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평가’ 전담기구 등 획기적 투자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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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평가’ 전담기구 등 획기적 투자 필요
  • 김남순
  • 승인 2010.02.1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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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책 10년 회고·10년 전망](14) 의료의 질 개선활동

‘의료의 질 개선 활동, 10년을 회고하며 미래를 전망한다’는 취지의 글을 부탁받고 나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이다.

E. H. Carr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 혹은 과거와 미래의 대화”라고 했는데, 이 글의 주제는 그런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과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적 사건을 선택하고 해석하는 잣대지만, 그 내용을 분명히 정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아주 소박한 입장, 즉 의료의 질은 개선되어야 하며 이는 보건의료 관계자들이 어떤 입장에서 일을 하고 있든 간에 공동으로 지향하는 목표라는 관점에서 글을 쓰고자 한다.

의료의 질 개선! 어떤 활동이 전개됐나?

일반적으로 의료의 질은, 의료 서비스가 현재의 전문적 지식에 부합하고 개인과 집단에게 제공된 보건의료 서비스가 기대하는 건강상의 결과를 높일 가능성을 말한다.

지난 10년간 의료의 질 개선 활동 중에서 가장 많이 발전해 온 분야는 “질 평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질 평가와 관련된 대표적 사업으로 정부가 주관하는 의료기관 평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의 적정성 평가를 꼽을 수 있다.

의료기관 평가는 시범 평가 과정을 거친 후 의료법에 의해 2004년부터 시작됐다. 처음에는 대형 종합 병원만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점차 중소 병원까지 확대됐다.

의료기관 평가는 병원 신임 평가와 함께 의료기관이 양질의 의료를 제공하기 위한 조건, 즉 구조적 측면을 다루어 왔으며 신임적 성격을 갖고 있다.

2007년부터 폐렴과 수술 감염 예방 등과 같은 임상적 질 평가를 도입했으며 환자 안전에 대한 내용도 보강됐다. 최근에 의료기관 평가를 인증제로 전환하고 전담 기구를 설립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다.

심평원은 적정성 평가는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해 2001년부터 시작돼 왔으며 의료 서비스의 의학적 적정성과 비용적 측면을 다루고 있다.

외래 서비스에 대해서는 항생제, 주사제 등에 대한 약제 사용을 다루고 있으며, 입원 서비스에 대해서는 급성 심근 경색, 뇌졸중과 같은 주요 질환의 진료 과정과 결과를 다루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입원 서비스에 대해 질 평가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가감·지급 제도를 도입했다. 적정성 평가는 의료 서비스 과다 이용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일부 평가 항목은 다른 평가 제도와 중복되고 있다.

의료의 질 평가 활동에는 위에서 언급한 것 외에도 정부에서 시행하는 응급의료기관 평가, 종합전문요양기관 및 전문요양기관 평가, 병원협회에서 주관하는 병원 신임 평가 등이 있다.

한편,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에서는 각종 질 평가 제도에 대응하기 위해 질 관리 조직이 강화됐으며 활동도 늘어나고 있다.

의료의 질 개선 활동 문제점은?

지난 10년간 국내에서는 다양한 의료의 질 평가 제도가 도입됐으며, 질과 인센티브를 연계하는 제도까지 운영되고 있다. 외형적으로는 선진국에서 실행하고 있는 평가 제도가 대부분 도입됐으며 각 평가 제도는 초기 단계를 넘어서 진화 과정을 밟고 있다.

이렇듯 평가 제도가 발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몇 가지 고질적 문제는 잘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질 평가 제도는 일관된 정책과 체계적 계획에 따라 발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프라가 부실한 형편이다.

시범 평가를 포함하면 1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의료기관 평가도 아직까지 ‘전담기구 없이’ 수행되고 있으며 심평원의 적정성 평가도 사업 내용은 점점 확대되고 있지만 투입되는 인적·물적 자원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질 평가 내용의 타당성을 두고 종종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평가 사업에서는 선진국에서 개발된 지표나 제도를 도입했으며, 국내 R&D는 산발적으로 진행돼 왔다. 질 평가는 본래 복잡한 의료 서비스 내용을 다루는 성질 때문에 기초 연구와 진료 지침은 물론, 질 측정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야 한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러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는 빈곤했고 그 결과 평가의 타당성 혹은 국내 적합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곤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수술 감염 예방 평가의 임상 질 지표에 대한 논란을 들 수 있다.

질 측정에 대한 제반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은 평가 사업 내용이 질 개선의 필요성보다는 측정의 용이성에 의해 좌우되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이는 일차의료 서비스 평가를 만성질환 관리 측면이 아니라 의약품 과다 사용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질 평가 사업이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의료기관 내부에서 실제 질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돼야 한다.

대형 병원에서는 상호 경쟁이 심화되면서 질 개선 활동이 증가하고 있으며, 심지어 외국 질 평가 기구의 인증을 받은 병원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소 병원이나 의원에서는 이러한 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향후 전망은 어떠할 것인가?

주지하다시피 인구의 노령화와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의료비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IT 기술의 발달로 의료와 건강 정보에 대한 접근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으며 의료 서비스 질에 대한 국민의 요구 수준도 올라가고 있다.

또한 의료 시장에서 경쟁의 심화 혹은 외국 환자 유치 등의 이유로 의료기관의 질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의료의 질 관리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점점 더 증가할 것이다.

의료의 질 관리 영역에서 중요한 변화는 질 평가와 지불 제도가 연계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Pay for performance(P4P) 혹은 가치 기반 구매(value-based purchasing)로 불리는 이 제도는 의료의 질을 측정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효율성을 증진하는 것이 목적이다.

가치 기반 구매와 같은 제도가 더 발전한다면 병원 감염과 같은 문제로 파생되는 의료 서비스에 대한 급여가 제한될 수도 있다. 국내에서는 심평원의 적정성 평가가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다.

의료의 질 평가가 정보 제공만이 아니라 지불 제도와 연계된다는 것은 평가 내용의 과학성과 타당성이 더욱 더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질 평가 및 관련 제도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서는 R&D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함께 질 측정 시스템을 발전시켜야 한다. 하지만 특별한 외적 요인이 없다면 평가 콘텐츠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되리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한 가지 긍정적 요인이 있다면 최근에 근거 중심 의학적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점인데 간접적으로나마 의료의 질에 대한 저변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일차의료와 환자 안전은 매우 중요한 분야지만 질 관리 활동이 전개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전제가 돼야 한다. 영국에서는 일차의료 서비스에 대해서 질 평가 시스템과 함께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여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일차의료 서비스는 개원 의사의 문지기 역할이 유명무실한 상황이므로 질 관리 제도만으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환자 안전도 병원 감염이나 낙상, 욕창과 같은 문제를 모니터링하고 원인 분석을 통해 전체 시스템을 고쳐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외국과 같이 “환자 안전 질 문제 모니터링”에 대한 제도적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공중 보건의 문제로 다루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의료의 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가 높아지면서 의료기관에서 의료의 질 관리 활동도 증가하고 있다.

다만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중소 병원이나 개원가의 질 관리 활동을 장려하는 정책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소비자에게 평가 결과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비자와 함께 양질의 의료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사업이 될 것이다.   

요약하자면, 앞으로 의료의 질 개선 활동 분야가 지난 10년보다 더 중요한 정책 의제로 부상할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의 대처 방식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거 중심 의학이 확대되는 추세와 함께 일선에서 성실히 일하고 있는 보건의료인의 노력이 뒷받침되어, 적어도 우리의 질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남순(동국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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