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의 영화한편]누구나 비밀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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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한편]누구나 비밀은 있다
  • 강재선
  • 승인 2004.10.28 00:00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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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용모에 지적이고, 자상한 마음씨와 유머감각까지 겸비한 능력 있는 젊은이가 있다. 그는 상대방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배려와 이벤트를 잊지 않는 성실함까지 갖추었고, 케이스에 따른 다양한 기술을 선보이며 후리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자유분방한 미영의 남자친구 역할 뿐 아니라, 미영의 둘째 언니인 공부벌레 선영으로 하여금 그간 등한시하여 무지했던 성에 관해 학습과 실전에 매진하게 하며, 권태기에 들어선 유부녀인 큰언니 진영의 마음에 비 오는 날에도 활활 타오르는 불을 놓는다. 우애 좋은 세 자매들의 억눌린 욕망과 무의식을 흔들어 깨우며 은밀한 연애를 벌이는 수현은 진지하게 말한다. 세상에 한 가지 사랑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명랑 불륜이 빚어내는 코미디 안에서는 그 누구도 다치지 않는다.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것도 없고, 사회경제적인 현실에 망연자실 하는 것도 아니고, 어른들의 행각에 마음 상할 어린이도, 노부모도 없다. 그야말로 모두에게 해피엔딩이다. 가정을 지키기 위한 지혜로, 잠재된 자아를 불러내는 도화선으로, 유쾌한 비밀 하나쯤 가질 수 있다는.

'가족들 모두에게 하나씩 비밀을 안겨줬고 비밀의 크기만큼 행복해졌다'는 수현의 말에 어째서 어머니 선우용녀에게는 행복을 나누어주지 않았나 하는 농지거리를 하며 히히덕거리다, 문득 세 딸년의 행각을 알았다면 가슴이 미어졌을 어머니 모습에 뻘쭘해진다.

대장금을 재미나게 보다가, 민정호 영감과의 사랑이 '그래봤자 첩살이하는' 거라는 대사에 민정호 영감 집에서 민영감의 부모를 모시고 자식을 키울 처의 얼굴이 몹시 궁금해졌던 것처럼, 얼굴도 이름도 나오지 않는 드라마 저 뒤켠의 그녀가 자꾸 신경이 쓰였던 것처럼, 그림처럼 잘 어울리는 장금과 민영감의 얼굴을 자꾸만 찬찬히 들여다보게 했던 것처럼, 머쓱하다.

나이를 먹고 조금씩 세상의 비밀을 알아가다 보니, 드라마나 영화 속의 명랑 불륜이 그저 재미있기만 한 것이 아니더라. 어른이 되면 좀 더 세상이 수월하리라 생각했는데,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더욱 풀기 어려운 문제만 생긴다. 가벼운 섹시 코미디에 한껏 유머를 즐기고 나서 뜬금없이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며 바른 생활을 생각하는 것도 참 촌스럽다.

영화를 보고 난 첫 느낌은 나름대로 발랄했는데, 이제는 괜히 혼자 씁쓸하다.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더라는 어느 선배의 지나가는 말까지 떠올라 가슴이 다 스산해지고 마는 걸 보니,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이래저래 마음 다치는 사람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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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클럽회장 2004-11-01 16:20:38
한달에 한번은 너무 깁니다.
영화 보실때마다 매번 올려주시면 안될까요?

강재선 2004-10-30 11:39:13
뜨거운 성원 감사합니다~~

팬클럽회장 2004-10-29 00:25:53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치과의사의 일상, 부모님에 대한 사랑,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숱한 연애... 모두다 강선생의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아자! 아자! 강선생님 화이팅.

디케이 2004-10-28 19:10:26
그동안 강선생의 영화한편을 눈이 빠져라 기다려온 팬이올시다.
이렇게 온라인에서 강선생의 영화한편을 만나니,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것처럼
기쁘고 시원하고 쁘듯합니다.
강선생이 하는 영화평의 강점은
영화평속에 묻어나는 필자의 발랄하고 재치있는 사적감정들에
있지않나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이왕이면 1주일에 영화 한편씩 보시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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