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의료공급체계 ‘점점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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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료공급체계 ‘점점 멀어진다’
  • 감신
  • 승인 2010.01.2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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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책 10년 회고·10년 전망](5) 의료 공급체계

▲ 감신 교수
의료 공급 체계 또는 넓은 의미로 의료 제공 체계는 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질적·양적으로 적정한 의료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것과 관련된 체계 또는 제도를 의미한다.

즉,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적정 의료를 개발하고 생산하며 지리적·경제적·문화적 접근성을 높이고 필요할 때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의료인에 의해 적정 진료를 제공하여 국민 건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체계이다.

이러한 개념을 바탕으로 의료 제공 체계에서 공급 부문을 회고하고 전망해 보고자 한다.

의료 공급 체계의 지난 10년 회고

1999년까지의 우리나라 의료 공급 체계의 주요 특성은 ▲민간 주도의 자유 방임형 공급 ▲보건 행정 체계의 다원적 구조 ▲전통 의료의 병존 ▲의료기관 간의 기능 분담 미비 ▲의약분업의 미시행 등을 제시할 수 있다.

2000년 이후 10년간 의료 공급 체계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변화로는 2000년 의약분업의 전면적 실시를 꼽을 수 있다.

의약분업의 실시로 항생제 처방률, 주사제 처방률 등이 감소하는 긍정적 효과를 나타내고 있으나 후속 정책의 미흡으로 오리지널 약제의 사용 증가, 의약품 유통 구조 개선의 한계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2000년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공공 보건의료(기관)의 법적 정의와 주요 사업에 대한 근거를 확보하게 되었으나 법령 관련 추진 계획의 수립·시행만을 의무화할 뿐 정책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참여 정부에서 공공 의료 확충 30%와 도시 보건지소-보건소-지역 거점 병원-광역 거점 병원-국가중앙의료원의 공공 보건의료 체계 확립이라는 공약을 이행하고자 하는 노력이 일부 시도됐다.

그러나 별 진전이 없는 상태에서 참여 정부 중반기 영리 법인과 민영 의료보험 확대를 주요 골자로 하는 ‘의료 산업화’ 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의료 선진화’ 정책과 맞물려 답보 내지는 오히려 후퇴하는 양상이다.

그 외에 지난 10년간 의료 공급 체계 개편에 관한 논의는 많았으나 실질적인 성과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의료 공급 구조에 대해 부문별로 회고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가. 의료 시설 및 장비

의료 시설의 소유 지배 구조는 민간 부문의 절대 우위와 공공 부문의 절대 빈곤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의료 공급자 행태는 이윤 극대화가 심화되는 것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이윤 극대화를 위해 병·의원의 설립이 수요나 의료 소비가 있는 곳으로 집중되고 건강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를 증가시키고 고가 의료 장비가 지나치게 확산되었다.

지난 10년간 병원은 팽창을 지속해 왔다. 급성기 병상이 과잉 공급으로 평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병상은 2000년 210,473병상에서 2009년 292,723병상으로 늘어났다.

소위 ‘Big 4’니 ‘Big 5’로 대변되는 대형 의료기관 중심으로 의료 공급 체계가 변화되어 왔으며 특정 분야에 전문화된 소형 전문 병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이로 인한 서울 집중화 현상이 심화되었다.

나. 의료 인력

의료 인력 수급에 대한 계획과 정책적 개입이 없어 인력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였고 인력 배치의 합리성 결여로 지역적 불균등 분포, 전문 과목 간 불균등 분포 등이 발생하였다.

또한 과다한 전문의 의사 인력 양성으로 일차의료의 질적 문제와 비효율성 문제가 심화되고 있고 일차진료 수준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다. 의료 서비스 전달 체계

의료기관 간 수직적·수평적 기능 분담 미비가 개선되지 않았고 일차의료기관에 속하는 의원의 의사가 주치의로서의 역할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여 일차의료가 왜곡되고 있다.

서울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의료 이용의 지역화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 외에 공공 보건의료 연계 체계와 건강증진 및 질병 예방 서비스 제공 체계의 미흡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간 의료 공급 체계 개선에 대한 정부 정책이 미흡하였고 의료 공급 체계의 공공성 취약이 개선되지 않아 국민들의 신뢰도 및 만족도의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

의료 공급 체계의 향후 10년 전망

공공 의료기관을 소유 지배 구조의 개념에서 기능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움직임 속에서 민간 부문의 절대 우위와 공공 부문의 절대 빈곤이 심화될 것이며 영리 법인 의료기관 설립 허용 및 외국 의료기관 유치와 민영 의료보험 확대 정책은 의료 공급자로 하여금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행태를 심화시키게 될 것이다.

「보건의료기본법」,「지역보건법」등에 보건의료 자원 관리와 관련된 조항을 포함하고 있으나 법조문으로는 존재하되 ‘바람직한 사회 상태를 이룩하려는 정책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 수단에 대해 권위 있는 정부 기관이 공식적으로 결정한 기본 방침’이라는 의미로서의 정책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실정에서 병상 과잉 공급 또는 과소 공급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며 서울의 대형 의료기관 중심으로의 의료 공급 체계 변화로 인한 서울 집중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병원의 전문화·대형화는 서비스 수준의 향상이라는 긍정적 측면보다는 고비용 저효율이라는 문제를 더 야기하게 될 것이다.

지역의 최우수 학생은 서울의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고 각 지역의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에 수도권에 연고를 둔 학생들의 입학이 늘어나고 있는데, 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졸업생 수보다 인턴, 1년차 레지던트 정원이 더 많은 기형적 구조와 서울의 일부 대형 병원들은 연계된 의과대학에서 배출하는 졸업생 수보다 훨씬 많은 전공의를 모집하고 있어 의사 인력의 서울 집중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또한 특정 전문과목은 지방 소재 대학 병원에는 지원자가 없고 서울 소재 대형 병원에 몰리고 있으며 이런 현상이 심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서울 집중 심화는 모든 의료 인력에 해당된다. 서울과 지방(시골)의 차별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차별로 인식하지 않아 개선의 노력이 없고, 의료 자원 관리를 규제의 시각에서 보는 분위기 속에 지방 의료의 붕괴라고 하면 과한 표현이랄 수 있으나 어쨌든 지방 의료의 위기 상황을 야기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병원 시장에서의 치열한 환자 유치 경쟁과 재벌 기업 병원이 주도하는 대형화·고급화·전문화로 인해 기존 대학 병원 및 종합 병원들도 영향을 받아 대형화·고급화·전문화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또한 특정 분야에 전문화된 소형 전문 병원과 전문 의원이 증가할 것이다.

의료 인력의 과도한 전문화와 많은 수의 전공의가 수련하고 있는 대형 병원의 전문화로 인한 중증 질병 위주의 수련 교육은 일차의료뿐만 아니라 이차 의료와 의료 전달 체계의 왜곡을 심화시킬 것이다.

또한 향후 환자들의 서울 의존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의료 이용의 지역화 개념을 퇴색시킬 것이다. 의료 민영화 정책은 보험 회사를 가지고 있는 재벌 기업 병원 등을 정점으로 한 의료 서비스 전달 체계가 만들어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 의료 공급 체계를 개혁하고자 하는 정부 정책은 기대하기 힘든 것으로 생각된다.

의료 민영화 정책 기조가 유지된다면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적정 의료를 개발, 생산하고 지리적·경제적·문화적 접근성을 높이며 필요할 때 적절한 장소에서 적절한 의료인에 의해 적정 진료를 제공하여 국민 건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의료 공급 체계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감신(경북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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