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용의 북카페 -26]퀴르발 남작의 성
상태바
[전민용의 북카페 -26]퀴르발 남작의 성
  • 전민용
  • 승인 2010.12.29 15: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소설집, 문학과 지성사

 

8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퀴르발 남작의 성’은 남다른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전이나 과거의 사건들을 비틀고 뒤집어 다양한 시각에서 변주하는 솜씨는 가히 환상적이다. 더구나 작가는 상당히 탄탄한 심리학적 지식을 겸비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에 나오는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는 디즈니 영화주인공들의 혼합 퍼레이드처럼 여러 작품의 온갖 등장인물들이 시대와 배경을 초월해서 한자리에 모여 개성 있는 수다를 떤다. 소설로는 보기드문 발상이다.

‘퀴르발 남작의 성’은 비틀기와 변주의 최고봉이라 할 만하다. 시대와 장소를 종횡무진하며 여러 화자를 통해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비교해주면서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얼개를 치밀하게 엮어 전달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1993년 한국 K대학의 교양 강의를 통해서 1953년 제작된 ‘퀴르발 남작의 성’이라는 영화를 소개하면서 호러영화 속의 여성 문제를 건드린다.

1932년 뉴욕에서 처음 소설을 쓴 미셸 페로를 등장시켜 원작자의 심리와 여자 주인공 카밀라의 내면의 변화를 추적한다.

2004년에 이 영화를 ‘도센 남작의 성’으로 리메이크 한 일본 영화감독 나카자와 사토시를 통해서는 1932년 대공황의 상황에서 출구 없는 암흑 같은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배경에 부합하는 기괴스러운 소설의 결말과 1953년 영화의 결말이 할리우드식 호러 영화로 달라진 이유를 설명하고 2004년의 영화를 다시 원작소설의 결말로 리메이크하게 된 배경을 소개한다.

2006년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서는 영화 ‘퀴르발 남작의 성’의 배경인 디즈니랜드 신데렐라 성의 모델로 유명한 독일의 노이슈반스타인 성과 영화 ‘도센 남작의 성’의 배경인 일본의 오카야마 성에 얽힌 일화들을 소개한다. 1952년 영화 주인공 카밀라와 빌을 연기한 영화배우 제시카 헤이워드와 로버트 허드슨을 등장시켜서 현실의 연기자들의 욕망에 따라 영화의 줄거리가 어떻게 변화 되었는지 슬쩍 들이민다.

2005년 한국의 MBC 방송을 통해서는 영화 ‘도센 남작의 성’을 보고 영향을 받아 조카딸을 납치해 인육을 요리해 먹은 엽기적인 부부의 소식을 전한다.

다른 장면에서는 카니발리즘에 대한 소개와 아이들을 잡아먹으며 200년 넘게 살면서 언제나 중후한 귀족적 품위를 잃지 않는 퀴르발 남작의 궤변과 카밀라 부부가 결국 자진해서 남작의 카니발에 동참하게 되는 과정을 소개한다. 남작과 드라큘라와의 비교도 흥미롭다.

원작자 미셸 페로에게 어린아이 장과 퀴르발 남작에 얽힌 전래동화를 이야기 해 준 할머니 자네트 페로의 등장도 의미있다.

특히 이 작품을 자본주의와 무한 욕망에 대한 고발로 이해하는 해석과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상징으로 보는 상반된 시각에 대한 소개도 그럴 듯하다. 한편의 디즈니랜드식 호러 다큐를 보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소설 주인공인 홈즈와 작가 코넌 도일의 고뇌와 두뇌 싸움을 다룬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도 흥미 있는 발상이다. 다만 소설 속 사건의 열쇠들이 다소 허술하고 단순하다는 점이 아쉽다.

‘괴물을 위한 변명’은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과 이를 원작으로 만든 여러 아류 영화들에 대한 변주이다. 소설 속 괴물은 이름이 없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만든 박사의 이름이다. 작가는 괴물과 박사의 심리적 관계를 파고든다.

또한 작가는 소설 속에서는 주변 인물로 잠시 등장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동생 에르네스트 프랑켄슈타인을 중심 인물로 등장시켜 원작의 비밀을 파고들며 그럴 듯한 또 다른 ‘프랑켄슈타인’이야기로 변주한다.

‘그림자 박제’는 대표적인 본격 심리 소설이다. 다중인격장애를 가진 인물에 대한 잘 짜여진 단편 드라마이다. 주인공 강철수는 단란한 가정에서 부모를 사고로 잃고 고아원에서 자라 회계사가 된 평범한 인물이다. 아내와 어린 아이는 조기 유학을 떠난 기러기아빠이다.

강철수는 어느 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멍키 스패너로 끔찍하게 살해한다. 강철수는 정신과 의사와의 대화를 통해 자기 속에 존재한 또 다른 인격인 톰과 제리에 대해 설명한다.

톰은 거칠고 당당한 욕망의 화신이고 제리는 말을 더듬고 내성적인 유아적 인물이다. 강철수와 톰과 제리는 한 때 잘 어울리며 공존한다. 그런데 마음의 지하실 밑바닥에는 어려서 장애를 갖고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당한 우빈이 있다. 이들은 마음 속에서 점점 심각한 갈등에 빠져들어 간다.

전체를 연결해 보면 우빈이 진짜이고 강철수는 과거와 자기를 지우고 싶은 우빈이 만들어 낸 가장 강력한 페르조나이며 톰과 제리는 가짜 인생을 살고 있는 강철수와 완전히 억눌러져 있는 우빈 사이에 만들어진 그림자들이 나타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책의 말미에 이 소설을 해설한 우찬제는 멍키 스패너로 살인한 인물이 톰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톰은 몽키 스패너를 산 것 뿐이고 정작 휘두른 사람은 진짜인 우빈이 튀어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직접 건드려지는 돌발 상황 속에서 비로서 우빈이 현실에 직접 등장하는 순간 강철수와 톰과 제리는 잠에 빠져들고 우빈은 망설임없이 살인을 하고 어린 시절의 자기로 보여지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건네주는 것이다. 잘 짜여진 구성과 심리학적 지식은 훌륭하지만 조금 상투적인 느낌이 들기도 한다.

우유부단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변덕스러운 현대인의 모습을 사실성 있게 그린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2007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받고 문단에 나온 작가 최제훈의 재기발랄한 변주와 시대와 인간에 대한 드러냄이 어디까지 갈까 궁금하다.

전민용(안양 비산치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