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폭 70년 나가사키에서 평화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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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 70년 나가사키에서 평화의 메시지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5.08.18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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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2015 나가사키 원수폭금지 세계대회’ 참관기

▲나가사키 원수폭금지 2015년 세계대회 한국 대표단과 일본 민의련관계자들

올 2015년은 우리나라에겐 광복 70주년, 일본에게는 종전 70주년이 되는 특별한 해다. 전일본민주의료기관연합(이하 민의련)의 초청으로 필자를 포함한 5명이 한국 보건의료단체 대표단이란 이름으로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2015 원수폭(原水爆)금지 세계대회(이하 세계대회)’에 참가했다.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이하 건치) 박성표 공동대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정형준 정책국장,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이하 건약) 윤미현 사무국장, 건약 울산지부 석동현 정책국장 등 의료인 4명과 필자가 대표단으로 참석했다.

대표단은 ▲세계대회 개‧폐회식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과 평화공원과 마츠야마 폭심지 공원 견학 ▲피폭자 간담회 ▲민의련 나가사키 오오우라 진료소 견학 ▲전일본 민의련 참가자 교류회 참석 ▲인의협 정형준 정책국장의 한국의 메르스 사태 발표 ▲민의련 소속 의료인 간담회 등 알찬 여정을 보냈다.

2015 나가사키 원수폭금지 세계대회

이번 세계대회는 ‘핵무기 없는 평화롭고 공정한 세계를 위해 피폭 70년을 전환점으로’를 캐치프레이즈로 나가사키에서 개최됐다. 전세계 22개국 140여 명의 각국 대표단과 반핵평화 활동가 등을 포함, 일본 각지에서 6천여 명이 나가사키 시민회관에 모였다.

세계대회에서는 핵무기 근절, 탈핵 등의 구호와 함께 아베정권의 일명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하는 목소리 역시 핵무기 근절과 같은 선상에서 다뤄졌다.

특히, 후쿠시마 사태 이후 가동이 중단됐던 센다이원전 1,2호기가 11일부터 순차적으로 다시 전력생산에 들어간다고 알려져 아베 정권에 대한 격렬한 규탄 발언이 터져 나왔다. 참고로 센다이원전 재가동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 1만5천여 명이 원전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세계대회 중간에  후쿠시마 대표단이 무대에 올라 원전사고 이후의 지역의 현황과 아직 어떤것도 수습되지 않은 상태인데 정부는 센다이원전 재가동을 밀어붙이면서 다시 원자력 발전소가 안전하다고 선전하는 행태에 대해 강력히 규탄할 때 참가자들은 어느 때보다 더 큰 박수로 후쿠시마에 대해 지지를 보냈다.

세계대회에서 ‘핵무기 근절’, ‘평화로운 세계를 다함께 만들어 가자’는 반복적인 외침과 피폭자의 절절한 증언을 들으면서 마음 한켠이 조금은 무거워졌다.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 국가의 국민으로서 세계대회에서 어쩐지 강조되고 있는 일본의 피해자로서의 목소리가 조금은 불편했기 때문이다.

물론 머리로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시민들이 직간접적으로 제국주의에 일조하긴 했으나, 그들이 원폭의 피해자임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제국주의가 민족간의 문제가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계급 문제인 것도.

이후 일정인 피폭자 간담회, 민의련 소속 의료인들과의 간담회 등을 거치면서 그나마 불편한 감정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앞서 언급한 아베정권의 헌법9조 개정 움직임, 원폭피해국임을 내세워 군무장을 주장하는 일본 우익, 한국, 중국 등 인접국 뿐 아니라 자국민도 위험에 몰아넣을 센다이 원전 재가동 등과 피폭자들에 대한 터무니없는 지원과 무시, 미군의 오키나와 헤노코(辺野古) 신기지 건설 문제 등을 들었다.

이러한 아베정권의 오로직 권력을 위한 행태가 지금 우리나라 정부와 꼭 닮아 있는 것도, 이와 관련해 민의련 등 시민단체의 투쟁, 국민들의 정치 무관심 등에 대해 대화하면서 원폭, 원전과 같은 문제가 결국은 ‘계급’ 문제임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면서 불편한 마음이 조금은 사라졌다.

원폭의 참사, 잊지말고 기억해야 할 것

1945년 8월 9일 아침, 서태평양 마치아나 제도 테니안 기지를 출발한 원자폭탄탑재기 B29 벅스카호는 제1 공격목표인 북규슈 공업지대 고쿠라시 상공에 도착했으나 고쿠라시 상공은 날씨가 나빠 제2 목표였던 나가사키로 방향을 틀었다.

나가사키시 상공에 돌입한 벅스카호는 미츠비시 병기제작소를 노리고 고도 3만피트에서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오전 11시 2분 원자폭탄은 나가사키시 북부 마츠야마마치 상공 500미터에서 폭발했다.

이로 인해 나가사키 거리의 대부분이 파괴됐고, 당시 추정인구 24만명 중 7만 3천여 명이 사망, 7만4천여명 부상을 입었으며 11만 가구가 전소됐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는 피폭전 나가사키의 모습과 ‘완전히’ 파괴돼 버린 피폭 후의 모습을 대조해 놓았다. 미군 제1의 원폭폭격지인 히로시마보다 피해상황은 덜했다고 하지만, 인류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발명품, 핵폭탄의 참혹함을 그 끔찍함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후 평화공원과 폭심지를 둘러봤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원폭의 참상이 담김 모든 조형물과 자료의 설명판엔 ‘1945년 8월 9일 오전 11시 2분 원폭투하로 이곳에 있던 몇 명이 죽었다’란 글귀와 ‘두 번 다시 이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길 기원하며 이곳에 명판을 설치한다’는 말이 꼭 적혀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장소와 기념비 등에 대한 설명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7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도시에 남아있는 원폭의 상흔들의 의미를 일깨우고 있었다. 잊지 않고 끝까지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어 나가자’는 다소 추상적인 나가사키의 외침이 조금 선명이 들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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