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법, 보수주의, 공정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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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 보수주의, 공정한 사회
  • 김용진
  • 승인 2010.08.30 10: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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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김용진 논설위원

 

부끄러운 고백을 한가지 하자면, 3달전쯤 횡단보도를 보행으로 무단으로 건너다가 경찰에게 적발되어 '딱지'를 받았다. 한적한 사거리의 횡단보도였고 다른 사람들도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너가는 것을 불과 몇분전에 목격했기에 전혀 '범법'이라는 생각도 못하고 무심코 건너다가 마침 경찰차를 타고 지나던 경찰에게 적발되어 '딱지'를 끊은 것이다. 자동차운전 초보시절에는 잘몰라서 신호위반등의 딱지를 여러차례 받은 적이 있었지만, 보행자로서 딱지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참으로 부끄러웠다.  아이들에게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등을 보고 건너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무런 죄의식이나 잘못이라는 생각도 없이 습관적으로 '남들도 건너는데 뭐'라고 하면서 건넜었다는 사실이. 그 뒤로는 아파트내에서도 꼭 횡단보도로 건너고 아무리 한적하고 작은 횡단보도라도 신호가 있으면 신호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부끄럽게도 100퍼센트 언제나 지킨 것은 아니다.)

 

최근 진행된 인사청문회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결정적인 흠결을 가진 사람이 대부분이다. 아예 '위장전입'은 범법행위에 포함되지 않고 다만 도덕적으로 '죄송'해야할 일일 정도로 하찮은 것이 되어 버렸다. 지금도 위장전입으로 처벌받고 있고 처벌받은 사람에 대한 법의 형평성 훼손에 대해서는 법을 수호해야할 경찰과 검찰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하긴 경찰총장 후보자가 위장전입을 했으니 만약에 그가 임명된다면 앞으로 위장전입에 대한 처벌은 못하지 않을까?)  부동산 투기와 세금탈루, 공금에 대한 사용(私用) 등 문제점들이 너무 많아서 관련 기사들을 보기도 싫고 봐도 누구에 대한 이야기인지 혼동이 올 정도로 대부분 비슷한 수준의 문제들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문제는 여당에서 이들 대부분이 '결정적 하자'가 없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당 입장에서야 이들이 원할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겠지만, 그런 하자를 안고서 정부 고위관리로서 업무를 본다면, 그리고 그들이 국민들에게 '준법'을 호소한다면 과연 국민들이 흔쾌히 그들을 따라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한번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이 저지른  이러저러한 위법과 흠결들이 사회적으로 '관용'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위장전입, 위장취업, 땅투기, 쪽방투기, 다운계약서, 자녀의 한국국적 포기, 탈세, 공금의 유용등에 대한 '위법'이거나 최소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위'이라는 의식이 사회에서 사라지고, '남들도 다 하고 있는', '걸리지만 않으면 괜찮은', 그리고 혹시 문제가 되어도 '권력이 뒤에서 봐주면 괜찮은' 그런 행위가 되며 그런 짓을 하지 않은 사람들만 바보취급받는 사태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시험감독 없이 학생들끼리 양심을 걸고 시험을 치게 했는데, 대부분의 학생이 부정행위를 하고 결국 양심을 지킨 학생만 손해보는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횡단보도를 무단횡단한 나는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다 위반하는데 나만 단속한다면서 억울해 하고 권력의 끈을 찾아 부당함을 호소해야했던 것인가?

 

보수주의의 핵심 원리에 대해 미국의 사회학자인 로버트 니스벳은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를 지향하고 경제적으로는 재산권 보장을 확립하고 사회적으로는 법치 구현을 추구한다'라고 정리했는데, 과연 이번 후보자들과 같이 명확한 위법행위를 한 사람들이 그에 대한 반성이나 처벌 조차 없이 오히려 그 법을 집행해야할 위치에 임명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용인한다면 과연 그것은 보수주의가 맞는가?

 비록 그 위법한 사실에 대해서는 처벌은 한다고 하더라도 '위법'에 대해서 용서를 하거나 너그러울 때가 있다. 그 '법'이 자신의 양심과 신념과 어긋난다고 여길 때, 부모나 가족의 위급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하여 어쩔수 없이 위법을 저질렀을 때, 그 '법'이 현실과 맞지 않아 도저히 그 법을 지킬 수 없을 때 등이 그러할 것이다. 

앞서 후보자들의 위법사실들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는 것 같다. 대부분의 위법 사실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위법이었을 뿐이다. 보수주의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위법에 대해서는 원리상 더 엄격하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의 보수주의자들 중에 이번 청문회의 후보자들에 대해서 제대로 질타를 가하는 제대로된 보수주의자를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보지 못했다.

 

지난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다음의 질타를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부자들은 개인적인 부정뿐만이 아니라 공공의 입법권까지 동원하여 가난한 사람들의 터무니없이 적은 소득마저  하루하루 깍아버리고 있습니다.  사회에 가장 많은 공헌을 한 사람들에게 쥐꼬리만한 보답을 하고 있는 기존의 불공정한 제도로도 모자라다는 듯이 그 불공평을 더욱 악화시키고, 더 나아가 그러한 불공정을 법을 동원하여 정의라고 표현하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500년 전인 16세기 초반의 유럽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만들려고 한다는 '공정한 사회'가 토마스 모어가 비판한 그런 사회, 불공정하고 불공평하지만,  공공의 입법권을 동원하여 그러한 것을 '정의'라고 우기는 그런 사회가 아니길 바란다.

 

(추신)

이 논설을 쓴 다음날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장관후보자등 3명이 자진사퇴를 하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권에서 이들의 임명을 강행했다가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 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국정운영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러운 것은 이들이 자신의 허물에 대한 진솔한 반성의 모습은 청문회 내내, 그리고 사퇴를 하면서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며, 정부 여당도 이들의 허물을 알면서도 임명을 하려고 했던 자신들의 자세에 대해서 반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 사퇴를 하지 않은 문제인사들의 임명철회나 자신사퇴가 이어지길 바라며, 새로이 임명하려는 인사의 면면을 보아야 정부여당이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또다시 '립서비스'만 하는 것인지 국민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김용진(본지 논설위원,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김용진 전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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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황 2010-08-30 13:23:20
사퇴하는 모습 저도 보았습니다

정말 반성 안하더군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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