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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헌재, 그 눈 먼 장님에게 길을 물을 것인가?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4.10.27 00:00
법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질서를 규정하는 약속체계를 가리킨다. 그러니 법은 무엇보다도 그 시대와 그 사회의 정의의 기준이 되어 왔다. 사람의 의견은 가지각색이며 이런 갖가지 사람들이 사회를 만든다. 만약 법이 없다면 인간 사회는 무질서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법은 그 중요성만큼이나 존중을 받아 왔다. 그래서 공리주의자 벤담은 '법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의 기초'라고 보았고, 철학자 베이컨은 '돈은 전쟁의 힘이나 법은 평화의 힘'이라 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인정이 메마르면 '법대로' 라는 말이 난무한다. 흔히 상대방에게 '법대로 하자(또는 해라)'라고 하는 것은 막말과 다름이 아니다. 이쯤 되면 서로 주먹질하는 다툼 이상으로 감정이 사나워진다. 양식과 상식을 팽개치고 오직 법으로만 해결하려는 경향은 정서가 그만큼 비뚤어졌다는 증거이다. 이런 시정잡배나 하는 짓이 우리 정치에서도 다반사이다. 탄핵심판과 수도이전 위헌 소송의 본질은 헌법재판소 역할의 본래 취지와는 전혀 엉뚱한 것이었다. 그것은 노무현 대통령과 그를 전혀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보수 세력 사이에 일어난 화해할 수 없는 유치한 다툼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수도이전 위헌소송에서 헌재가 판결을 내리기 위해 전개한 논리의 근거를 관습헌법에서 찾은 것은 놀라운 파격이었다. 웬만큼 교육받았다는 국민의 99.99%조차 처음 듣는 이론이었다. 물론 얼마간의 헌법조문으로 인간사의 모든 복잡한 것을 규정할 수 없을 터이니 불문법을 인용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여태까지 오직 법률 용어에만 매달려온 보수적인 우리나라 사법부를 생각해보면 이번 일은 기발한 착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법이란 실정법만 아니라 자연법도 있는 것이요, 성문법만 아니라 불문법도 있는 것이다. 현대 모든 나라가 모범으로 삼고 있는 미국 독립선언이나 프랑스 혁명 이후 확립된 인권선언은 천부인권설로 대변되는 자연법 정신에 기초를 둔 것이다. 1776년 미국은 독립선언에서 '인간은 조물주로부터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는 천부의 권리를 부여받았다'고 했으며, 1789년 프랑스 인권 선언은 '사상과 의견의 전달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권리 중의 하나이다'고 했다. 이런 천부인권설이야말로 절대 법의 대전제인데, 그것은 실정법의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자연법 사상이 없는 실정법은 의미가 없다. 이러한 상식들은 너무나 보편적이라서 고등학교를 제대로 나오면 잘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이번 판결을 보면서 헌재의 자세가 우려되는 것은 법이론을 상식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향으로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리타분한 과거에 집착하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번 수도이전 위헌 판결에서 논리가 궁색하니까 빛 바랜 왕조시대의 유물을 뽑아낸 것은 어찌 보아도 유치하였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에게 타격을 입힌 판결에 환호를 올린 반노세력들조차 어이없는 논리 전개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어쨌든 보수세력은 툭하면 헌재에 달려가 고자질 할 것이고 그들보다 더 보수적인 헌재는 '법대로'를 외치며 이들에게 손을 들어 줄 것이다. 4대 개혁입법 그 중에서도 특히 국가보안법(국보법) 폐지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사생결단의 자세로 임하여 헌재에 위헌 소송하겠다고 이미 선언하였다.

국보법은 남북분단과 공산주의 공포를 내세움으로써 천부인권인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제약하여 우리의 정치 감각을 왜소·왜곡한 악법이다. 그것은 우리의 힘을 발전과 창조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가치와 전통을 짓밟는데 사용하였다. 그것은 광신적 반공주의였으며 인권을 모독하고 파괴한 것이다. 그것은 독재 권력에 맞서 그동안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민주화 세력을 옥죄이기 위한 반인권법이었다.

이제 공은 헌재로 넘어갈 것처럼 보인다. 헌재는 더 이상 경국대전을 읊조려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 하여 자연권 사상을 분명히 표현하고 있다. 헌재가 근대 성문법의 정신적 토대인 천부인권설을 만약 외면한다면, 우리 사회는 눈 먼 장님에게 길을 묻는 격이 될 것이다.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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