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좋은 의료제도와 좋은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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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좋은 의료제도와 좋은 의사
  • 이상이
  • 승인 2008.08.29 14: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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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복지국가 Society(www.welfarestate.net)에 이상이 공동대표가 기고한 칼럼의 전문이다. (편집자)

우리나라 국민들은 의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필자는 그것이 궁금하여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격식 없이 물어보곤 하였다.

면허 낸 도둑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안정된 직업을 가진 부러운 존재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꼭 필요한 존재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더불어, 우리나라 의사들이 참 똑똑하고 실력이 좋다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자기의 자녀도 공부만 잘하면 한 번 도전해 보라고 권하고 싶은 직업이란다.

이렇듯 우리 국민들은 의사라는 직업을 부러워하고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대체로 우리나라의 의사들을 존경하지는 않는단다. 꼭 필요는 하되, 거의 존경 받지는 못하는 존재가 의사라는 데는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의사는 누구인가? 먼저, 의사는 의료전문가다. 오랫동안 공부한 잘 훈련된 전문가다. 이 부분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원래부터 똑똑한 사람들이 의과대학에 입학하였고, 의학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죽도록 노력했으니, 확실히 실력 있는 사람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의료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민들도 이 부분은 확실히 인정하는 것 같다. 필자도 지금까지 우리나라 의사들의 기술 수준을 탓하는 사람들을 거의 보지 못하였다.

한편, 대학병원 교수 등 일부 봉직 의사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의사들의 대부분은 의료업을 운영하는 개인사업자 또는 예비 개인사업자다.

우리나라 의료법은 의사와 비영리법인만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의사는 어떤 종류의 의료기관이든 개설해서 사업자가 될 수 있다. 사업자는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의료기관을 유지하거나 크게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이래로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은 병원 등 의료자원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을 거의 배제하고, 이를 민간이 주도하도록 했다. 오로지 국민 의료에 대한 정부의 재정 부담을 줄이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차츰 국민소득이 늘어나고 법정의료보험이 실시됨에 따라 의료수요가 급속히 늘어났는데, 이 과정에서 민간의료기관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의료수요를 충당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 오늘날 전체 병원 중 공공병원의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60-90%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뿐더러, 심지어 미국이나 일본의 30% 수준에도 크게 못 미치게 된 것이다.

경제성장이 급속하게 추진되던 1970대 중반 이래로 지난 30년 동안, 청진기 하나로 의료업을 시작하였던 많은 의사들이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굴지의 여러 대학병원들도 이러한 성공 신화의 산물이다. 과거에 돈 벌어서 건물 사고, 땅 매입하여 부자가 되지 않은 의사들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의사는 면허 낸 도둑이라는 세간의 이야기가 그리 근거 없는 말은 아닌 셈이다. 한국 사회에서 의사는 이렇게 사회적으로 의료전문가보다는 개인사업자로 더 크게 규정되었던 것이다.

1989년, 우리나라는 법정의료보험을 시작한 지 꼭 12년 만에 전국민의료보험제도를 달성하게 된다. 이는 세계 의료보장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최단기의 성과였다. 이것은 국민의료보장에는 축복이었으나 의사들에게는 큰 시련의 시작이었다.

전국의 모든 의료기관이 건강보험의 통제된 의료수가를 강제로 적용받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제도는 지금까지 20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되어온 의사의 높은 기대소득은 실현되기 어려운 조건을 만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그 동안 변화된 의료 환경으로 인해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데 소요되는 초기 비용 부담도 엄청나게 커져버렸다. 이제 의료사업자로 살아남기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어려워진 것이다. 국민의료비의 급증과 함께 정부의 의료수가 통제도 더욱 강화되는 추세다. 과거에 관행적으로 존재하던 각종 리베이트도 크게 줄었다. 의료사업자의 수도 크게 늘어났고, 시장 경쟁도 치열해졌다. 의료사업자인 의사들이 과거에 비해서는 크게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이 작은 것도 아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수준은 국내총생산(GDP) 약 6.4% 수준이다. 유럽 선진국들이 현재 약 8-11% 수준인데, 이들 나라의 국민소득과 노인인구의 비율이 우리나라 수준이었을 때와 비교해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가 그리 작은 것도 아니다.

국민의료비를 조금 더 늘릴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최근 수년 동안 급속히 증가해온 국민의료비 증가추세를 볼 때, 이것도 쉽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의사는 더 많은 수입을 원하고, 국민들은 더 이상의 의료비 부담을 원하지 않는다. 이 이해의 간극은 점차 더 벌어지고 있다.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이제 정치가 필요하다. 큰 틀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의사들은 제공한 의료서비스에 대해 ‘의료행위 하나하나에 대해 미리 메겨진 가격대로 비용을 지불하는 행위별수가제’ 방식으로 의료비용을 지불받고 있다. 특정 질병에 대해 의료행위를 많이 할수록 수입이 더 많아진다.

행위별수가제는 자유시장주의 원칙에 가장 부합하는 의료보수 지불방식이다. 그런데, 의료는 근본적으로 자유시장의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 시장실패의 영역이다. 이렇게 의료 자체의 성격과 행위별수가제는 본질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서로 간에 잘 맞지 않는 관계다.

그래서 서구의 모든 나라에서 행위별수가제의 폐단을 줄이고자 다양한 의료보수 지불방식을 도입하여 병행 실시하거나 행위별수가제에 여러 가지 제약을 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요지부동이다. 행위별수가제를 포괄수가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혁하자는 주장에 대해 결사반대를 외친다.

인두제 방식의 주치의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에서는 의사가 자신에게 등록된 주민들의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을 위해 노력할수록 의사의 수입이 더 늘어난다. 주민들이 병에 걸리지 않고 더욱 건강해야 의사의 수입이 늘어나는 구조다.

행위별수가제 하의 우리나라에서는 상황의 전개가 정반대다. 환자가 늘어나야 의사의 수입이 늘어난다. 환자 진료를 많이 해야, 과잉 진료를 할수록 의사의 수입이 늘어난다. 온 나라가 환자로 크게 넘쳐나면 의사들의 수입은 극대화된다. 사업자로서의 의사는 이러한 상황이라야 돈을 크게 벌게 되는 것이다.

의료전문가로서의 의사와 개인사업자로서 의사가 격렬하게 내부적 갈등을 일으키는 이러한 의료제도 하에서 의사와 잠재적 환자인 국민이 동거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보다 더 좋은 의사를 원한다. 그로부터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받고 싶어 한다. 더 좋은 의사의 양성은 개인적 소양을 높이는 개별적 방식으로는 달성되기 어렵다. 의료 윤리 교육을 더 시킨다고 좋은 의사가 더 늘어날 공산도 없어 보인다.

유럽 의사들이 우리나라 의사들보다 개인적 차원에서 더 윤리적이고 더 훌륭하다고 볼 근거는 별로 없다. 그런데 의사들의 행태는 더 좋음에 분명하다. 결국은 국가의료제도의 문제다.

우리나라 국가의료제도를 ‘좋은 의사’가 될수록 더 수익이 많아지도록, 국민의료비의 낭비가 최소화되도록 개혁해야 한다. 이제 자유시장주의 원리에 의존하는 행위별수가제와 같은 나쁜 의료제도는 폐기하거나 적절하게 규제할 때다. 그리고 의사와 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여 크게 결단을 내릴 때다.

바야흐로 큰 틀의 의료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주고받아, 이것을 제도화해야 한다. 결국, 좋은 의료제도, 좋은 의사, 그리고 만족해하는 국민은 의료정치를 통해 달성될 하나의 세트인 것이다.

 

이상이(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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