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 그리고 20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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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 그리고 20년 후
  •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8.12.30 12:1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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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송필경 공동대표

지난 20년

한번 써버리면 절대 만회할 수 없는 것이 시간이다. 그래서 시간이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재물 가운데 헛되이 써서는 안 될 무엇보다도 귀중한 자산이다.

지난 20년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양김 단합의 실패로 5공을 제때 청산할 절호의 기회를 놓쳐 수구에게 숨 돌릴 기회를 주었지만, 87년 6·10항쟁에서부터 이어진 민주화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동시에 급속한 산업 성장과 전속력으로 치달은 근대화를 이룬 시기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정치적 분쟁, 이데올로기적 분열, 사회적 소요, 좌충우돌의 경제성장이 뒤섞인 시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민중들은 완벽한 민주주의체제를 세우지 못했지만 주목할 만한 시민사회를 건설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굳건히 만들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건치도 지난 20년 간 민주주의 건설에 부단히 동참한 것은 자랑이다.

올해를 돌아본다. 전세계적 경제 위기가 닥친 것보다 더 불안한 무엇이 엄습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 때문이다. '짜낸 치약을 다시 튜브에 밀어 넣는' 수구들의 퇴행적 사고가 다시 기승부리고 있다.

역사에 분칠을 하고, 남북관계 긴장을 높이고, 줄서기 교육을 강요하고, 언론을 장악하기 위해 기자를 거리로 내몰고, 서민경제를 외면하는 '강부자' 경제를 찬양하고 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행하는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수구 세력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적에게 불과 유황을 퍼붓고 있다. 양아치처럼 막무가내이다. 파시즘이 도래한 듯하다.

이처럼 진보적 가치는 조·중·동이 대표하는 수구에게 철저하게 유린당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행태는 지엽적일 뿐이다. 4년 뒤 대통령 선거에서 가시적인 대안이 지금으로선 전무하다.

왜 그러한가? 대중이 진보를 불신한 까닭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1960년 이후 첫 민간인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대통령을 시작으로 군인출신이 아닌 민간인 출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잇달아 등장하였다. 그 나름대로 개혁적 성과는 있었지만 민중의 기대에는 너무나 미흡했다. 어쩌면 그들 탓이라기보다 진보진영의 역량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사소한 정치적 이해에 따라 이른바 '민주적' 제도 정당은 이합집산 했다. 100년 정당을 외친 참여정부의 열린우리당은 4년 만에 분해되었다. 유일한 진보 정당인 민주노동당도 평등파니 자주파니 티격태격하며 8년 정도 버티다가 갈라섰다. 수구를 견제할 제도적 정당은 사라져 버렸다.

그리하여 지금 우리 사회는 그동안 고통스럽게 차곡 쌓은 민주화 성과물들이 쓰나미에 당한 것처럼 한꺼번에 폐기 당하고 있다. 20년을 공들여 온 시간이 헛되이 날아가 도로아미타불이 될 처지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시간이 말이다.

20년 후

헛되이 보낸 시간이란 어떤 것일까? '인간답게 살거나 경험을 쌓는 일도 없었고, 배우거나 창조하는 일도 없고, 고통스러웠던 일도 없었던 시간'이라고 신학자 본훼퍼는 말했다.

대만 국립고궁박물관에는 만리장성만 빼고 유구한 중국 역사의 유명한 유물이 거기에 다 있다. 그중에서 인상적인 것은 약 15cm의 상아로 만든 공속에 6개의 상아공이다.

큰 상아를 깎아 완전한 구형을 만들고 여기에 문양을 파고 판 문양으로 안으로 다시 내면을 균일하게 깍아 내면 그 안에 또 공이 생긴다. 그렇게 반복하여 6개의 공속의 공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을 눈으로 보면서 만들면 시력을 잃는다고 한다. 눈을 감고 오직 손가락 감각과 깎이는 소리만 감지하여 조각했다. 이 기괴한 유물을 만드는데 3대에 걸쳐 90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집트 나일강 서안 바위고개에 우뚝 서 있는 기자의 피라미드! 이 불가사의한 건축물이 완벽한 모습을 갖추기까지 3천년 세월 동안 수천 개의 피라미드를 짓고 부순 시행착오의 결과였다고 한다.

삶에는 중요한 일이 있고 급한 일이 있다. 이제까지 진보진영은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틀을 짜는 중요한 일은 뒷전이고 선거에 매달려 국회의원 하나 만드는 급한 일에만 분주했다.

유물하나 만드는데 몇 세대에 걸쳐 몇 십 년이란 시간이 필요한데 남북으로 단절되고 동서로 부서진 우리 사회를 다시 촘촘히 이어 완전하게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유럽의 제대로 된 사회주의 정당이 작동하는 데 80년이 걸렸다고 한다. 기본기를 충실히 연마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지난 20년이란 세월만으로는 평등을 지향하는 정교한 사회와 통일을 완성하는 화합의 시대를 만들기에는 너무나 짧다고 생각하니, 지금의 고난에 그나마 자그마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에 이명박 정부 정도로는 실망하지 말자. 지난 20년의 시행착오를 경험삼아 앞으로 20년은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끝까지 충실하게 크는 나무는 느리게 자란다'고 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창조하려는' 고통을 감내한다면 당연히 20년 후의 우리 사회 모습은 지금보다 매우 아름다울 것이다.

건치 가족 여러분!

바로 올해는 새로운 20년을 내딛는 첫해입니다.
경제적 곤궁과 정치적 박해가 심할수록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더욱 매진하여 봅시다.

모두 새해에 건강하십시오.

송필경(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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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홍 2009-01-05 18:07:51
저부터도 조급증에 빠져있었던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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