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동窓> 부패, 제도 그리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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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동窓> 부패, 제도 그리고 사람
  • 편집국
  • 승인 2004.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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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패상황 오히려 악화

몇 달전 부패방지위원회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주한외국인 투자업체, 외국공관 근무자 등 외국인 204명 중 50% 이상이 ‘한국의 공직부문이 여전히 부패’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세계경제포럼(WEF)이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이례적으로 11단계로 대폭 하향조정하면서(물론 신뢰성에 대해 논란은 있었지만), 주 원인으로 들고 있는 것도 공직부패이다.

수출입통관과정에서의 부패가 34위에서 50위로, 정부가 민간과 사업계약을 맺는 과정의 투명성이 18위에서 49위로 급전직하한 것이 하향조정의 배경이라는 설명이다. 주한 일본 기업인 모임 ‘재팬 클럽’은 지난 8월 한국정부에 “기업에 납품시 뇌물 요구 관행이 너무 많다”고 호소하는 건의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투명성지수도 여전히 4, 50위권을 맴돌며 조사대상국중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높은 부패지수의 원인은?

최근 몇 년 사이 우리사회는 ‘부정부패방지’에 있어 많은 변화를 겪었다. 부패방지법이 제정되고, 국가기관인 부패방지위원회가 출범하였다. 공직자행동강령이 제정되고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되었으며 돈세탁방지법이 제정되었다. 대통령선거자금을 비롯한 정치자금 문제로 온나라가 몸살을 겪고 유력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사법처리되었다. 이쯤 되면 부정부패가 사라지고, 투명한 사회가 이루어졌을 법도 한데, 한국의 부패지수는 왜 변화가 없는 것일까.

우선 시간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부패방지법제를 만들어 시행한 지 몇 년 되지 않았고, 부정부패는 단시일내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문화적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유교적 권위주의, 군사문화와 관료주의에 의해 형성된 뿌리 깊은 부패문화를 지적할 수 있겠다. 불철저한 제도도 한 몫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정치세력간의 타협에 의해 어정쩡하게 만들어진 ‘부패방지법제’는 대폭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 각종 인허가제도를 둘러싼 불합리함도 개선해야 할 점이다. 이처럼 시간, 제도 등 여러 가지 원인을 지적할 수 있지만, 결국 다시 착목하게 되는 것은 역시 ‘사람’의 문제이다.

제도와 사람

‘사람’의 문제라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이 부정부패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갚 하는 점이다. 관련해서 놀라운 설문조사가 있다. 얼마 전 한 기관에서 중고생 3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뇌물을 써서라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응답한 학생이 27%,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10억을 벌 수 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응답한 학생이 17%에 달했다고 한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이런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지만,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부패(체감)지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청소년들의 ‘건강하지 않은’ 의식을 탓할 바 아니다. 한탕주의, 도덕적 해이, 물질만능주의라고 단순히 꾸짖고 말 문제도 아니다. 필자는 위 설문조사가 우리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강요한 피해의식의 결과라고 믿는다. ‘부정부패를 통해 무슨 이익을 얻겠다는 적극적인 범법의식’이라기 보다는 ‘나만 바보’가 될 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 말이다.

이 피해의식은 사회의 만연된 부정부패, 쉽게 개선되지 않는 사회적 불평등구조, 그 속에서 반칙(부패)을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비롯된다. 부정부패에 대해 분노하고, 적개심을 가지면서도 막상 ‘자신의 문제’로 다가오면 한없이 관대해지는 우리 일상의 모순됨도 이 피해의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투명성이 경쟁력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인간의 이기심을 고려할 때 어느 정도 혼탁함은 인정해줘야 경제와 사회도 활력이 있다는 뜻일게다. 전혀 일리 없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를 확대하게 되면 과거 개발독재시대로 회귀하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게 된다. 이제 ‘반칙’을 통해 성장하는 시기는 지났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국민 의식속 뿌리박혀 있는 ‘패배의식’을 떨쳐내야 한다. 이제 반칙을 하면 손해고, 규칙을 지키면 이익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다. 우리 기업들이 가치에 비해 제대로된 평가를 못받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 원인으로 가장 먼저 지적되는 것이 한국 사회의 ‘불투명성’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는 투명성이 경쟁력이 시대를 살고 있다.

장유식(변호사, 참여연대 협동처장)     ⓒ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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