는 방법은 결혼만은 아니다.
 ‘내가 있을 곳’을 찾는 싱글들의 발걸음은 ‘평생 잘 먹고 잘 살려고 백마 탄 왕자를 상대로 장사하고 있는 계집애’들의 발걸음보다 조금 더디다. 선입견과 장애물 가득한 사회에서 미혼모의 길을 선택한 동미와, 사람 좋고 조건 좋은 결혼과 유학의 길을 보류한 채 동미 곁에 남은 나난의 선택을, 나는 지지한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연희를 보며 느꼈던 씁쓸함과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주는 허황된 달콤함을 넘어, “싱글즈”의 친구들이 보여주는 더디고 바보스러운 무모함이,
내게 청량감을 주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을 지지하듯, 그들도 나를 지지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독신 친구들의 연대가 영화처럼 내내 밝고 따뜻할 수 있기를.

20대에 김광석의 ‘서른 즈음엷를 줄기차게 들었던 것처럼, 최근 양희은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 귀에 들어온다. 나이트보다 찜질방이 더 좋아진 내 나이 서른 하나,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직도 몇 가지 과제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