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창고] Eleni Karaindrou - Eternity T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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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창고] Eleni Karaindrou - Eternity Theme
  • 박종순
  • 승인 2005.0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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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멀리 만경강이 보이는 곳이다. 온통 논뿐인 평야지역에 산이라 부르기도 뭣한 마을 동산에 오르면 멀리 만경강에는 돛단배가 떠 있곤 했다. 동산 너머 아래로는 마을이름이 뫼밖에 없었다.

그 곳부터는 말 그대로 뫼 바깥으로 야트마한 언덕도 없는 너른 평지였다. 아마도 대여섯 살 무렵이었나 보다. 항상 동경의 대상이었던 그 만경강가에 어느 날 할아버지 자전거 뒤에 타고 갔던 적이 있었다. 방 빗자루를 매어 쓰는 갈대종류를 꺾기 위해서였는데, 밝은 햇살을 맞으며 기분 좋은 산들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강가에서의 하루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참 기분 좋은 날이었다.

얼마 전 영원과 하루라는 영화를 보았다. 그 영화를 보고 생각난 기분 좋은 하루의 기억이다.

20세기 마지막 거장이라는 그리스의 명장 테오 앙겔로풀로스.

그의 영화는 여행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여행하는 인물들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현재 시점에 과거나 환상을 자유자재로 불러들여 과거와 현재를 대비시키고 이를 통해 현재를 역사적으로 조명해 간다. 그 결과 그의 영화는 꿈처럼 환상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시적인 영화가 되어간다.

또한 카메라와 색채, 그리고 음악까지 모두 영화언어가 되어 의미를 전달하고 있기에 그의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감을 통해 그의 카메라 움직임을 느끼고, 영화의 구조와 색감을 읽고 엘레니 카라인드루의 음악을 들으며 온 몸으로 느껴야 한다.

테오 앙겔로풀로스 감독과 거의 대부분의 작품을 같이 해온 그리스 영화음악가 엘레니 카라인드루.

그녀 스스로 말하길 자신의 유년기 음악 선생은 산자락을 비껴가는 바람과 슬레이트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밤에 울어대는 나이팅게일과 쌓인 눈 위로 흐르는 침묵이었다 한다. 그녀에게 음악은 음계의 나열이 아니라, 자연의 소리를 표현하는 수단이었던 것이다. 거기에 밤 세워 일하는 여인의 높은 음색의 노동요가 자신에게 음악의 의미를 일깨워 줬다고 말한다.

또 그녀가 성장기를 보낸 아테네에서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영화이다. 그녀의 가족이 고향을 떠나 대도시 아테네에 정착했을 때 이웃엔 야외극장이 있었고, 카라인드루는 창문 너머로 공짜영화를 실컷 볼 수 있었다 한다.

그녀가 아테네의 명문 헬레니콘 오디온에서 피아노와 이론을 배우고, 파리에 유학해 현대음악과 접한 것은 어쩌면 부수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미 그녀의 음악에 대한 직관력은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완성이 되었으니까.

파리에서 유학하던 시절 멜로디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었다는 카라인드루의 말은 전문적인 교육이전에 이미 완성이 된 그녀만의 작법을 대변하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1979년 카라인드루는 처음으로 영화음악을 담당하게 되는데, 유년기에 형성된 음악적 리얼리즘과 독창적 화성악이 진가를 발휘하면서 결과는 그리스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의 훌륭한 결합이 되었다 한다.

1982년 [Athens 아테네]로 시작된 카라인드루와 앙겔로풀로스의 만남은 [Voyage To Cytheria 시테리아섬으로의 여행], [The Beekeeper 양봉하는 사람], [Landscape In The Mist 안개속의 풍경], [The Suspended Step Of The Stork 황새의 멈추어 선 걸음], [Ulysses' Gaze 율리시즈의 시선], [Eternity And A Day 영원과 하루], [The Weeping Meadow 흐느끼는 초원]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시나리오보다 카메라 움직임에서 음악적 영감을 얻는다는 그녀는 [영원과 하루]에서도 화면과 환상적인 결합을 이룬 음악을 선보였다. 특히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등 목관악기가 주조를 이룬 이 영화의 메인테마는 애잔하면서도 한 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멜로디로 영화를 보기 전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이 음악을 듣게 만든다. 마치 중독된 느낌처럼.

박종순(서울 인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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