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제’ 만으론 국민 설득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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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제’ 만으론 국민 설득 힘들다
  • 조홍준
  • 승인 2010.01.18 16: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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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책 10년 회고·10년 전망] 보건의료

보건의료는 영어의 health care를 번역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health care를 인터넷 사전에서 찾아보니, “의료인이나 관련된 인력에 의해 제공되는 서비스를 통해 질병을 예방, 치료, 관리하고 정신적·신체적 안녕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돼 있다.

즉, 건강을 위해 제공되는 서비스(개인 또는 집단)와 이를 제공하는 체계 모두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를 10년 단위로 끊어서 생각할 이유는 특별히 없다. 더구나 정권의 철학이나 이념에 따라 의료 체계와 제공되는 보건의료 서비스가 달라지는 경우에는 이런 10년 단위의 분석은 큰 의미를 가지기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에 우리나라 보건의료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큰 변화인 의료보험의 통합 일원화와 의약분업이 시행됐기 때문에 이런 시기 구분이 어느 정도의 타당성은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00년 이후 10년간 보건의료의 변화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국민의 건강 수준은 지속적으로 향상돼, 평균 수명은 2000년 76.0세에서 2008년에는 80.1세로 증가했다. 그러나 건강 수준의 격차는 증가했거나, 적어도 줄어들지 않았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소득 불평등의 악화가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의 건강에 지속적으로 나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에는 국민 건강증진 질병 관리 중장기 전략인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2010』(Health Plan 2010)이 만들어졌고 2005년에 수정됐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질병 관리 중장기 계획이며. 건강 수명 연장과 더불어 건강 형평성 제고가 총괄 목표에 포함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실행 목표의 타당성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실천 전략 등이 미흡하고 실행 과정에 관한 과학적인 모니터링이 미흡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2000년 이후 10년간 보건의료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아마도 “의료보험 통합 일원화와 의약분업의 전면적 실시”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7년 의료보험을 시작해 1989년에 전 국민 의료보험을 달성했다. 그러나 의료보험은 수백 개의 지역과 직장 조합으로 나뉘어져 조합 간 재정 격차의 심화, 과다한 관리 운영비, 미흡한 보장성 수준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진보 진영(농민, 노동자, 진보적 보건의료인 등)의 20여 년에 걸친 끈질긴 노력 끝에 2000년 7월 1일 의료보험을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의료보험 통합을 통해 의료보험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을 달성하였을 뿐만 아니라 관리 운영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으며, 건강보험 운영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의료보장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보장성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는데, 2004년의 보장률은 61.3%, 2007년에는 64.6%로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특정 질환에서는 많은 개선이 있었는데, 암 환자의 보장률은 2004년 49.6%에서 2007년에는 71.5%로 크게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의약품의 오남용이 많고, 의약품의 유통과 관련해 랜딩비, 리베이트 등이 만연했다. 시민 단체의 주도면밀한 노력과 김대중 정부의 의료 개혁 의지가 결합돼 2000년 의약분업이 전격적으로 시행됐다.

의사들의 연이은 파업으로 몇 가지 핵심 내용이 변화되기도 했으나, 의원의 항생제 처방률은 2000년 54.7%에서 2009년 30.9%로, 주사제 처방률도 2000년 60.8%에서 2009년 26.3%로 크게 감소했다.

그러나 성분명 처방 미도입 등으로 오리지널 약제의 사용이 급속히 증가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으며, 지속적인 후속 정책이 미흡해 의약품 유통을 개선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10년간 의료 체계 개편에 관한 논의는 무성했으나 실질적인 성과는 거의 없었다. 일차의료 강화의 주요 과제로 단골 의사 제도에 관한 공약 제시와 논의는 있었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의원과 병원, 종합병원의 역할 분담과 구조 개혁에 관해서도 모형만 제시되었을 뿐이며, 공공 의료를 확충한다는 노무현 정부의 공약은 허황된 약속임이 증명되는데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 중반기를 지나면서, 영리 의료 법인 허용과 민영 의료보험의 역할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의료 산업화’ 정책이 제시됐다.

경제 부처와 의료 산업 이해 당사자들에 의해 주도된 이 정책은 노무현 정부가 진보적 보건의료 진영의 지지를 잃는 계기가 됐고, 이명박 정부가 의료 민영화 정책을 본격화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의료 선진화’로 이름을 바꾸어 강력히 진행되고 있는 의료 민영화 시도는 경제자유구역의 영리 병원 설치 허용 등으로 확대되고 있으나,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 이후 들불처럼 일어난 ‘촛불’이 의료 민영화 반대로 확대되면서 국민의 상당한 저항에 맞닥뜨리고 있다.

향후 10년의 전망

예측은 틀리기 위해서 한다고 한다. 더구나 우리나라와 같이 ‘과도하게’ 다이내믹한 사회에서는 전망 자체가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우선, 지난 2년간 보건의료 정책의 부재(inaction)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이명박 정부 집권 기간인 2013년까지는 의료 민영화의 부분적인 진척 이외에는 큰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몇 가지 추측은 가능할지 모른다.

인구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당뇨, 고혈압, 암 등 만성 퇴행성 질환이 증가하고, 고급 의료기술 도입이 확대되면서 의료비는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대형 병원 위주의 의료 이용과 행위별 수가제는 이런 경향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의료의 시장화 정책도 그 진척 정도에 따라 의료비 증가 정도에 영향을 줄 것이다.

2003년 이후 5년간 우리나라 의료비 증가율은 10.9%로 GDP 증가율인 5.7%의 두 배 가량 높았으며, 이는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이런 높은 의료비 증가는 국민 경제에 상당한 부담을 줄 것이며, 이는 정권의 성격과 관계없이 의료비 절감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으며, 이는 의료 체계의 구조적 변화에 관한 논의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개혁의 필요성과 원칙에 공감하더라고 이념과 이해 당사자에 따라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은 크게 다를 것이다.

일차의료의 역할 강화나 진료비 지불 제도를 포괄수가제나 총액예산제로 바꾸는 데 대해서는 진보·보수가 동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공공 의료기관의 강화나 대형 병원에 대한 규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이해 당사자인 병원이나 의사 집단은 의료비 절감 정책에 강하게 반발할 것이다.

의약분업 당시 의사 파업 등 강력한 반발을 경험한 정치권은 ‘큰 개혁(grand reform)’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강하고, 더구나 현재 상황을 ‘위기’로 인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점진적인 변화를 선호할 가능성이 많다.

이런 현실은 보건의료의 공공성과 형평성 강화 등을 주요 과제로 삼으며, 보건의료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위해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진보 진영에 커다란 도전이 될 것이다.

진보 진영이 국민적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새로운 의료 체계의 모습과 이를 통해 제공될 보건의료 서비스에 관한 설득력 있는 청사진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진보 진영이 제시한 주치의 제도를 포함한 일차의료 강화, 공공 의료 강화, 진료비 지불 제도 개혁 등만으로는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다.

의료 민영화 투쟁을 통해 성장한 국민의 참여를 바탕으로, 국민의 눈높이에서 창조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대안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가 진보 진영 정책가들의 절실한 과제가 될 것이다.

조홍준(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 회장, 울산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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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 2010-01-19 16:27:15
민영화 반대 공공의료 확대 구호만 가지고는 감동이 없습니다. 의료 만능에서 벗어나 국민들의 생활 속에 접근하고 불편을 덜어주는 총체적인 개혁방안에 대한 큰 그림이 필요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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