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19]산티아고 순례기, 기생수,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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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의 북카페 -19]산티아고 순례기, 기생수, 그리고…
  • 전민용
  • 승인 2010.09.24 14:40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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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카페를 연재하면서 서평을 쓴다는 생각보다 같이 읽었으면 하는 책을 권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 북카페를 통해 소개한 책을 직접 구해 읽었으면 싶었고, 댓글이나 다른 자리를 통해 책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읽은 책들 중에는 일반적으로 권하기에 주저 되는 책들도 많았고, 이번에 그 중 그냥 넘어가기엔 아쉬운 몇 권을 소개하기로 했다. 취향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므로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는 심정이다. 3개 씩 두 번에 걸쳐 소개한다.   

1.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서영은, 문학동네

▲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서영은, 문학동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는 일부 신앙심 깊은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평생 한번은 가봐야 할 고행길로 여겨지는 듯하다. 야곱이 전도여행을 갔던 길이고 약 40일 동안을 순전히 걸어서 이동 하는데 가는 곳 마다 순례자를 위한 무료 숙박지(알바르게)가 있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순례를 할 수 있게 해준다. 관련 여행서도 제법 나와 있는 것 같다.

서영은은 내가 대학 입학하고 다음 해 이상문학상을 받아서 기억에 남아 있다. 꽤 오랫동안 내 책장에 그녀의 ‘먼 그대’를 표지로 한 83년 이상문학상 모음집이 따라 다녔다.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스페인의 이룬에서 산디에고까지 순례자를 위한 표식인 노란 화살표를 따라 걸어간 이야기이다. 이 책의 특징은 일생에 대한 자기 고백이고 신앙고백이라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는 자기변명 이라는 생각도 든다. 상당히 솔직하게 상처 주고 상처 받은 기억들을 드러낸다. 작고한 남편 김동리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다. 같이 동행하는 제자에 대한 묘사도 거의 예의(!)를 갖추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뿜어낸다.

아마도 순례를 마칠 무렵 인간적으로나 영적으로 더 성숙해진 자신의 모습과의 대비 효과를 노린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를 흐르는 지나친 자기중심적 신앙고백은 비그리스도교인에게는 다소 불편함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고 본다.

▲ 기생수, Hitoshi Iwaaki, 학산문화사
2. 기생수, Hitoshi Iwaaki, 학산문화사

인간의 몸에 기생해서 생존하고 인간을 죽여 먹고 사는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나타난다. 기생수이다. 일단 인간의 몸을 장악하면 인간의 뇌를 완전히 지배해 버리기 때문에 원래 인간의 인간성은 사라져 버린다. 이 생명체는 몸을 거의 무한대로 변신할 수가 있고, 눈에 안 보일 정도로 빠르다. 칼로 변신하면 순식간에 인간의 목을 날려 버린다.

이 만화의 중심 이야기는 기생수의 폭력성과 잔인성을 능가하는 종이 바로 인간이라는 문제의식이다. 약 6천5백만 년 전에 공룡 등 생물의 약 75%가 갑자기 사라졌다. 원인에 대해 분분하지만 운석 충돌설이 대표적인 설명이다. 그런데 그 때의 대규모 멸종을 능가할 정도로 생물 종이 사라지고 있다. 인간 때문이다. 약 1만 2천년 전 신대륙에 인간이 도착 한 후로 남미에서는 80%, 북미에서는 70%의 대형 포유동물이 멸종했다.

기생수 하나가 신이치의 몸으로 침입하다가 뇌를 장악하지 못하고 오른손만을 지배하게 된다. 기생수는 생존하기 위해 신이치를 돕다가 점차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끝내는 정이 든다. 먹고 먹히는 완전히 적대적이라고 볼 수 있는 전혀 다른 두 종 사이에 피어나는 공존의 이야기가 대단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려진다. 국내외로 유명한 영화감독이 영화화를 위해 판권을 샀다는 정보가 있다. 애장판으로 250쪽 짜리 만화책이 8권이라 다 사서 읽기에는 돈이 좀 든다. 알아서 하시도록.
 
