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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사랑의 큰 적이다"[제4부]역사에 의무를 다한 시인 탄타오
송필경 | 승인 2010.11.18 16:39

 

본 연재글의 정확한 이해를 위해 연재글 첫회부터 읽기를 당부드립니다. (편집자)

시인의 어조가 단호해졌다. “그래서 ‘전쟁은 사랑의 큰 적’이다. 전쟁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앗아간다.” 나는 인간이 한 말과 글 중에서 전쟁의 아픔을 이처럼 단순한 표현으로 가슴을 저미게 한 예를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었다. 호머,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그 어떤 대문호가 입맞춤 한 번 못하고 산화한 어린 청춘의 한을 이보다 더 명료하게 이야기했던가? 전쟁·사랑·적, 세 마디 단어에 그저 토씨를 덧붙인 이 한 마디의 애절함보다 더 큰 울림이 있었던가?  전쟁에 관한 어떤 문학적 수사가 인간의 슬픈 심연을 이토록 나타낼 수 있을까?

나는 베트남 전사가 적인 미국과 한국이 저지른 만행을 열거하고 자신의 승리를 찬미하리라 예상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랬기 때문이다. 대동아전쟁 때 그랬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그랬다. 베트남전쟁 또한 그랬다. 우리가 겪고 치른 전쟁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정의로운 전쟁이었다. 정의로운 전쟁은 언제나 성전이고 축제였다. 전쟁에서 슬픔은 비겁함이다. 전쟁에서 사랑은 나약함이다. 적은 박살내어야 할 그 무엇이었고 박살내는 용기는 미덕이다. 그래서 베트남에 간 귀신 잡는 해병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사랑할 나이에 영문도 모른 채 스러져간 청춘의 피는 조국 근대화에 바치는 성스러운 제물로 치부했다. 

나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셋째형의 말이 불쑥 생각났다. ‘자신이 다치거나 죽지만 않는다면 전쟁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오락이다.’ 베트남에서 우리는 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다른 민족을 침략했다. 언제나 고래등 사이에 끼여 이리저리 눈치만 살피던 우리가 남을 깔보고 짓밟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못사는 우리가 우리보다 더 못살아 보이는 민족을 오락 즐기듯 마음껏 유린한 것이다. 잔인함은 전쟁의 속성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어찌 되었든 젊은 피의 대가로 조국의 근대화 발판으로 삼았다고 위안한 것이다.

   
 
   
 
시인은 외아들이다. 당시 외아들은 자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전선으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포탄이 비 오듯 퍼붓는 쯩선산맥 밀림으로 시인은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들어갔다. 역사에 의무를 다하기 위하여….

“내가 걸어 간 길은 길이 아닌 길이었다. 발자국이 찍혀서 만들어진 길이었다. 쯩선산맥의 길을 4개월 걸었다. 우리는 그 길을 쯩선 회의장이라고 불렀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잔영을 새겼다. 언제가 꼭 다시 가고 싶다, 예전의 기억을 다시 돌아보고 싶어서.” 시인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송필경  spk1008@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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