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 자원 ‘효율적 수급’ 관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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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의료 자원 ‘효율적 수급’ 관심 필요
  • 이태진
  • 승인 2010.02.0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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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책 10년 회고·10년 전망](12) 보건경제학 연구

 

인구의 고령화, 의료 기술의 발달 등으로 보건의료에 대한 수요가 끊임없이 증가하는 반면, 이를 충족하기 위한 보건의료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된 자원으로 늘어나는 건강에 대한 요구(need)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경제학은 ‘무엇을 얼마만큼 생산할 것인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누구에게 배분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학문이다. 이는 곧 희소한 자원의 합리적 배분을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배분적 효율성, 기술적 효율성 및 형평성에 대한 물음과 맥을 같이 한다.

지난 10년 ‘의료비 둘러싼 이슈’에 집중

2000년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으로 새 천 년의 문을 연 지 어느덧 10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민간 의료보험 확대, 보건의료 산업 선진화, 영리 법인 도입 등 수많은 이슈와 논쟁 속에서 보건경제학은 지난 10년간 과연 어떤 역할을 해 왔는가?

먼저 근거의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보건경제정책학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보건경제와 정책연구>에 2000년 이후 지난 10년간 게재된 논문들이 어떤 주제를 많이 다루어 왔는지를 살펴보았다.

총 120여 편의 논문 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건강보험을 비롯한 의료보장 및 지불 보상제도, 의료 수가, 국민의료비 등과 관련된 주제(45편)로 전체 논문의 약 37.2%를 차지하였다.

다음으로는 제약산업, 의료기기산업 및 보건산업 관련 주제(21편, 17.4%), 보건사업 및 의약품 등에 대한 경제성 평가(20편, 16.5%), 형평성(8편, 6.6%) 등의 주제들이 뒤를 잇는다.

다소 자의적인 분류임을 감안하더라도, 건강보험 제도와 의료비를 둘러싼 이슈, 보건 관련 산업에 대한 분석, 그리고 각종 경제성 평가가 보건경제학 관련 연구자들에게 주된 관심 분야였음을 시사하고 있다.

보건경제학 연구가 수행되는 토양은 정책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지닌다. 기존에 다루어진 연구 주제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보건경제학 연구가 정책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보건경제 관련 학술지에서 주로 다루어진 논문의 주제로 미루어 보건대 오늘날 우리가 향유하는 건강보험 제도에 보건경제학 연구가 어떤 형태로든 기여하였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 있다.

특히, 건강보험 통합이나 의약분업 등의 주요 정책은 시행 이전에는 연구가 충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사후에 이루어진 정책 평가 연구 등을 통해 해당 제도의 효과를 입증하거나 제도 개선을 위한 근거를 제공하는 데 기여하였을 것이다.

이에 비해 각종 경제성 평가는 정책 관련성이 좀 더 높은 연구 영역이다. 경제적 효율성이 정책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닐지 모르지만, 많은 정책 결정자들이 관심 있게 살펴보는 영역인 것만은 틀림없다.

신약의 건강보험 등재를 위해서 경제성 평가를 수행하도록 한 제도는 보건경제학 연구가 정책에 직접 영향을 미친 대표적 사례라 하겠다. 의약품 경제성 평가의 결과는 곧바로 보험 급여 결정 및 약가 결정을 위해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보건의료자원 수급’에 관심 가져야…

주제의 중요성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한 영역으로 ‘보건의료 자원 수급’을 들 수 있다. 지난 10년간 <보건경제와 정책연구>에 실린 논문 중 딱 1편만 의료 시설 분포 문제를 다루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 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보건의료 자원의 수급은 연구자들의 관심밖에 있었고, 이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자원의 수급이 완전히 시장 원리에 내팽겨져 있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연구자들의 관심이 다른 곳에 집중되어 있는 사이에 병원의 대형화와 고급화, 첨단 고가 장비의 과도한 사용, 의사 인력의 전문 과목 간 수급 불균형, 간호 인력의 지역 간 불균형 등 보건의료 자원 수급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시설, 장비, 인력 등의 양적인 적정 수준과 적정 분포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주문은 매우 공허한 느낌마저 들 정도다.

보건의료 자원 수급 문제는 지난 10년간 거의 외면당했던 주제인 만큼 향후 10년간 보건경제학이 수행해야 할 연구 중 가장 시급히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에 해당된다.

먼저, 민간 병원의 대형화와 고급화, 첨단 고가 장비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영향을 평가할 필요가 있고, 그로 인한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느 수준의 규제가 필요한지, 그 효과는 어떠할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의사 인력의 전문과목간 수급 불균형, 간호 인력의 지역간 불균형 문제를 인센티브 방식으로 풀 수 있을지, 만일 그렇다면 어떤 수준의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할지 등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과거 10년간 그러했듯이, 향후 10년간에도 경제성 평가 연구에 대한 관심은 계속 높을 것으로 생각된다. 연구자의 관심 여부와 무관하게 경제성 평가에 대한 정책적인 수요가 상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의약품이나 보건 사업에 대한 경제성 평가뿐만 아니라 의료 기기 등을 포함하는 보건의료 기술(health technology)과 다양한 보건 정책으로 경제성 평가의 대상이 확대되어 갈 것으로 사료된다.

이와 맞물려서 경제성 평가 방법 또한 지속적으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 결정의 근거 자료로서 경제성 평가의 유용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경제성 평가와 관련된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이러한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모델링 기법이나 통계적 기법이 개발되어 사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지속가능한 건강보험’ 관심 집중

건강보험 제도를 비롯한 의료보장 관련 주제는 향후 10년 동안도 연구자들의 많은 관심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지속 가능한 건강보험’은 향후 매우 중요한 연구 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앞으로는 지불 보상 제도의 변화를 통한 의료보장의 효율화를 꾀하는 방향으로 연구자들의 관심이 응집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국민들의 삶에 이미 깊숙이 자리 잡은 건강보험이 더욱 그 가치를 발하기 위해서는 보장 수준의 강화와 함께 그 정책의 효과가 소득 계층 간에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지, 적절한 재정적 보호를 하고 있는지 등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는데, 이 또한 보건경제학 연구가 상당한 역할을 해야 할 분야라 생각된다.

갈수록 늘어나는 건강에 대한 요구를 한정된 자원으로 충족하기 위해서 보건경제학 연구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단순한 연구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서 정책에 대한 사전 평가 및 사후 평가 등 다양한 경제학적 분석 기법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도 보건경제학 연구의 방법론적 개선이 많이 이루어지겠지만, 언제나 직관이 중요하다는 사실 또한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태진(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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