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문어와 수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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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문어와 수족관
  • 한명숙
  • 승인 2004.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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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바다 출신입니다.
깊은 바다 속이 저의 고향이지요.

빨리 걷거나 헤엄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법 힘 좀 쓴다는 무리에 속했지요. 운명의 바늘과 무관하게 욕망은 늘 아무일 없다는 듯 일어나고 사라지듯 저 역시 욕망의 일에만 충실했는데, 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고향을 떠나 이제는 육지에서 당신의 차가운 피부를 부비는 일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랫도리를 보이며 살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처음에는 난감했지만 포로의 운명이란 다 그러하듯 얼마나 빨리 익숙해지느냐가 생과 사를 갈림 하더군요. 처음에는 당신의 대책 없는 투명함이 뻔뻔스럽고 얄미웠는데, 당신조차 없었다면 저의 빨판이 쉴 곳도 없겠더라고요.

누군가를 만나 싸울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처지가 어찌 나 하나 뿐이겠습니까만은 하루 종일 이렇게 열심히 부비어도 당신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음을 알았을 때참 난감했습니다.

이제 제 몸의 시계는 느리게, 느리게 가고 있습니다. 가게 주인의 손이 당신의 내장을 휘저으며 나타날 때는 당신의 벽을 필사적으로 붙잡아 보겠지만, 당신은 부질없어 하며 마지막 ‘툭’ 소리와 함께 나를 저 사지(死地)로 내주겠지요. 그렇다고 당신이 인간들의 저 헛된 싸움질로 깨어지기라도 하면 더 비참해 지겠지만요.

아무리 힘주어 빨아도 아무것도 내주지 않는 당신의 무심함이 제 서글픈 보호벽 이더군요.

인간들은 내가 움직이는지 아닌지 살피는 일에 열심입니다. 당신의 몸을 더듬고 한걸음 한 걸음 움직이기라도 하면, 양껏 웃음을 베어물고 제 빨판을 보려 더 가까이 다가오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들은 당신 너머에 있는, 당신의 투명함에 작은 덕을 입고 있는 , 내가 죽지 않는 한 감히 내 몸에 손 댈 수 없는 이들입니다.

방황이나 슬픔도 인간들만의 몫이기에 저에게 어떤 감정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순간을 당신과 함께 하면서, 이제는 제 긴 애무에 지치지 않는 당신이 저에게는 마지막 위로가 됨을 압니다. 스스로의 몸으로는 칼끝처럼 들어오는 차가움도, 따가운 뜨거움도 어쩌지 못하는 당신에게는 살아있음도 죽음도 아닌 깨어짐과 깨어지지 않음만 있음을.

누구의 안주가 되어 씹히는 내일을 생각하기보다는 마지막까지 사랑할 수 있었던 당신이 있었음을 기억하렵니다.

- 슬픈 이야기를 하며 한 해를 접자는 뜻은 분명 아닙니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듣고 살면서 그러마 자신에게 약속을 수 없이 하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했습니다. 우두커니 수족관의 문어를 바라보며 살아 있음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본능의 문제이고, 그 본능 속에서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는 일은 자연의 질서를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올 한해도 열심히 살아오신 많은 분들이 있어 세상은 어렵게 질서를 잡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한명숙(경주 고운이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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