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생의 영화 한편] 어바웃 어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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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생의 영화 한편] 어바웃 어 보이
  • 강재선
  • 승인 2004.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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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바웃 어 보이’는 어른스러운 꼬마와 철없는 어른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간은 모두 섬’이라고 주장하는 38세 독신남 윌에 의하면, TV와 DVD, 커피메이커가 있는 현대는 굳이 영화를 보러, 커피를 마시러 군중 속을 헤맬 필요가 없는 ‘섬의 시대’다. 넉넉한 유산 덕에 좋은 옷과 훌륭한 전자제품과 스포츠카를 갖춘 윌은 낙원 같은 자신의 섬에서 매끈한 라이프 스타일을 즐긴다.

반면 12세 소년 마커스는 사는 것이 괴롭다. 우울증 때문에 자살을 기도하는 엄마, 왕따를 당하는 학교생활은 고독한 섬 생활과 같다. 영화는 두 소년의 만남과 성장을 그린 유쾌한 코미디.

생각해보니, 윌과 나는 그닥 다르지 않다.
문화적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투자와 사물에 대한 애정은 가까운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보다 많으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사회적 책임감을 최소화하고 간섭받지 않으려는 모습이 닮았다. 이성을 사귀는 것을 즐기지만, 결혼과 가족을 꾸리는 것은 피하고자 하는 것도….
모두들 내게 말한다.

‘강선생’은 싱글 라이프를 변호하는 것 같다고….

아마도 그런 모습은 상처로부터 나왔을 게다. 진지한 성찰과 고민이 없었겠냐만,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고 누군가 나를 책임지는 관계 자체에 회의를 가졌거나 관계의 뜬금없는 파열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안타깝지만, 내 자신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약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쿨하게 살아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걸 깨닫는 중이다.

마지막 파티 장면은 좋아 보인다. 사실, 어떤 결론도 없이 모두 어정쩡한 관계지만 윌과 마커스는 여분의 사람들을 얻어 군도(群島)를 이루었고, 그 어울림은 따뜻해 보인다.
때로는 ‘쌍을 이루는 것’의 대안으로 어떠한 공동체를 꿈꾸곤 했다. 실현가능성은 있으나, 지속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소년들은 외로움을 떨쳤으나 아버지가 되지는 않았다. 나 역시, 여전히, 모종의 꿈을 꾸고 있는 중이지만, 그 꿈은 아쉽게도 자기방어다.

강재선(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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