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와 진보, 의료민영화와 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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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와 진보, 의료민영화와 건강보험
  • 우석균
  • 승인 2010.07.1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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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

요즘 복지라는 낱말이 화두다.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기획재정위로 자리를 옮긴 박근혜 의원은 복지화와 국민통합이라는 말로 자신의 하반기 국회활동을 시작했다. 박근혜 의원의 복지국가 주장은 이미 오래되었다. 작년 박근혜 의원은 박정희 사망 30주기 추도사에서 “우리의 궁극적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라고 말하면서 “아버지의 꿈”을 언급한 바 있다. “박정희가 건강보험의 아버지”라는 말도 들려온다.

정동영 의원도 뒤지지 않는다. 올해 3월 15일 정동영씨는 복지국가 소사이어티가 주최한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 출판기념회”에 첫 번째 연사로 나와 복지국가를 주창한 바 있고 이번 지방선거를 두고 “역동적 복지국가를 향한 민심의 표출”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양당의 가장 우력한 차기 대선주자들이 벌써부터 복지국가 담론의 선점을 놓고 경쟁중이다.

진보의 가장 유력한 근거이자 주장이었던 복지라는 아젠다를 보수정치인들이 가져가고 있는 양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진영은 단지 그냥 복지가 아니라 ‘진보적’인 복지담론이 무엇이어야 할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복지 패러다임의 변화…주체는 누군가?

최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둘러싼 논의들은 이러한 진보적인 복지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하나로 시민회의측(이하 시민회의)은 복지운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시민들이 보험료를 11,000원 인상하는 것으로 기존 운동의 한계를 뛰어넘자는 운동을 제창했다. 그들은 정부와 기업에 돈을 더 내라는 “당위적인” 요구가 아니라 국민들이 더 내는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보건의료부문의 운동은 한국사회의 부문운동 중 그나마 가장 성과가 있었던 분야다. 진보정당의 무상의료운동부터 “암부터 무상의료”운동이나 의료민영화 반대운동 등이 그러한 예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60% 정도에 머물고 있는 것을 운동의 실패나 전술의 실패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건강보험 통합요구가 이루어지기까지 10년이 넘게 걸렸다.

보험료를 더 내자는 주장은 ‘정부의 책임’ 문제를 ‘국민의 보험료 인상 수용여부’의 문제로 치환한다. 정부와 기업의 책임에서 국민의 책임으로 문제가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더 내자’는 것이 적극적이라든가 주체적이라는 주장은 이러한 점에서 동의하기 힘들다. 반대로 정부에 대한 요구운동이 시민들에 대한 ‘계몽운동’으로 바뀔 뿐이며 이로서는 강력한 사회운동도, ‘풀뿌리운동’도 만들어 낼 수 없다.

오히려 보험료 부담 때문에 보장성 강화가 안된다는 정부의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우리가 먼저 수용하는 모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하반기에 재정긴축이 진행되기 시작하면 공공요금인상이나 임금긴축, 금리인상 등이 겹치는 상황에서 보험료 40% 인상 주장은 광범위한 동의를 끌어내기도 어렵다.

병원자본 통제 안하면 결국 영리병원으로

또 하나 지출구조에 대한 문제다. 시민회의 측의 11,000원 더내기 운동은 지출구조 개편을 ‘추후과제’로 둔다. 병원자본과 싸우는 일까지 한꺼번에 하는 것은 어렵다라는 판단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재 매년 13%씩 뛰는 의료비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낭비적 지출구조에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당장 전문병원의 폭발적 증가와 이들의 수술이나 검사내용을 보면 과잉진료는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수준이다. 척추수술이 일본의 7배정도이니 우리나라의 과잉진료가 어느정도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의료비증가의 기울기를 줄이지 않으면 건강보험재정을 늘려도 이를 따라갈 수 없다.

더욱이 병원자본을 통제하지 않으면 병원들의 출구는 결국 영리병원화이다. 의료민영화 정책의 현재 핵심 사안인 영리병원 허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병원의 지출구조 통제는 꼭 필요하다. 11,000원 더내기 운동은 현실에서 이미 의료민영화 저지운동의 분열을 초래하고 있는데 이는 병원자본에 대한 통제를 추후과제로 밀어놓는 순간 피할 수 없는 일로 보인다. 물론 병원자본을 통제하지 않으면 동네의원들의 몫이 점점 더 줄어드는 현실도 막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건강연대의 상임위원들은 7월 10일 “100만원의 개혁”운동을 제안했다. 아무리 큰 병에 걸려도 100만원 이상은 정부가 내주는 “의료비 상한제 100만원”과 “모든 의료비를 건강보험으로”라는 것을 목표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운동을 함께 하자는 제안이 그것이다.

이 제안에는 건강보험재정확충의 방법으로 사회보장세를 신설하여 1000대 기업의 매출액(2009년 약 1800조원)의 0.5% 부과(약 9조원) 및 의약품광고비의 10%, 보험료의 1% 등을 부과하고 건강위해세(담배 및 35도 이상의 주류)를 더하는 것이다. 이에 더해 국고지원예산을 이미 보건사회연구원에서 제안한 바 있듯이 노인급여비의 50%를 국가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바꾸어 늘리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기업과 정부의 부담 강화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다.

또한 지출구조의 개편도 총액예산제 및 약제비 적정화방안, 주치의등록제 등을 보장성 강화와 함께 시행하는 것이 “100만원의 개혁” 운동이다. 이와 동시에 의료민영화 저지를 하반기에 가장 중요한 과제로 보고 이에 매진하자는 것이 제안의 내용이다. 
 
의료민영화 큰 싸움 위해 힘 모을 때

정치는 공백을 싫어한다고 했던가. 촛불운동 이후 진보진영은 민주당에 대한 환멸을 느낀 대중들을 포괄할 정치적 구심체를 만들지 못했다. 결국 6.2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고백했듯이 “민주당이 이뻐서 찍어준 것이 아니”지만 민주당을 찍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제 이 시대의 진보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복지담론은 그 핵심적 영역의 하나이다. 나는 지금이 원칙을 포기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재정부담이 아니라 보장성 강화를 우선에 두는 것, 재정부담을 정부와 기업에게 더 지라고 요구하는 것, 병원자본과 제약자본, 그리고 민영보험에 대한 직접적 통제라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건강보험이나 보건의료부문에서의 진보적 원칙을 고수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전세계적 경제위기속에서 은행과 건설회사에 수십조원을 퍼주고 부자감세를 시행하며 그 부담을 국민들에게 떠 넘기는 지금 시기에 이는 포기해서는 안되는 원칙으로 보인다. 지금은 원칙을 버릴 때가아니며 또 그 원칙을 버려서 얻을 것도 없다.

이명박 정부는 벌써부터 노골적인 의료민영화론자를 보건복지비서관에 임명했고 장관으로 거론되는 인사들도 하나같이 의료산업화론자들이다. 의료민영화 저지의 큰 싸움이 우리 앞에 있다. 의료민영화 저지운동과 “100만원의 개혁” 운동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우석균(건치신문 논설위원, 보건연합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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