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미국 견문록] 일하는 청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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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의 미국 견문록] 일하는 청소년들
  • 이상윤
  • 승인 200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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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에서는 청소년들이 소위 말하는 ‘아르바이트’를 많이 한다. 제이콥은 12살때부터 피자가게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14살이하의 미성년자가 고용되어 일을 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제이콥에 따르면 자기의 경우는 당시 이혼하기 전 어머니가 그 피자가게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14살 이전에 일을 시작하는 것이 그리 드문 일은 아닌 것 같다. 줄리라는 40대의 어시스트도 자기딸이 열한살인가 열두살인데 베이비시터로 첫번째 일을 하게 되었다면서 마치 딸이 첫 사회진출이라도 하는 양 흥분반 자랑반 이야기 한 적이 있다.

▲ 제이콥(왼쪽)은 12살때부터 피자가게에서 일했다
제이콥에 따르면 학생들이 일을 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일부 여유있는 집의 부모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미국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필수적인 부분만 지출하기 때문에 나머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부분은 자기가 알아서 벌어 써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많은 학생들은 차를 사거나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한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뉴욕같은 특별한 도시를 제외하고는 대중교통 수단이 거의 없다시피한 미국에서 차는 활동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 학생들이 등하교는 스쿨 버스를 이용하고 가끔씩 있는 특별한 경우는 부모님이 태워주는 차를 이용해 볼일을 본다 해도 자기 차가 없으면 그 외의 활동은 무지하게 제한된다. 예를 들어 일을 하러 다닐 수도 없고 친구들과 같이 놀러 갈수도 없다.

그래서 돈이 있는 집에서는 차도 사주고 차 유지비도 대주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기가 벌어 차를 사든지 아니면 부모님이 차는 사주더라도 유지비는 자기가 벌어서 댄다.

로리라는 오피스 매니저는 아이가 셋인데 20살인 첫째 딸래미가 고등학교때는 차를 사주었지만 지금 15살인 둘째는 차를 사줄 형편이 안된다고 한다. 그대신 둘째가 자기가 돈벌어서 할부금 낼 수 있으면 로리가 자기 이름은 빌려줄 거라고 한다. 왜냐하면 신용(credit)이 전혀없는 자기 아들이 할부로 차를 사기도 어렵거니와 사더라도 이자가 비싸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은 16살 무렵부터 운전면허를 받을 수 있는데 처음 면허를 딴 고등학생들은 자동차 보험료가 성인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를 타고 즐기기 위해서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학생들은 사고 싶은 옷을 사거나 기타 용돈을 쓰기 위해 일을 하는데 또 어떤 학생들은 놀랍게도 약물(drug)을 하기 위해 일을 한다고 한다. 제이콥이 다니던 학교는 백인지역에 있는 학교로 상대적으로 괜찮은 지역의 공립고등학교였다는데(학생들중 거의 7-80프로가 차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중 95프로는 부모님이 차를 사준 것이라 한다. 내가 흑인들 동네 고등학교는 어떠냐고 물었더니 아마 거의 제로퍼센트 일 거라고 한다) 자기학교에서 한번이라도 약물을 시도해 본 학생들이 자기가 보기에는 8-90퍼센트이고, 상습적으로 하는 학생들이 50프로는 족히 될거라 한다.

몇퍼센트라는 숫자는 제이콥의 주관적인 느낌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통계적인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날 근무했던 오피스의 다른 스탭들에게도 물어봤다. 진짜로 고등학교에서 약물을 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50프로가 넘는다고 생각하는지... 그랬더니 딱 한명만 빼고 다들 그 정도 될 거라고 한다.

물론 미국의 모든 학교가 다 이렇게 황폐해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 많은 공립학교가 비슷한 사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아이들을 아예 학교에 안보내는 부모도 있다. 소위 홈 스쿨링을 하는 것이다.

먼저 얘기했던 멜라니의 두 딸이 그런 경우다. 고등학교를 다닐 나이인데 멜라니는 자기딸들을 공립학교에 보내기는 싫고, 그렇다고 사립학교에 보낼 돈은 없고 해서 홈 스쿨링을 시키고 있다. 이런 부모들을 위해 지방정부에서는 따로 예산을 편성해 지원하고 있다. 교과과정도 나름대로 있고 컴퓨터 통신을 이용해 수업도 한다.

홈스쿨링을 허용한다는 것은 정부가 공교육의 실패를 인정한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렇다고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홈스쿨이라면 기본적으로 자율학습인데 그거 다 알다시피 쉬운 일이 아니지 않는가. 더구나 부모가 끼고 앉아서 감독할 형편도 안된다면 말이다.

어쨌든 미국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는 의미있는 교육적 관점의 산물이라기보다는 미국 학부모들의 교육철학 부재와 생활고를 반영한 청소년들의 자구책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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