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시장 경쟁·무질서 ‘더 심화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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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시장 경쟁·무질서 ‘더 심화될 것’
  • 박형근
  • 승인 2010.01.29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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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책 10년 회고·10년 전망](8) 병원산업

 

급속 발전한 병원산업 ‘대형화·고급화·전문화’

지난 10년간 병원 산업은 눈부신 팽창을 지속해 왔다. 병원 수로 보면 2000년에 종합 병원 285개, 병원 581개 등 총 866개로 210,473개 병상에서 2009년 말에는 1,549개(요양 병원 제외) 병원에 총 292,723병상으로 늘어났다.

병원 수로 보면 1.78배, 병상 수로는 1.39배 증가한 규모다.

2009년에 단일 병원 수입이 1조 원을 넘어선 곳이 등장할 만큼 진료 수입 또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병원

산업 전체적인 규모의 성장보다 더 눈길을 끄는 대목은 그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환자 유치 경쟁과 그 중간 성적표라 할 수 있는 수도권 대형 병원과 소형 전문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이다.

재벌 기업의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아산병원과 삼성병원이 주도하는 대형화·전문화·고급화 경쟁으로 인해서 기존 병원들도 환자 유치와 생존을 위해 적극적인 투자와 투자 재원 확보를 위한 진료 수익 증대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병원 시설은 대형화·고급화되고 있고, 서비스 수준이 향상된 것은 긍정적 측면이라 할 수 있다.

또 한편에서는 대장 항문, 척추, 산부인과, 안과, 관절 수술 등 특정 분야에 전문화된 소형 전문 병원들이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미 해당 진료 분야에 대해서는 소위 'Big 4' 병원(삼성서울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편집자 주)보다 더 많은 전문의와 전문화된 진료 환경을 구축하고, 대형 병원보다 신속하고 세밀한 서비스를 기초로 Big 4 병원보다 더 많은 환자 수와 시술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전문 병원들이 수도권과 지방 대도시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해당 분야의 전문 인력이 계속해서 배출될 것이고 전문 병원 전 단계로서의 전문 의원들이 전국에 걸쳐 빠르게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중소병원은 ‘치명적 타격’

지난 10년간 이러한 변화를 토대로 암과 같은 중증 질환 환자들은 지명도가 높고 상대적으로 보다 나은 서비스 시스템을 구비한 Big 4로 대변되는 초대형 병원으로, 보다 경한 질환에 대해서는 전문 병원을 선호하는 경향이 굳어져 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중소 종합 병원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중증 질환은 Big 4 병원을 향하고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단과 전문 수술 환자는 전문 병원을 호하게 되면서, 수익성이 극도로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병원들은 요양 병원으로 전환하거나 단과 전문 병원으로 변신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생존이 어려울 지경으로까지 치달을 것으로 보이며 이미 이러한 변화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변화는 고급화·전문화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치열한 경쟁의 산물로, 병원 간 경쟁이 추동하고 있는 일종의 병원 산업 구조 조정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건강보험 하에서 ‘진료량 확대’로 승부

지난 10년간 병원 산업 내부에서 진행된 변화는 국민건강보험이 규정하는 비교적 고정된 진료비, 즉 가격에 큰 차이가 없는 경쟁 조건에서 누가 더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을 갖추었는가에 의해서 결정된 바 크다.

국민건강보험 제도 하에서는 차별화된 시설·장비·인력을 구비하고도, 즉 보다 많은 비용을 들이고도 가격 차별화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병원들이 진료량 확대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경쟁 구조의 성패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것이 범위의 경제(economy of scope) 이론이다.

아산병원, 삼성병원의 경우 대규모 투자로 인해 높은 비용 부담을 안고 있지만 병원의 명성을 쌓아 가면서 광범위한 환자 진료를 통해 원가를 분산시켜 수익을 극대화하는 범위의 경제 덕을 누리고 있다(reputational economy of scale).

