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충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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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충주 여행기
  • 조남억
  • 승인 2009.05.28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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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인천지부 2009년 39호 소식지에 기고한 글의 전문이다.(편집자

올해부터 건치소식지에 여행기를 연재하 기로 하니, 장소 정하기 고민이 되었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충청북도를 정하고, 차근차근 돌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학교에 다닐 적에는 밤에, 숙소거리가되는 곳에 밤차를 타고 가서 구경하고, 다시 밤차를 타고 되돌아오는 여정을 대부분 선택했었기 때문에, 강원도나 전라도 경상도 쪽을 다녔었던 것 같고, 오히려 충청도는 거리가 애매하고 교통이 불편하여 많이 다니질 못하였었다.

이제는 주말을 이용하여 1박 2일이라는약간 짧은 여행을 하면서도, 자가용을 이용하고, 고속도로도 잘 닦여서 돌아보기 편안해진 충청북도를 돌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늦게 결심을 하게 된 관계로, 숙소를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능하면 자연휴양림에서 묵고 싶었으나, 이미 주말 예약은 다 되어 있었던 상태였는데, 충주에 있는 봉황자연휴양림이 예약이 되어서, 그곳에서 자고, 그 주변을 돌아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충주는 길의 고장이다. 남한강 물길이 여기로 지나고 계립령 길이나 새재길, 죽령길 등 소백산맥을 넘는 고갯길들이 여기로 이어진다. 삼국시대 이래, 이 물길과 땅길의 길목인 이곳을 차기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였다.

처음에는 백제의 땅이었으나, 5세기 말고구려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의해 고구려땅이 되었고, 중원 고구려비가 세워졌고, 6세기 중엽 신라 진흥왕 때는 다시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속리산에서 발원 한 달천이 남한강으로 합쳐드는 어귀에는 신라로 망명한 가야인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탄금대가 있다.

경덕왕 16년(757)에는 이곳이 통일신라 영토의 한가운데임을 표방해서 세운 탑평리 칠층석탑이 있는데, 중앙탑이라는 별명이 더 유명하다.

이렇듯 충주에는 볼 것이 많아서, 한번에 모두 보기는 힘들기 때문에, 나중에 볼 여지를 남기고, 토요일 오후 늦게 출발하는 1박 2일 여행에서 돌아본 곳 위주로 답사기를 써야할 것 같다.

우리가 묵을 예정이었던 봉황자연휴양림은 충주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그 주변을 위주로 먼저 구경을 하였다.

5시에 인천을 출발하여 영동고속도로로 갔더니, 약간 막혀서, 중부내륙고속도로 북충주 IC로 나가니 7시가 조금 넘었다.

일단 숙소를 찾아서 짐을 풀어놓고 곧장 밥을 먹으러 갔다. 1973년도에 목계교라는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 활기차던 목계나루 근처에는 매자조림으로 유명한 강변횟집(043-852-0799)이 있다. 모래무지와 비슷한 참마자라는 물고기를 충청도 사투리로 매자라고 부르는데, 무와 감자를 깔고, 우거리를 함께 넣어 조린 것이
어서, 밥맛이 좋았다. 아이들은 올갱이 해장국을 시켜주었는데, 이것도 구수하였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가듯, 내가 그냥 못 지나치는 곳이 바로 천문관인데, 목계교와 봉황리 중간에 충주고구려천문과 학관이 있었다. 아주 높은 산이 아니지만, 산 정상에 세워져 있어서 전망이 좋았고, 시설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천체 투영실에서의 설명은 어느 곳 못지않았다. 다만, 이번에 우리가 간 날은 날씨가 흐려서, 별 볼일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다른 천문대에 비교하여 가격이 저렴하고, 사람이 많이 없어서, 오히려 느
긋하게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봉황자연휴양림에서는 4인용 산막을 예약했었는데, 난방도 잘 되었고, 온수도 잘 나왔고, 산막 앞에까지 차가 갈 수 있어서, 편리했다. 다만, 산막의 시설은 창문이 작아서, 좀 답답하고, 좁아 보였으나, 그만큼 저렴하였기에, 가족이 하루 자기에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이불은 두채만 있어서, 아이들이 더 갈 경우에는 여벌로 이불을 좀더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일요일에는 아침을 간단히 해서 먹고, 11시에 체크아웃 하였다.

