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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악마 -‘반공’에서 ‘애공’으로
송필경 논설위원 | 승인 2002.07.20 00:00

 

   
▲ 송필경(논설위원, 범어연세치과)
우리는 흥이 많은 민족인가 보다. 브라질 하면 삼바 춤과 축구를 사랑하는 정열을 얼른 떠올리듯이, 우리 민족의 특성을 잘 상징화한 최초의 기록은 3세기 경에 쓰여진 유명한 삼국지 위지동이전이다. 당시 중국인이 바라 본 우리 민족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니 마을마다 밤이 되면 남녀가 떼지어 모여서 술을 마시며 장난을 즐긴다고 했다.

요즈음도 골목마다 술집과 노래방이 즐비한 것을 보면 함께 노는 것은 세계 으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으니, 이 묘사가 정확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동이전 기록에서 국중대회(國中大會))란 풀이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이것은 나라 안 모든 사람이 모여 함께 큰 잔치를 즐겼다는 것이다.

조선왕조 후기, 권력이 경직되면서 민란이 발생하게 되고 그래서 백성이 모이는 것을 억압하였다. 3·1운동 후 일제는 함께 있는 것을 모질게 탄압하였고, 해방 후 독재권력 역시 한치의 변화도 없었다. 민중이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을 권력에 대한 반항으로 보았으니 부패한 세력은 이를 무서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광주 학살 이듬해 전두환은 여의도 광장에서 ‘전국대학 민속큰잔치 한마당, 국풍81’이라는 허울 좋은 행사를 만들었다. 사복경찰이 쫙 깔려 여기에 기웃거리던 대학생을 검문하듯 내쫓은, 돌이켜 보면 웃지 못할 코미디보다 못한 짓거리였다. 쿠데타를 호도하기 위한 여론 기만책이지만 큰잔치에 대한 국민의 잠재된 욕구를 짐작케 하는 한 단면이었다.

지난 6월을 뜨겁게 달구었던 ‘붉은 악마’의 열기는 우리 민족의 큰잔치에 대한 억압된 욕망을 마음껏 뿜어내었다. 거리는 물론 안방 심지어 고요가 깃든 절간의 선방에까지 붉은 물결이 밀려드니, 남과 여 그리고 어른과 아이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큰잔치를 즐겼다.

구김살 없는 젊은이들이 이루어낸 ‘붉은 악마’ 현상에 대해 저마다의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는 단군이래 가장 큰잔치를 만들었다고 젊은이를 극찬한다. 어떤 이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우나 무거운 고민을 하지 않은 이십대의 행동일 뿐이라고 애써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심한 사람은 전 국민의 집단열기를 보고 나치를 연상하며 닫힌 국수주의로 흐르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나타낸 사람도 있었다. 냉소를 던지든 애정어린 관심을 갖든 이번에 나타난 현상, 다시 말해 모든 국민이 함께 그리고 크게 즐겼던 사실만은 누구든 기억하리라.

월드컵이 피파라는 첨단 자본주의의 꼭두각시놀음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지라도, 이번 한국팀의 선전을 바탕으로 ‘붉은 악마’들이 보여준 우리 사회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자신에 찬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민족적인 큰잔치는 부정적인 사고에 찌들은 기성세대에게 우리 사회를 긍정하는 계기를 심어준 것이 틀림없다. 함께 모여서 즐기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이다. 함께(공=共)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反共) 없애지 말고(滅共), 더 크게(大共) 함께 하는 것을 진정으로 사랑하자. 애공(愛共) 만세!

 

송필경 논설위원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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