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미국 견문록] 제이콥의 또 다른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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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의 미국 견문록] 제이콥의 또 다른 꿈
  • 이상윤
  • 승인 2004.12.22 00:00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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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은 나와 같이 일을 하다 보니 가끔씩 자극을 받아 자기도 덴티스트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다. 왜 아니겠는가. 어차피 치과에서 하루종일 일하는데 닥터로 일하면 환자와 스탭들로부터 존중받으면서 일하고 봉급도 몇배나 더 받을 수 있으니, 19살 나이의 제이콥이라면 한 번씩 해 볼 만한 생각일 것이고 실제로 한번 쯤은 심각하게 고려해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현재 제이콥은 그 꿈을 포기했다. 그 이유는 단순히 100여명을 뽑는 데 수천명씩 몰리는 경쟁률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돈이다. 현재 고졸인 제이콥이 치과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4년동안 칼리지를 다녀 학사학위를 취득해야한다. 그리고 다시 치과대학을 4년 다녀야 하니 꼬박 8년 동안 일을 하지 못하고 돈을 써야하는 것이다.

미국 대학 등록금은 웬만한 사람의 일년 연봉에 해당한다. 4년 동안 대학을 다니려면 학비만 10만불은 잡아야 하고, 그 외 생활비까지 계산하면 제이콥이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이다. 더구나 그 동안 일을 하지 않아 발생하는 기회비용의 손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제이콥과 같은 젊은이가 공부를 계속하여 전문직을 갖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융자를 받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거의 십여년을 빚으로만 산다는 것은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길이다. 제이콥은 내가 본 여타 미국애들 답지 않게 센스있고 똑똑하기 때문에 나는 제이콥이 공부만 하면 경쟁을 뚫고 치과대학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는 제이콥이 그 자질을 살려 치과의사가 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것은 제이콥에게 이루지 못할 꿈일 뿐.

어느 사회에서나 부의 세습이라든지 신분상승의 어려움은 있게 마련이지만, 한국사회와 비교해 볼 때 미국에서는 그것이 더욱더 철저히 봉쇄되어 있는 느낌이다. 제이콥을 보고 있으면 미국에서는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미래를 90퍼센트 이상 결정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기전은 대체로 두 가지로 보인다. 우선 집안의 기대가 없다. 평범하게 먹고 살기 바쁜 미국인들의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계층상승의 기대를 별로 받지 못한다. 부모들은 아이들도 자신처럼 살게 되려니 생각하고 있고, 아이들도 부모의 모습을 자신의 그것으로 무의식중에 받아들이는 듯하다.

그러니 당연히 자극도 없다. 제이콥처럼 중고등학교때부터 돈을 버는 일을 시작해서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19살에 그냥 저냥 고등학교 졸업하고 빈둥대다 치과에서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에 이게 웬 떡이냐 하며 시작한 조무사일을 20년도 넘게 하고 있는 아줌마 조무사들이 우리 회사에도 수두룩하다.

아무리 가난한 형편이라도 있는 돈 없는 돈 써가며 자식을 경쟁력있게 교육시켜 계층상승의 꿈을 이루어 보려는 한국의 부모들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또 한가지 기전은 돈이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미국의 공립학교들은 아주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좋은 상급학교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에게 별로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그래서 있는 집에서는 일찌감치 애들을 사립학교로 보낸다.

내가 아는 한 한국인은 중학교에 다니는 딸이 있다. 그 아이는 프랑스에 가본 적도 없으면서 주 전체 프랑스어 경연대회에서 일등을 할 정도로 영특한 아이이다. 당연히 다른 공부도 잘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가게 되면서 어머니가 무척 속상해 하고 있다.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하는 아이들은 대개 사립학교로 가고 공립학교에는 그렇고 그런 애들만 남게 되는데, 이 집의 형편으로는 일년 학비만 만 4천불에 달하는 사립학교에 애를 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도 학군이 좋은 곳은 몇십년된 집이라도 집값이 무척 비싸다. 그리고 미국인들 중에서도 교육에 관심 많은 돈 있는 사람들은 비싼 집값을 감수하고 학군 좋은 동네에 집을 산다. 하지만 이런 좋은 학군의 공립학교도 사립학교에 비하여 수준이 떨어진다. ‘학교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한국과 똑 같다. 졸업생들이 좋은 대학에 얼마나 많이 진학하느냐, 특히 아이비 리그라 하는 동부의 명문대학들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집어넣느냐가 학교의 명성을 결정한다.

그 한국 아이는 비록 우여곡절은 거칠지라도 끝내는 좋은 경력과 직업을 갖게 될 것이다. 부모에 의해 어려서부터 장래의 삶에 대하여 자극받고 공부하는 능력을 키웠으며, 스스로도 성취동기가 부여된 한국학생이라면 어떻게든 남보다는 나은 자리를 차지할 것이 분명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미국인 자녀들은 성취동기도 없고 물질적 뒷받침도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흘러나와 그에 걸맞는 직업의 세계를 전전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일벌로 태어난 꿀벌이 여왕벌을 꿈꾸지 않듯.

그런 의미에서 얼마전에 읽은 신문기사는 나로하여금 한국사회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좋은 사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문제해결력 1위, 읽기 2위, 수학 3위, 과학 4위라는 한국 학생들의 성취도는 뛰어난 수준이다. 한국보다 잘한 나라는 핀란드 정도다. 우리 프랑스도 그런 순위에 들고 싶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베르나르 위고니에르 교육 부국장(57)은 8일 교육인적자원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전날 발표된 OECD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한국 교육은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성취도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아 형평성이 좋고 성취도도 높다”며 “6∼15세의 교육비가 OECD 평균 5만2000달러인 데 비해 한국은 4만2000달러로 효율성도 높다”고 말했다.(동아일보 인용)

이상윤(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치주과 임상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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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수 2005-02-01 11:52:33
저도 미국 좀 있어 보았는데, (한 7-8년 됐군요)
그리고 이런 면에 관심을 가지고 보았는데,

이상윤 선생님 말씀이 대충 맞는 듯합니다.

그래도 중요한 시각인데도,
여전히 (알면서도)
미국을 보는 시각이 구태의연하고 바뀌지 않는 듯합니다.

이젠, 기러기 엄마에겐
"자식들 마약 시키려면 미국 보내라" 해야겠군요.

김주철 2005-01-10 08:18:45
막연히 생각했던 미국 사회에 대한 오해가 풀린 것 같습니다.
시간이 있는대로 아래의 다른 글도 읽어 보겠습니다.

이빨쟁이 2004-12-24 14:50:52
속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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