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의 국감 증인선정 무마, 이렇게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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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국감 증인선정 무마, 이렇게 이루어진다
  • 인터넷참여연대
  • 승인 2004.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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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재벌 책임자 빠진 이번 국감이라고 예외일까?

누구나 짐작만 할 뿐 그 실상이 드러나지 않았던 ‘재벌의 국감 증인선정 무마’ 로비의 일단이 정치인 뇌물사건에 대한 법원 판결문을 통해 확인됐다. 2000년 국정감사 당시 현대건설 고 정몽헌 회장을 증인선정에서 배제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주천, 박주선 전 국회의원에 대한 최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 선고문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고 정몽헌 전 회장의 지시로 핵심 임원진이 대책회의를 열고 각 임원이 평소 연고와 지인관계에 따라 역할을 분담해 해당 상임위인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치밀한 로비를 전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학연, 지연 따라 임원이 돈가방 들고 직접 나서

박주천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에 대한 지난 8월 20일 서울고등법원 판결, 박주선 전 민주당 국회의원에 대한 지난 2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선고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회장의 지시 아래 ‘그룹차원의 대책회의’를 갖고 총무이사, 법무실장, 부사장 등 임원진이 총 동원돼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에 대한 전방위 로비를 시도했다. 로비는 현대건설 임원과 정무위 소속 의원들간의 학연, 지연, 평소 친분관계 등에 따라 역할분담이 이뤄져, 재벌의 금품로비의 실상을 실감케 했다.

2000년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무위원회는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기업지배구조상의 문제점, 대북사업의 문제점 등을 추궁하기 위해 고 정몽헌 회장을 증인으로 선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를 인지한 고 정몽헌 회장은 2000년 9월 중순경 그룹 회장실에서 그룹차원의 대책회의를 열어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을 상대로 증인선정을 무마하도록 로비를 시도할 것을 지시했다.

현대건설 임원들은 대책회의에서 1999년 국감증인에 선정됐으나 출석을 하지 않아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는 고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사전에 증인선정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질책”을 받는다. 판결문은 “정몽헌 회장이 그룹 차원의 대책회의를 소집해 정무위 소속 국회의원들 중 평소 친분이 있는 의원들을 각자 맡아 청탁을 하기로 대책을 세웠다”면서 “임진출 의원에 대해서는 김철순 총무이사, 정형근,이성헌 의원에 대해서는 강구현 법무실장, 박주선 의원에 대해서는 임건우 부사장, 정무위 위원장인 피고인(박주천)과 이훈평 의원에 대해서는 김윤규가 개별접촉하기로 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박주천 전 의원을 김윤규 당시 현대건설 부사장이 접촉한 배경은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모임에서의 인연으로 1년 2-3회 정도 골프와 호텔 식사를 통해 접촉한 것으로 돼 있다. ‘평범한’ 이 로비가 박주선 전 의원이 정무위 위원장으로 재직하던 2000년 10월 국정감사 기간에 “5000만원이 든 007가방을 박주천 전 의원의 승용차에 넣어”주는 뇌물 금품 로비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의원실에 3000만원 든 돈가방 직접 전하는 대담함도

임건우 부사장이 박주선 전 의원 로비를 맡게 된 것 배경은 “특별한 친분은 인정되지 않았”지만, 동향이라는 점이 작용했다. 임 부사장은 제 1회 검찰조사에서 박 전 의원에게 돈을 전달하는 정황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고 한다.

“제가 박주선에게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라고 하면서 현금 3000만원이 들어 있는 쇼핑백을 건너편에 앉아 있던 박주선 의원 쇼파 앞에 놓아 전달하니, 박주선 의원이 당황한 듯 일어서서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에 제가 얼른 일어서면서 ‘현대의 증인 문제에 대하여 선처 바랍니다’라는 말을 하고 바로 박주선 의원 사무실을 나왔다.”

이후 임 부사장의 진술은 조금씩 바뀌고, 박 전 의원 역시 박 전 의원은 뇌물죄 유죄판결을 내린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까지 했지만, 법원은 당시 정무위 증인채택과 관련한 움직임, 현대건설이 제공한 3000만원이 박 전 의원이 정치자금 모금 총액의 12%나 된다는 점 등을 고려해 포괄적 뇌물죄의 성립을 인정했다.

국감 증인선정은 로비 유도용?

당시 정무위 한나라당 간사였던 임진출 전 의원에 대한 로비를 맡은 김철순 총무이사가 검찰조사에서 밝힌 내용은 소위 ‘국감 증인선정 로비 유도설’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임 전 의원을 접촉한 김 총무이사는 증인선정 진행과 관련 임 전 의원으로부터 “야당 의원 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들까지 모두 난리다. 상당히 어렵다. 정무위에서는 정몽헌 회장을 반드시 증인으로 채택할 것 같다”는 답변을 듣는다. 이후 직접 만난 한 여당의원으로부터도 “정몽헌 회장은 반드시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듣게 된다.

당시 민주당이 정몽헌 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런 발언은 로비를 유도하기 위한 엄포용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김철순 총무이사는 자신이 직접 들은 정무위원들의 발언을 바탕으로 “여당을 상대로 로비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여당 간사인 이훈평 의원만으로는 대처하기 힘들고 여당 내의 다른 의원들에 대해서도 추가 로비를 해야 한다”고 대책회의에 보고했다. 그리고 이 보고가 정무위에 영향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박주선 전 의원에 대한 추가 로비로 연결된 것이다.

실제 2000년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정무위는 국감 시작 1주일 전 10월 11일 여야간사 합의로 재벌그룹 인사를 포함한 36명을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현대그룹 정몽헌 회장과 삼성 이건희 회장의 아들 재용씨 등은 결국 증인에서 제외해 ‘로비 유도용 증인선정설’에 신빙성을 더했다.

이번 국감도 재벌쪽 증인은 핵심 관계자 줄줄이 빠져

▲ (사진 : 연합뉴스) 카드사태에 관한 정무위 국정감사에 나선 증인들. 핵심 책임자인 LG그룹 구본무 회장은 보이지 않는다.
17대 첫 국정감사 역시 ‘힘센’ 재벌 인사들은 국감 증인선정에서 빠져나가, ‘국회 전담팀까지 만들어 로비를 한다’는 세간의 의혹이 결코 의혹만이 아님을 시사했다.

LG카드 사태의 최고위 책임자인 LG그룹 구본무 회장, 한나라당 고진화 의원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박노빈 삼성에버랜드 사장과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노동자 불법위치추적 혐의로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등에 의해 검찰 고소된 삼성SDI 김순택 대표이사 등은 증인선정 사유가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산된 대표적인 사례다.

2000년 국정감사에서 재벌의 금품로비가 몇 년 뒤 사법적 심판을 받은 것처럼, 17대 국회 첫 정기국회에서 무산된 재벌 증인선정이 앞으로 사법의 심판대에 오르지 말라는 보장은 없어 보인다.

장흥배 기자    ⓒ 인터넷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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