3. 자연스러운 건축, 쿠마 켄고, 안그라픽스

20세기는 콘크리트의 시대이다. 콘크리트가 도시를 만들고, 국가를 만들고, 문화를 만들었다. 나무로 형틀을 짜고 철근, 모래, 자갈, 시멘트를 배합하면 장소를 불문하고 콘크리트가 완성 된다. 콘크리트는 장소적 보편성 뿐 아니라 형태의 자유도 가지고 있다. 형틀만 잘 만들어 집어넣으면 그 뿐이다. 거기다 콘크리트는 표층의 자유도 허락한다. 나무, 돌, 알루미늄 등 무엇을 붙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콘크리트의 장점 속에 숨어 있는 다양성의 파괴에 주목한다. 다양한 장소, 다양한 기술, 다양한 건축 재료가 콘크리트라는 단일성에 의해 파괴되어 자연의 다양성, 건축의 다양성이 상실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또한 속과 겉이 다른 콘크리트의 탁월한 화장술에도 불편해 한다.

▲ 자연스러운 건축, 쿠마 켄고, 안그라픽스
저자는 콘크리트라는 편리한 소재를 버리고 대신 자연과 장소에서 건축 소재를 구하는 힘겨운 도전에 나선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설계사무소 대표가 아니라 건축자재 회사의 대표가 된 것처럼 보인다.

장소에 맞는 설계를 구상하고 그 장소에 맞는 건축 재료를 가능한 현장 주변에서 찾는다. 자연과 건축물과 건축소재가 자연스럽게 조화 되는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 한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건축소재를 그냥 쓰는 것은 아니다.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이리저리 구멍을 뚫거나, 격자를 만들거나, 철을 결합시키거나 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구사 한다.

저자는 건축을 하나의 놀이로 생각하는 것 같다.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다보면 주어진 여러 가지 제약은 어느새 새로운 창조적 상상력의 조건이 되어 버린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건축물을 직접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바람과 햇빛 같은 자연과 장소와 건축을 하나로 연결시키려는 저자의 지극한 노력과 정성이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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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민용 2010-10-02 11:50:55
자기 어머니를 죽이고 어머니 몸을 장악한 기생수임을 알면서도 외모가 어머니로 보인다는 것 때문에 싸우는 것을 주저하는 인간의 시각 중심적인 면이나 아기를 가진 기생수의 심리적인 변화, 때론 너무 안타까울 정도로 단숨에 죽어 넘어가는 단호한 살해 방식, 빅뱅의 멤버들이 찍은 사진에서도 이 만화책 들고 있는 것이 보이더군요. 판권을 사려한 우리나라 감독은 박찬욱 감독인데 외국 감독은 잊어 버렸네요.

김기현 2010-10-01 17:36:45
만화책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있는 걸작이죠.....

인간의 여러 행동들의 본성을 이기적으로 볼것이냐 이타적으로 볼 것이냐에 대한 오래된 논쟁을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시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감사....

전민용 2010-09-29 01:02:28
상황과 조건에 따라 뭐든지 쓸 수 있다는 말이죠. 자연 그대로의 소재가 갖는 약점과 단점을 정확히 보지 않고 실용적인 건축물을 만들 수 없다는 현실주의자이기도 하지요.

전민용 2010-09-29 00:59:42
를 쿠마 켄고가 전혀 사용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예를들면 그 지방에 있는 대나무를 이용하거나 흙벽돌을 이용해서 건축을 하려 하는데 이런 것들이 강도도 약하고 일본 건축법상 허가를 얻기 불가능할 경우에 대나무 안을 콘크리트로 채우거나 콘크리트 블록을 뼈대로 삼아 겉에 흙벽돌을 쌓고 이것을 철골로 연결하는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건축은 원리주의일 수 없다는 말을 언급합니다.

전민용 2010-09-28 15:05:25
맥락 의존에서 비껴날 수 있는 것이 있을까요? 콘크리트 역시 1/n 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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