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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이 항상 궁금하다'[기획연재] 제1장 역사진실관-(10),(11)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8.12.10 11:47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10
『베트남전쟁을 일으킨 3대 주역(악역)
  웨스트모어랜드 - 베트남 주둔 미군 총사령관
  닉슨 - 1952년 부통령으로 베트남을 다녀갔고, 1969년 대통령으로 베트남전쟁을 확대시킨 장본인
  맥나마라 -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의 국방장관』

   
 
  ▲ 중앙이 웨스트모어랜드  
 

중앙이 웨스트모어랜드베트남 주둔 미군 총사령관 웨스트모어랜드(Westmoreland) 장군은 존슨 대통령에게 전쟁 진행 상황에 대한 1968년 신년보고서를 제출했다. 그 보고서에는 ‘터널 끝에 한 줄기 빛이 보인다.’라고 썼다.

그러나 1월 31일 텔레비전에 비친 미국 대사관 점령 장면을 본 일반시민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제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해졌다.

미국이 이 전쟁을 이길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하룻밤 사이에 반전을 주장하는 시위대가 세 배나 늘었다.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의 새파래진 얼굴이 전 세계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났다.

그의 얼굴에 허장성세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파산자였다. 미군의 증파를 요구했지만 존슨 대통령은 그를 해임해 버렸다.


11
『한국전쟁은 유엔의 16개국이 참여한 3년 전쟁이었다. 베트남전쟁은 20세기 가장 치열하고 악랄한 전쟁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베트남전쟁에서 많은 나라들이 싸웠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싸웠던 나라는 몇 나라 되지 않는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필리핀, 타일랜드, 한국(남쥬딘 : 남조선)에 불과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을 한국전쟁처럼 국제적인 전쟁으로 몰아가려고 노력했다. 미국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면서 제일 먼저 노력한 것은 유엔에 참전을 요청한 것이다.

유엔은 이 전쟁은 더러운 전쟁이라 못하겠다고 하였다. 미국의 동맹국들인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도 미국의 요청을 거부한다. 그 다음에 SEATO(동남아시아조약기구)에 요청하나 타일랜드만 참전하게 된다.

유엔도 나토도 시토도 거절한다. 그래서 미국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큰 우방국가라는 25개국을 골라 개별적으로 베트남전 참전을 요청한다. 거기에 최종적으로 답한 나라가 이 다섯 나라이다.

외국군 주둔지를 표시한 지도, 한국군 주둔지를 표시한 흰 딱지가 많이 없어졌다. 그중에서 한국은 여러 가지에서 기록적인 나라이다. 미국의 요청에 가장 빠르게 응답한 나라이다.

   
 
  ▲ 외국군 주둔지를 표시한 지도, 한국군 주둔지를 표시한 흰 딱지가 많이 없어졌다.  
 

미국이 요청하기 전에 베트남에 참전하겠다고 끊임없이 요청하였다. 그 최초의 인물이 이승만이었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4년에 한국은 미국과 프랑스에 파병을 하겠다고 요청을 한다.

그때 프랑스는 거절하는데, 그 이유는 프랑스 군대가 베트남을 지켜주고 있는 상태에서 파병을 한다면 그것은 프랑스에게 정치적으로 더 불리하다고 판단하고, 프랑스는 이승만의 요청을 거절한다.

그 뒤로도 끊임없이 파병요청을 하는데 1961년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가 케네디를 만나서 우리가 베트남에 파병하겠다고 요청을 한다. 그때도 미국이 거절을 한다.

1965년 유엔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 나라가 거절을 하니까 존슨은 베트남에 ‘더 많은 깃발을(more flags)’ 정책으로 25개국에 서한을 보냈는데 한국이 미국의 요청에 가장 먼저 손을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파병인원(연병력)은 오스트레일리아 7천 명, 뉴질랜드 6백 명, 필리핀 2천 명, 타일랜드 1만3천 명이었다. 한국군은 8년5개월 동안 모두 32만 명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한다. 미국과 한국을 제외하고 다른 나라는 전투 병력을 파병하지 않았다.

한국만 유일하게 3개 사단 규모로 파견하였다. 퀴년에 맹호사단, 빈호아에 백마사단이, 출라이에 청룡여단이, 나트랑(나짱)에 한국군 사령부, 사이공에 수송부대, 붕타우에 한국군 이동외과 병원이 주둔하였다.

박물관 전시장의 지도상에 한국군이 주둔한 장소에 흰 딱지를 붙여 놓았는데 한국사람이 오면 손이 닿는 데는 모두 떼어낸다고 한다. 박물관 관계자가 다시 붙여도 떼어낸다고 한다. 남의 나라 박물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베트남전쟁에 참여한 나라는 미국(55만), 한국(5만), 태국(1만1천), 호주(7천), 필리핀(2천), 뉴질랜드(5백), 대만(30명), 영국(6명)이다.(괄호 안은 최대 상주 병력 숫자)

한국은 1966년에서 1972년 동안 달러 수입은 군인 및 기술자 송금, 용역 및 건설군납, 특별보상 지원 등에 의한 무역외수입이 6억 4,190만 달러, 수출 및 물품군납이 2억 1,560만 달러였다.

한국군의 월남 파병에 따른 경제적 이득은 직접적인 달러 수입에만 한정되지 않고 국내 인력상품의 동남아시아 진출, 특별 미국 국제개발국 차관 공여, 각종 민간경제협력의 추진 등에도 기여함으로써 그 당시 한국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은 베트남 참전을 공산세력에 맞서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해 왔다.

또 참전의 대가로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이 부끄러워 남의 나라 전시장에 있는 딱지를 함부로 떼어 내는지, 그런 이중성이 항상 궁금하다.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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