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등재약 목록이 정비되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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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기등재약 목록이 정비되어야 하는 이유
  • 천문호
  • 승인 2009.07.15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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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행동하는 의사회에서 발행하는 웹진 '행동하는 의사들'(http://www.khpa.org/board/zboard.php?id=news_letter)에 실린 글의 전문이다.
 
매년 텔레비전에서 한 두 차례씩 빠짐없이 나오는 것이 약가거품에 관한 문제이다. 즉 리베이트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기사가 보도된 다음날은 약사로서 직, 간접적으로 많은 곤욕을 치루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물어보거나 아니면 시선이 전과 다름을 느끼기 때문이다.

약가거품이 생길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2007년 약제비 적정화방안이 시행되기 이전의 약품들(‘기등재약’(주1)이라고 함)의 약가를 선정하는 데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신약을 미국 등(영국, 독일, 일본 등)처럼 생산하기에는 인프라나 개발 투자액수가 너무 적기 때문에 제약산업이 제네릭(복제약, 카피약)약품 위주로 편성되어 있으며 이런 이유로 제네릭약품에 대한 약가를 높게 유지시켜주는 정책을 시행해 왔다.

물론 그렇다고 신약에 대하여 홀대하는 정책을 펴 온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신약이 들어오는 속도가 미국 다음으로 빠르며 A7(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일본)으로 알려진 선진 7개국의 약가 평균가를 기준으로 신약 약가를 산정했기 때문에 물가나 경제규모를 비교하여 보아도 신약 약가가 선진국보다 높은 편이고 이런 신약에 대한 지적재산권보호도 선진국 수준(?)으로 잘 보호해 주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하였다. 특허 만료 후 출시되는 제네릭약품의 약가가 이 신약의 약가를 기준(특허약품 약가의 80%)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높은 약가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제네릭약품은 개발하는데 연구개발비나 임상실험비와 같은 항목이 없기 때문에 사실 80%로 결정되는 약가 속에는 구조적으로 엄청난 이윤이 끼어 있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약 2조1천억원 정도를 약가의 거품으로 보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리베이트로 흘러 들어간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 액수가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하기 위하여 만약 이를 건강보험 재정으로 사용할 경우를 예로 설명해 보겠다.

이 돈은 암환자 본인부담금을 10%에서 5%로 낮출 수 있으며(1,300억원 소요 추정) 노인틀니를 보험 적용할 수 있고(약 1조원 소요 추정), MRI를 보험 적용하고도(2,600억원 소요 추정) 남게 되는 엄청난 돈이다. 높은 약가로 인하여 국민 호주머니에서 이와 같은 엄청난 돈이 나왔으므로 이제는 다시 그 주인들에게 돌려줄 차례가 아닐까 한다.

이와 같은 엄청난 거품을 걷어내고자 정부가 지난 2006년 12월 29일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발표하였다. 이 약제비 적정화방안의 목표는 비용대비효과가 우수한 의약품을 국민들이 적정한 가격에 복용하게끔 하는 데 있다.

그 주요 내용 중 하나가 바로 2006년 12월 당시 이미 보험등재된 약품(기등재약)의 목록을 정비하겠다는 ‘기등재약품 목록정비사업’(주2)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의료비 중 약제비는 30%를 차지하고 있으며, 매년 증가율은 약 15%나 된다. 비급여 의약품까지 포함한다면 그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약제비의 규모가 얼마나 증가할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므로 기등재 약품에 대한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 효과성을 평가하여 목록을 정비하는 것은 약제비 적정화방안의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더불어 이후 등재될 신약의 비용효과성을 산출할 때 비교가 될 기준이 기등재약이므로, 기등재약의 비용효과성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신약의 급여 여부 및 약가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임은 확실하다.

이와 같이 시급히 기등재약 목록을 정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추진하는 데에 여러 가지 난관이 있다. 가장 큰 난관은 제약사의 반발인데 ‘경제위기이므로 기등재약 목록 정비사업을 유보해야 한다는 요지’로 호소문을 발표한 바가 있다.

또한 여전히 리베이트를 주고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 의무인 것처럼 공공연히(?) 의사, 약사들에게 리베이트를 주는 관행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기등재약 목록 정비사업을 흔들림없이 진행해야 할 정부도 슬그머니 목록 정비에 대한 강도를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다.

제약사나 의사, 약사도 어려우나, 경제위기시기에 가장 크게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바로 대한민국 서민대중이라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기등재약 목록 정비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해 의료비로 인해 가정이 파산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바로 경제위기시기에 서민대중의 큰 시름을 다소나마 덜어주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

이를 위하여 우리 스스로가 작년 촛불 때와 같이 한손에는 촛불을 다른 손에는 서로간의 손을 다시 잡아야 할 때가 아닌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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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기등재약 : 건강보험이 적용되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의약품 가격의 일부를 건강보험료로 지불하는 의약품을 보험 등재(급여) 의약품이라고 한다. 2006년 12월 ‘약제비 적정화방안’을 발표할 당시 이미 보험등재되어 있는 약품을 기등재약이라 한다. 현재 약 15,000여 약품이 포함되어 있다.
(주2) 기등재약 목록정비사업 :  보건복지가족부는 이미 보험 등재되어 있는 기등재약을 평가하여, 퇴출시킬 것과 약가를 인하시킬 것을 추려내는 기등재약 목록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사업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의 일환으로, 의약품의 보험등재 방식이 포지티브 방식으로 전환됨에 따라 실시하는 것이다. ‘기등재약 목록정비사업’은 올해 초까지 고지혈증 치료제 등 2개 약효군 300여 품목에 대해 진행하였으며, 현재 각각의 품목에 대한 보험 등재 여부와 약가 인하 또는 유지 여부에 관한 최종 결과가 도출된 상황이다. ‘기등재약 목록정비사업’은 의약품 약효군별로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보건복지가족부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보험등재 되어 있는 모든 의약품에 대해 목록정비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후주는 웹진 편집국에서 덧붙인 것임을 밝힙니다

 

 

 

천문호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부회장, 건강연대 운영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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