또한 전문 병원의 경우에도 특정 진료 분야에 투자를 집중시켜 서비스 산출의 범위를 단순화하고 원가 분산을 최소화하는 대신, 전문 병원이라는 차별화된 명성을 기반으로 좁은 진료 범위에서 진료량을 극대화하여 보다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 구도에서 승자로 올라서기 위해 필요한 요건 두 가지는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 체계 구축 및 관리 역량 확보와 ▲자본 조달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영리법인 병원 허용 주장이 GDP 상승과 일자리 창출 등 거시 경제 운용 논리에 휘둘려 병원 서비스 선진화의 대명사처럼 지칭되고 있지만 병원 산업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보다 중요한 요소는 차별화된 서비스 제공 체계 구축 및 관리 역량 확보라 할 수 있다.

대규모 투자는 서비스 차별화의 필수 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리법인 병원이 허용될 경우 대규모 투자는 누구나 가능하지만 서비스 차별화에 필요한 노하우와 역량은 쉽게 얻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서비스 차별화의 핵심 ‘자본이 아니다’

그렇다면 서비스 차별화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신속 정확한 진단 및 치료, 의학적 지식과 숙련된 경험에 기초한 정직한 진료, 그리고 환자의 대리인으로서 진료의 연속적 과정(continuum of care)에서 정직하고 신뢰할 만한 안내자(guide)·조정자(coordinator)의 역할 수행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덧붙여 환자에 대한 보다 세밀한 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환자의 신뢰를 얻고 입소문을 통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서비스 수준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들 인력의 역량을 제고하고 필요한 새 역할을 부여하면서 환자에 대한 세밀한 관리와 접근을 통해 환자가 체감하는 서비스 질을 높여야 한다.

그동안 병원 산업 발전이 의사 중심의 진단 및 치료 기술, 시설·장비의 고급화·대형화 등에 집중되어 온 반면, 서비스 자체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적었기 때문에 이러한 노하우와 경험을 축적한 곳이 많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조건을 갖춘 경쟁자들이 하나둘씩 등장할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면 서열 자체가 바뀔 수 없다는 게 판단의 근거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병원 서비스에 대한 보상 수준의 상향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병원 시장에서 진행되는 시설·장비의 대형화·고급화 경쟁 수준을 볼 때 기존 수가 수준에서 병원들이 공격적 행보를 감행할 여력이 없다고만 할 수 없을 듯싶다. 동시에 기존 시장 지배적 병원들을 중심으로 독과점 체계를 구축해 신규 진입을 차단하거나 자신의 계열로 편입시키는 양상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시장에서 상당한 지명도를 확보한 병원들이 다수 존재하고 이들의 환자 점유율이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를 토대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필연적으로 뒤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영리법인 병원 허용, 병원 경영 지원 회사 허용,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 등 병원 시장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규제 개혁안들이 논의되고 있는데 이러한 제도 변화 여부와 그 추진 속도에 의해서 변화의 진폭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병원시장 경쟁·무질서 ‘더 심화될 것’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가 주저앉지 않는 이상 지금 병원 시장을 둘러싼 제반 현실을 고려할 때 병원 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고 파이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러한 조건에서는 병원 시장의 치열한 경쟁과 개별 병원들의 생존 논리가 한국 병원 산업 팽창의 핵심 동력 노릇을 할 것이다. 이미 병원 시장에 자본 투자에 대한 욕구와 갈망은 커질 대로 커져 있는 상태다.

상황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나아가 일련의 의료 민영화 조치들이 현실화된다면 현재의 건강보험 체계와 규제 시스템으로는 감당 불가능한 지경으로까지 쉽게 나아갈 것이고 자본의 힘에 의해 지배되는 병원 시장의 무질서는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한국 사회가 병원 서비스에 대해 부담 가능한 수준에서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기반으로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산업 구조를 만들기 위한 진지한 관심과 노력, 그리고 정교한 실천을 벌여 나가지 않는 한 이러한 예측이 빗나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개인적 감으로 볼 때 그리 많은 시간이 남아 있지도 않은 듯싶다.

박형근(제주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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