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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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
  • 김철신
  • 승인 2005.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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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어느 정당의 정책위원이 사표를 던지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의 공약이 100일간 단식을 해서 실현될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그 정책위원은 어느 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자료와, 근거와 논리가 필요함을, 그리고 열정만으로는 그 무엇도 실현해 낼수 없음을 말한 것이리라.

비단 그 정당의 공약뿐이 아닐 것이다. 의료의 공공성강화를 외치고 있는 이들도, 올바른 의료제도를 위하는 이들도 그 당위성만으로는 아무 것도 실현할 수 없다. 그 당위를 뒷받침하는 그물같은 근거자료와 논리적 타당성이 존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정책을 담당하는 이들은 내가 보건데 항상 냉랭하고, 재미없다. 지난 겨울 차가운 아스팔트위의 농성장에서도 그들은 감정의 기복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논리의 냉랭함보다, 당위를 주장하는 열정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
"한국사회의 계급과 불평등"은 우리사회의 계급과 불평등의 문제를 실증적 자료를 가지고 분석해 냈다. 1부에서는 계급의 역사에 대해 일제하부터 세계화시기까지의 변화를 다루고, 그것을 분석해온 우리 사회학계의 노력을 담고 있다. 그리고 2부는 계급과 불평등의 내용을 각종자료를 통해 실증해 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3부에서는 경제위기가 계급구조에 가져오는 변화와 우리의 허위의식에 대해 질타하고 있다.

책의 내용중 인상깊은 대목은 2부에서 계급과 불평등이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자료를 통해 하나하나 밝혀내고 있는 부분이다.

몇가지 살펴보면, 자본계급은 교육정도가 소득의 차이를 나타내지 않는다. 교육정도가 어떠하던 자본계급은 최고의 소득을 올린다. 다만 중간계급에서는 교육1년 증가시 월 소득이 6.42% 증가한다. 노동계급은 소득증가가 이보다 훨씬 적다.

통계적으로 분석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소득에 영향을 주는 결정적 인자는 교육이 아니라 계급이다. 즉 주로 상속과 증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자산의 소유정도이다. 또한 노동시간이 길수록 하위계급이다. 즉 소득이 낮은 계급이 더 많은 시간 일을 한다는 이야기다.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 하위계급이라는 것은 잘못된 사회적 평가인 셈이다.

경력이 증가할수록 소득은 증가하나 여성은 경력과 소득의 상관관계가 무의미하다. 남성은 경력이 증가하면 소득도 급격히 증가하나, 여성은 경력이 증가한다고 해도 소득증가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은 계급 상황이 열악할수록 같은 계급남성과의 임금격차가 벌어지며, 교육에 따른 소득증가 경향이 뚜렷한데, 이는 대부분 취업여성들이 중간계급과 노동계급의 열악한 처우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며 비교대상 소득의 출발점이 절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또한 서울과 지방간, 그리고 서울내 지역간의 자산가치의 차이는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 차이는 개인능력의 차이보다 그 자산의 존재 자체로 기인하는 경향이다. 즉 서울지역내에서 강남권에 비해 다른지역(서남, 동북,서북, 도심)의 소득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다. 그러나 자산의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소득의 획득으로 증여와 상속에 의해 주로 이루어지는 자산의 차이를 만회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즉, 한국사회에서 자산의 유무에 따른 불평등과 성별에 따른 불평등은 명확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정도는 대다수 국가들보다도 높으며, 아시아에서도 그 불평등의 정도가 극심한 최악의 불평등 국가인 것이다.

저자는 그동안의 한국사회학계가 전통적인 주제인, 불평등, 계급, 분배의 문제에 등한시 했다고 했다. 90년대를 통해 민주화와 경제적 성장에 도취되어 포스트주의로 연구지향들이 과도하게 매몰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계급과 불평등의 문제를 고민하는 시대는 종말을 고하는 양 대했다고 했다.

분명 우리도 그러했을 것이다. 국민소득이 만불을 넘어 2만불을 향해가는 시대에 또다시 빈곤과 불평등의 문제가 우리사회를 짓누르게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신자유주의 정책이 지속되는 모든 나라들에서 불평등과 빈곤은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그 정도를 더욱더 심화하고 있다. 정당한 노동이 정당하게 대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사회의 과제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수많은 자료의 수집과 분석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다만 몇가지 자료가 통계적으로 무리가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은 아쉬운 점이지만, 그것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저해하지는 못한다.

장하준 교수의 책을 본 적이 있다. 뮈르달 상을 받기도 한 유명한 경제학자인데, 어마어마한 자료를 수집했다. 그래서 선진국들의 세계화 논리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하나하나 반박해 들어갔다. 그 자료들 중에는 19세기부터 20세기까지 각국의 관세율과, 국산화율, 무역량, 성장율이 다들어 있었다. 이 자료를 하나하나 수집분석해, 미국의 이야기가 왜 잘못된 것인지 반박하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것은 방대한 자료를 수집분석한 학자로서의 노력과 더불어 책의 행간에 묻어나는 제3세계와 약자들에 대한 애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분명 그 애정이 방대한 자료수집을 가능하게 한 힘이라고 믿는다.

"한국사회의 계급과 불평등"에서도 저자의 약자에 대한 애정과 사회개혁에 관한 열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애정과 열정의 결과물이 이 훌륭한 한권의 책이 되었으리라 짐작해본다.

앞서의 정책위원은 100일간 단식하려는 열정만 가진 지도부를 안타까워 했지만, 우리사회에는 단 한끼 굶을 정성도 없이, 수많은 자료를 독점하고 있는 힘있는 자들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답답하더라도 약자에 대한 애정을 가진 이들을, ' 하루, 이틀, 100일을 굶어낼수 있는 열정을 가진 이들'을 보다 더 따뜻하게 감싸안을 수는 없었을지, 이책을 보며 생각해본다.

김철신(서울 강남푸른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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