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사태와 『난쏘공』, 그리고 『무지개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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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사태와 『난쏘공』, 그리고 『무지개 너머』
  • 송필경
  • 승인 2021.10.1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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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시론] 송필경 논설위원

우리나라는 지난 2017년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화란 자랑스러운 옷을 입을 자격을 지니게 됐다. 그러나 국가가 멋진 옷을 입었다고 절로 국민의 삶이 개선하되는 않는다.

날로 심해지는 경제 양극화, 청년 실업, 최저 임금, 부동산 폭등, 저출산 고령화, 여성 차별, 노동 현장에서의 재해로 인한 세계 최고 사망률, 세계 최고의 자살률 등등…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분신하며 절규한 1960년대 상황을 우리 사회가 근본적으로 해결했는지 정직하게 물어보고 싶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공(난쏘공)』은 조세희가 1978년 발표한 소설이다. 『공장의 불빛』은 김민기가 1978년 극작‧작사‧작곡한 음악극이다.

먼저 『난쏘공』의 한 페이지를 펼쳐본다.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 먹는 아이들이 굶주리게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없는 나라는 재난의 나라다.
누가 감히 폭력으로 나라를 세우려는가?

지도자가 넉넉한 생활을 하게 되면 인간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희생이란 말은 전혀 위선으로 변한다.
나는 과거의 착취와 야만이 오히려 정직했다고 생각한다.
햄릿을 읽고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이웃집에서 받고 있는 인간적인 절망에 대해 눈물 짓은 능력을 마비당하고 또 상실당한 것은 아닐까?

세대와 세기가 우리에게 쓸모도 없이 지나갔다. 세계로부터 고립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에 무엇 하나 주지 못했고, 가르치지도 못했다.

남의 사상으로부터는 오직 기만적인 겉껍질과 쓸모없는 가장자리 장식만을 취했을 뿐이다.
지배한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할 일을 준다는 것,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문명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일, 그들이 목적 없이 공허하고 황량한 삶의 주위를 방황하지 않게 할 어떤 일을 준다는 것이다.

또 『공장의 불빛』에서 가장 널리 불린 노래 ‘이 세상 어딘가에’의 가사를 살펴본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까 있을까
분홍빛 고운 꿈나라 행복만 가득한 나라
하늘빛 자동차 타고 나는 화사한 옷 입고
잘생긴 머슴애가 손짓하는 꿈의 나라

이 세상 아무데도 없어요 정말 없어요
살며시 두 눈 떠봐요 밤하늘 바라봐요
어두운 넓은 세상 반짝이는 작은 별
이 밤을 지키는 우리 힘겨운 공장의 밤

고운 꿈 깨어나면 아쉬운 마음뿐
하지만 이제 깨어요 온 세상이 파도와 같이
큰 물결 몰아쳐온다 너무도 가련한 우리
손에 손 놓치지 말고 파도와 맞서보아요.

전태일의 절규와 『난쏘공』과 『공장의 불빛』이 제기한 근원적인 문제는 50여 년이 지난 2021년 지금 이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보수와 진보라는 과거의 낡은 이념을 초월한 과제다. 민주 대 반민주라는 낡은 틀도 문제 해결에 이제는 무용지물이다.

작가 조세희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을 이야기하고 폭력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한 인간들이 처할 수 있는 절망,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지혜를 짜내야 한다. …한국에서 부족한 건 집이 아니라 지혜다.

대장동 사태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상징하는 근원적인 악폐이면서 적폐다. 이번에 악폐와 적폐의 근원을 똑바로 보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가 ‘지혜’를 한 톨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악폐와 적폐를 쉽사리 척결할 수 있다고 단언하지 않겠다.

프랑스는 1789년 전 세계적인 혁명의 모범인 ‘대혁명’을 일으켰다. 그 이후 혁명과 반혁명을 반복했다. 약 80년 뒤 1871년 노동자가 중심인 민중이 집권한 파리코뮌 정부를 세웠다. 이 위대한 역사의 시초는 곧 좌절됐지만 노동자(민중) 계급이 정치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는 꿈을 인류에게 심었다.

프랑스는 파리코뮌 약 1백년 뒤 또 하나의 세계사적 위대한 혁명인 1968년의 ‘68혁명’을 일으켰다. 모든 권위에 도전할 수 있다는 꿈을 인류에게 심었다.

68혁명 30년 뒤 2018년 프랑스 시민은 정부 정책에 저항하는 ‘노란조끼’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는 1789년에서 230여 년 지난 지금까지 노동자(민중)의 권리를 찾기 위해 크고 작은 저항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우리는 1960년의 ‘4‧19혁명’ 이후 61년이 지났다. ‘촛불혁명’이란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는 저항의 승리를 거머쥐었지만 아직 궁극적인 민중(노동자)의 승리는 요원하다. 그렇지만 꿈을 잃지 말자.

『특권없는 세상』
『특권없는 세상』

대장동 사태를 바로 보기 위해 평생을 ‘토지공개념’ 연구에 몰두한 경북대 김윤상 명예교수의 『특권없는 세상』을 펼쳐보고 있는 중이다. 책 서문에 영화 『오즈의 마법사』 삽입곡으로 나오는 ‘무지개 너머’란 노래 가사를 소개했다. 김지하의 ‘이 세상 어딘가에’는 이 노래와 너무나 비슷한 감성을 느끼게 한다.

무지개 너머 저 높이 어딘가에
자장가에서 듣던 나라가 있어요.
무지개 넘어 하늘 푸른 어딘가에
감히 꾸기 어려운 꿈이
실현된 나라가 있어요.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꿈’은 시련을 헤쳐나갈 가장 따뜻한 수단임이 분명하다!

이번 대장동 사태를 정치적인 쟁점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우리 사회의 악폐와 적폐를 똑바로 바라보는 기회로 삼자.

인간 세상의 추악한 아픔을 겪거나 보지 않고, 인간은 어떻게 따뜻한 꿈을 꿀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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