국보 205호인 중원고구려비는 휴양림에 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글자가 마모가 심하고, 누각 안에 있어서 만져볼 수는 없지만, 그 옆에 복제모형을 만들어 놓아서, 그것으로 잘 볼 수 있었다. 이곳 입석마을 어귀에는 오래전부터 이끼가 많이 낀 돌기둥이 하나 서있었는데, 사람들은 그저 마을 수호석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1979년에 충주지역 문화재 동호인들 모임에서 발견되어 학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하니, 지금
이순간에도, 주변의 돌 하나, 나무 하나라도, 예사로 보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비석에서 멀지 않은 곳에 중앙탑(탑평리 칠층석탑)이 있는데, 탑 주변에는 호수가 잔잔하고, 잔디밭은 잘 꾸며놓아서 날씨만 좋다면, 강가 정자에서 누워서 쉬고 싶은 곳이었다.

공원 옆에 있는 술박물관에 들어가서 구경하고, 비싼 입장료가격에 대한 응대인지, 와인 한잔씩 시음할 수 있게 해주어서, 먹는데, 그 카페창문으로 보는 풍경이 좋았다. 4월 이후로는 음악분수도 펼쳐진다고 하니, 그 창문 앞자리는 아주 명당이 될 것 같다.

중앙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 중 유일한 칠층석탑이고 높이도 15.4m로 높은데다가 10m이상 높직한 토단위에 위치하고 있어서 우러러 보게 되는 높이가 상당해 보인다. 이 석탑은 국보 제 6호라고 하는 설명문을 읽어보니, 탑이 더욱 잘 보존되길 바래본다.

중앙탑을 나와서 달천을 건너면, 달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지점에 탄금대가 위치한다. 탄금대는 우륵과 관련이 있는 곳 이어서 낭만적인 풍경을 보여주지만, 사실, 임진왜란 때, 문경새재를 넘어온 왜군들을 막으려고 신립장군이 배수진을 쳤던 곳이었는데, 그만 조선관군이 크게 지고, 신립장군도 이곳 열두대에서 몸을 던졌다고 하니, 그날의 참혹함이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도 하였다. 소나무 숲도 좋고, 곳곳의 설치 미술작품들
도 좋았고, 열두대 정자위에서 보이는 풍경 또한 좋았지만, 아직 바람이 세고, 차서, 아이들과 오래있지 못하여 아쉬웠다.

탄금대에서 나와서는 충주댐구경을 갔다. 작은 길목을 딱 막아놓으니, 남한에서 제일 큰 호수가 생겨서, 수몰된 마을이 수십군데가 되었다는 그 충주댐을 직접보니, 정말로 댐 건설하기에는 천예의 요지하고 할 만 한 것 같았다. 댐에서 언덕위에까지 전망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편리하였고, 언덕위의 물문화관도 아이들과 무료로 돌아보기 좋았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충주호선착장에서 단양과 제천까지 이어지는 유람선을 타고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미 늦은 점심시간이 되었다. 충주댐에 서부터는 거리가 좀 멀지만, 그래도, 충주까지 와서, 충주에서 유명한 음식을 먹자고 결심하고, 수안보근처까지 20분 달려가서 꿩고기 요리를 먹었다. 코스별로 나오는데, 꿩고기 회와 샤브샤브, 꿩 샐러드, 꿩 꼬치구이, 꿩 만두, 꿩 불고기, 수제비까지 나오는 코스였는데, 고기맛이 약간 독특하고 먹을 만 했지만, 가격은 좀 비싼 편이었다. 나는 맛이 좋았는데, 집사람은 이상하다고 하면서,
한번 맛보았으니, 앞으로는 먹을 생각이없다고 하였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행히도 많이 막히지는 않아서 2시간만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되었다.
충청북도는 면적으로만 보면 제일 작은 '도'지만, 소백산맥에 따라 있어, 구불구불한 내면의 세계가 무궁하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충주는 그중 길목을 차지하는 중요한 곳이었던 만큼, 더욱 볼만한 곳이 많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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