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이야기] 물매화를 찿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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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야기] 물매화를 찿아서
  • 이채택
  • 승인 2004.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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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봉오리를 달고서 꽃잎을 터뜨리지 않고 몇 달을 버티는 풀들도 있다.
물매화도 이 상태로 한참을 버틴다.
들꽃에 대한 글을 부탁하면 항상 민들레부터 시작했었다. 강인한 민초들의 생명력을 나타내는데 적당해 보였기 때문이다. 토종 민들레는 봄이 지나면 꽃을 볼 수 없지만 서양민들레는 가을까지 꽃을 볼 수 있으니 계절에 상관없이 다룰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가을에 꽃이 피는 물매화에 대한 설을 풀어 보고자한다.

꽃이 아름다워 "언젠간 보고야 말테다" 하면서 벼루던 놈 중의 하나이다. 남들이 올린 사진을 보면서 침 흘리며 바라만 보던 놈을 처음 만난 것은 작년 가을 어느 늦은 토요일이다. 내가 즐겨찿는 산은 어릴적 동심이 어려있는 고향 뒷산으로 문수산이다.

해발 600m 로 높은 산은 아니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어머니의 포근한 젖가슴을 닮은 예쁘장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서두르면 2시간 정도 꽃을 찿아 다닐 여유가 있다. 환경을 생각하면 두발 자가용으로 등산을 해야겠지만 부족한 시간을 활용하려면 산의 팔부능선까지 차로 임도를 따라 올라갈 수 밖에 없다.

그날도 항상 그러듯이 가족동반하여 산을 오르는데, 차창 밖으로 구절초가 보인다. 급히 차를 한켠에 세우고 내려서 구절초를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옆에서 키가 10cm 조금 더 되어 보이고 꽃을 한송이 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야생화 사이트에서 많이 보았기에 한눈에 물매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은 뭘 잡으러 갈까하고 대상을 정하고 나서서 그놈을 만나는 경우는 드물다. 주로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이다.

▲ 줄기 아래쪽에 둥근 잎이 한장씩 있다.
잎도 꽃 만큼이나 예쁘다.
지난해 태풍 매미는 엄청남 피해를 입혔다. 문수산에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무너진 임도를 복구하는 공사가 올 봄에 한창이었다. 어느 봄날 들러본 물매화 자생지는 깊은 산임에도 포크레인으로 모두 파 헤쳐져 있었다. 이제 어디가서 물매화를 만날 것인가. 나는 절망했다. 그러나 어느 여름날 들려본 물매화 자생지는 다시 온갖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고 물매화도 한무더기 자라고 있었다.

포크레인으로 파 헤쳐져 뒤집어진 뿌리가 다시 새싹을 튀운 모양이다. 작년에 찍은 사진은 카메라에 대해 왕초보도 면하지 못한 시절이라 너무나 볼 품이 없다. 올해는 제대로 담아보리라 기대하며 꽃피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지난주 토요일, 진료를 마치고 서둘러 문수산으로 달려갔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꽃이 활작 피어 있었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데 앞에서 뭔가가 휙하고 지나간다. 꽃은 바닥에 떨어지고... 아그들이 방해해라 하면서 장난을 친 것이다. 어이쿠...

지난해까지만 해도 식구들이 우호적이었다. 꽃을 찿아 주기도 하고 이름도 물어보고, 그래서 두 아들내미는 애기똥풀도 알고 별꽃도 안다. 애기똥풀은 왜 애기똥풀이라 하는지 아느냐며 남들에게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빠 따라서 산에 가기 싫다고 투덜댄다.

내가 너무 이 방면에 몰두하니까 식구들이 질리는 모양이다. 물매화가 예쁘다며 탄성을 지르던 아내도 차에서 내려 꽃을 감상할 의향이 전혀 없어 보인다. 혹시나 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군대군데 물매화가 나를 반기고 있다. 한무데기 외에는 없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군락지는 살아 있었다.

햇빛이 없어 좋은 사진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나름데로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이놈들은 햇빛이 잘드는 습지에 서식한다. 이곳도 제법 넓은 습지이니 다양한 습지식물이 자리잡을 수도 있어 보인다. 내년에는 이곳에서 다른 습지식물을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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