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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꿈] 전쟁속에서 피어난 사랑[기획연재] 제1부 베트남 여성이 본 전쟁 - (4)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8.06.25 16:02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8,300만 베트남 사람들 중 3분의 2는 베트남전쟁이 끝난 1975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이다. 젊은이들에게 베트남전쟁은 단지 부모 세대의 옛 이야기일 뿐이라서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는다.

   
 
  ▲ 투이의 묘  
 
그럼에도 투이 일기는 베트남에서 볼 때 천문학적인 부수가 팔렸고, 투이가 쓰러진 산에는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투이가 활약한 득 포에는 당 투이 쩜 기념 병원이 들어섰다. 투이가 잠든 하노이 외곽에 있는 묘지에는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전의 많은 전쟁 일기는 주로 영웅담과 전공을 세운 승리자의 이야기였다. 전쟁의 참상과 떠밀려 전쟁에 내몰렸다는 식의 글들은 사전 검열을 당했다. 사랑을 담은 낭만적인 내용은 신념이 없다고 쉽게 비난받았다. 젊은이들에겐 틀에 짜인 무미건조한 타령으로 들릴 뿐이었다.

투이는 16세 때부터 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6세 연상인 M을 지극히 사랑했다. M 역시 하노이 인텔리 집안 출신으로 시를 쓰고 작곡을 할 줄 아는 다재다능한 미남 청년이었다. 그러나 M은 조국해방전쟁에 헌신하기로 마음 먹고 투이의 사랑을 정중히 사양하고 1962년 남부 민족해방전선으로 떠났다. 1967년 M은 민족해방전선 장교로서 영웅적인 자질을 발휘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투이는 혹시나 M과 재회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으로 먼 남쪽 지방 꽝 응아이에 간 것이다. 일기를 쓴 동기와 배경은 바로 M을 향한 연정이 큰 동력이었다.

그러니까 투이의 일기는 종군일기나 영웅담이나 도식적인 적개심을 이끌어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이공의 흰 옷’같은 이념 투사의 자서전도 아니다. 그렇다고 국가의 필요와 요구가 뭔지 모르는 철부지의 애절한 짝사랑 이야기는 더 더욱 아니다.

투이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딸은 편지를 많이 보내왔는데 일상의 이야기만 하였다. 일기에서 투이가 우리에게 이야기 하지 않은 무척 많은 어려움을 보았다.”

투이는 일기에 엄마와 M을 향한 간절한 사랑을 위해 살아남고 싶은 의지를 잔잔하게 적었다. 뿐만 아니라 참혹한 전쟁에서 보고 겪고 참아낸 일들을 격정적이면서도 정확하게 일기에 담았다.

바로 이 점에서 전쟁을 겪지 않은 베트남 젊은이들은 베트남전쟁의 참상과 진실을 비로소 이해했다.

(계속)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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