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2]배우 김태희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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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2]배우 김태희가 예사롭지 않은 이유
  • 전민용
  • 승인 2010.03.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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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서울시립아동병원에서 의국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신생아 병동에 가는 길에 어떤 남자가 병실에다 주머니 하나를 놓고 사라지는 걸 보았다. 한 달에도 몇 번씩 경험하는 일이라 주머니를 열어보니 예상대로 피투성이 갓난아이가 있었다. 탯줄과 태반까지 그대로 단 채로...

체온도 낮고 호흡도 불안정한 아이를 응급처치를 해서 살려낸 후 규정대로 부모를 찾기 위한 기간으로 2주간 이름도 없이 병원에 대기시켰다.

2주가 지난 후 수속을 하면서 의사나 간호사들이 이름을 지어주는데 워낙 바쁘고 일이 많다보니, 통상 병원장 성에 가나다 순으로 이름 첫 자를 붙이고 여자는 ‘순’, 남자는 ‘석’을 붙이는 식으로 지어주곤 했다. 그런데 이 아이, 태어나 엄마 품에 한 번도 안겨보지 못한 아이에게 이름만은 제대로 지어주고 싶어서 ‘태를 달고 온 여자아이’라는 뜻으로 ‘태희’라고 붙여 주었다.

태희는 건강하게 잘 자라는 듯 보였다. 그런데 4개월 무렵 피부색이 푸르스름한 게 이상해서 검사를 해보니 선천성 심장 기형이었다. 국내에서는 여러 여건상 수술이 불가능해서 홀트로 옮기고 수술을 해 줄 수 있는 양부모를 찾았다.

다행히 미국인 양부모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고, 보통은 홀트아동복지회가 호송을 맡는데, 태희는 너무 어리고 심장병까지 있어 직접 뉴욕까지 데리고 갔다. 비행 중 태희의 상태가 급작스럽게 나빠지기 시작했고 울다 지쳐 잠들다 깨다를 반복했다.

지옥같은 비행이 끝나고 대기 중인 구급차에 태희를 실어 보냈다. 이후 태희는 심장수술을 받았지만 예후가 좋지 않았고 결국 한 달 뒤에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에도 다른 아이의 사망진단서를 쓰고 있었다. 이 아이들의 이토록 짧은 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태희 이후에도 엄마의 태반을 단 채 병원으로 실려오는 핏덩이들에게는 ‘태희’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제발 좋은 양부모 만나 불행한 출생을 보상받기를 바라면서....  탤런트 김태희를 볼 때마다 그 많은 ‘태희’들의 안부를 대신 전해주는 듯 해서 그 어여쁜 미소를 보고 또 본다."

▲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조병국 저, 삼성출판사
의사치곤 박봉의 자리라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정년을 15년이나 넘겨가며 75세 나이까지 진료에서 손을 놓지 못한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장 조병국씨(여). 그녀가 50년 세월 동안 울고 웃고 가슴 저리고 감동했던 순간들을 추려서 엮어낸 사연 중 "그 시절 태희들을 추억하다"를 요약한 내용이다.    

한 편 한 편이 다 드라마요 어찌 이런 일이 있을까 싶은 사연들로 가득하다. 다 죽어가던 아이가 곶감 달인 물을 먹고 기적같이 살아난 이야기, 노래할 때만은 너무도 당당한 정신지체아 현균이 이야기, 의사가 된 뇌성마비 영수 이야기, 동반 자살한 엄마를 두고 두 다리가 절단된 채 살아난 두 살배기 아이가 당당하게 커가는 이야기, 재래식화장실 변기통에 버려진 아이 이야기, 입양아들이 다 커서 친부모를 찾아나서는 이야기 등등.

입양제도 문제, 입양에 대한 편견 문제, 아동복지 문제 등을 논하기 전에 인간을 있는 그대로의 한 인간으로서 볼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이야기들이다. 비참한 타인의 얼굴과 호소에 응답할 수밖에 없고 응답해야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많은 사람들, 봉사자들, 협력자들이 있다. 조원장과 이런 분들이 있기에 그래도 우리 사회가 이렇게 유지되고 있구나하는 고마운 생각이 절로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울어본 경험은 처음이다. 아예 한 손에 휴지를 든 채로 책을 읽었다. 삶의 진실만큼 감동적인 이야기는 없다. 모든 의료인과 환자들과 잠재적 환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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