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下] 밀레, 고흐, 미켈란젤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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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 밀레, 고흐, 미켈란젤로를 만나다
  • 김기현
  • 승인 2011.01.07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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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원장의 유럽여행기

 

밤 10시가 넘는 시각, ‘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에서 숙소로 달리는 차안에서 로마의 모습을 보기 위해 연신 기웃거렸다. 깜깜한 밤중이니 잘 보일 리 없겠지만, 그 와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것이 담벼락에 그려진 낙서, 즉 ‘그라피티’였다.

그라피티는 나라별로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스위스는 아주 잘 정돈된 책상을 보는 것 같은 깨끗함과 깔끔함이 돋보였고, 파리의 그것은 깔끔하지는 않지만 왠지 앉아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는 책상처럼 예술적 매력이 있었다. 반면 로마의 그라피티는 절대 앉고 싶지 않은 난잡한 자취생의 책상 같은 느낌의 막(?)낙서였다.

다음날 아침 만난 로마의 느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8일간의 유럽 여행을 계획하면서 제일 많이 고민했던 부분은 역시 ‘어느 나라에 갈까?’였다. 길지 않은 기간이어서 3개 나라만 가기로 결정하니까 고민의 절반쯤은 해결되었다. 일단 누나가 있는 제네바의 스위스는 당연히 포함될 것이고, 제네바에서 가깝고 유럽 문화의 중심이라는 인상이 강한 프랑스 파리도 어려움 없이 결정했다.

나머지 하나의 나라가 고민스러웠는데, 스위스가 지리적으로 유럽의 한가운데인지라 어딜 가도 다 만만해 보이는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여기저기 다 가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아무래도 유럽 역사의 중심지였던 영국(런던)과 이탈리아(로마)를 가봐야 하는게 순리(?)인 것 같아 둘 사이에서 저울질하다가, 자칭 유럽통인 누나의 조언대로 ‘고색창연한 유럽 역사의 본류’인 로마로 결정했다.

여행사를 통한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행기 예약부터 시작해서 현지 숙소 예약, 현지 가이드 섭외 등 모두 혼자서 해야만 했다. 워낙 튼실한 온라인 인프라가 구축된 우리의 환경에서 이런 일쯤은 특별한 어려움 없이 해결할 수 있었다.

▲ 바티칸 박물관을 통해 바티칸 시국으로(입구 위에 조각되어 있는 사람이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그 중에서도 가장 신경을 많이 쓴 부분이 현지 가이드 섭외였다. 눈으로만 봐도 즐거운 여행도 물론 있겠지만, 로마처럼 고색창연하고 유서 깊은 곳은 눈과 머리가 함께 열려야 진면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3일 동안 만난 세 명의 가이드는 로마는 눈으로 보는 곳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으로 이해하는 곳임을 일깨워 주었다. 이런 깨달음은 지저분해 보이던 첫인상의 로마를 다시 한번 꼭 와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을 가슴에 새기는 도시로 바꿔주었다. 짧았던 로마 일정을 아쉬워하게 만든 장본인들이기도 하였다.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라피티도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좋고 나쁨을 평가할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로마의 가이드들은 스스로를 ‘미미사’라고 불렀다. ‘미켈란젤로에 미친 사람들’이란다. 로마에 오게 된 이유는 각자 달랐지만, 먼 이국땅에서 가이드를 시작한 이유도, 그리고 그것을 통해 고국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도 모두 ‘미켈란젤로’라고 말하는 그들을 보면서 미켈란젤로 그에 대한 강력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 바티칸 박물관 입구
미켈란젤로를 미친 사람이라고 스스럼없이 불렀던 그들을 보면서 ‘그런 미친 사람에 미친 사람들이니 더 미친 사람들일까? 안 미친 사람들일까?’하는 쓸데없는 의문이 들기도 하였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와 정면벽화(최후의 심판)를 보는 순간, 이틀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미켈란젤로에 대한 그들의 이야기가 한 치의 과장이 없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미켈란젤로는 천장화와 정면벽화 때문에 화가로서 우리에게 더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스스로를 화가로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천장화를 그려 달라는 교황의 부탁이 자신을 제거하려는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임을 깨닫고 피할 수 없었음을 알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은 화가가 아니니, 그 그림은 당대 최고의 화가 라파엘로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나, 천장화를 그리는 도중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서 와서 죽은 내 그림과 명예를 구해주게나. 난 지금 좋지 않은 곳에 있어. 그리고 난 화가도 아니지 않는가?’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화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인정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자신의 고향 피렌체의 아름다운 대리석을 보며 위대한 조각가가 되길 꿈꾸었던 그가 자신을 쫓아내기 위한 음모로 시작된 이 작업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불멸의 작품으로 승화시켜 낸 원천은 무엇일까?

오직 최소한의 수면시간과 식사시간을 제외하고서 높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꼬박 4년의 세월동안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그 큰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갑상선종, 사시, 근육경련증, 관절염, 피부병 등 온갖 병들을 얻어가면서도 그 고통의 시간을 인내할 수 있었던 힘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천재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대한 안내판
어느 날, 천장 밑에 세운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 구석구석에 정성스레 그림을 그려가던 미켈란젤로에게 한 친구가 물었다고 한다. "여보게, 그렇게 잘 보이지도 않는 구석에 뭘 그렇게 정성을 들여 그림 그리고 있나? 완벽하게 그려졌는지 누가 알기나 한단 말인가?"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무심한 듯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안다네."

바로 미켈란젤로 자신이 만든 스스로의 성취감이나 자기만족과 같은 마음, 즉 내재적 동기가 천장화와 정면벽화의 완성을 가능케 한 것이었다. 더불어 이런 내재적 동기가 유발한 지독한 몰입의 과정 없이 이 작품의 탄생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천장화와 정면벽화을 보고나서 보내는 전율과 찬사는 그것의 아름다움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이것을 가능케 했던 그의 내재적 동기와 그것이 유발하는 몰입의 자세에 대한 경외감의 표현일 것이다.

전무후무한 이 불멸의 작품이 주는 감동은 직접 보지 않으면 설명할 길이 없으니..... 로마에 가면 꼭 가시라. 미켈란젤로의 혼이 담긴 그곳으로.....

그리고, 다시 한번 내게 이탈리아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주저 없이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고향 피렌체로 달려갈 것이다. 그곳에는 그 스스로가 살고자했던 조각가로서의 삶이 곳곳에 담겨있을 것이기에......

▲ 라파엘로의 작품
▲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에 있는 가장 큰 성당인 베드로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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